길 위에 밀려난 사람들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삶이 보이는 창, 2009)
엄기수(삶이 보이는 창 편집부)
노숙인들은 추운 겨울을 맞이하면 반짝 언론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혹독한 추위는 거리노숙인들을 벼랑 끝으로,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봄이 와도 여름이 와도 추위를 넘어선 모든 불안의 요소들을 안고 일상을 살아간다. 서울역, 영등포역 등 역사 주변에서는 쉽게 노숙인들을 만날 수 있다. 노숙인들의 이미지는 “게으르다”, “항상 술에 취해 있다”, “자유로운 삶을 원하기 때문에 노숙을 한다”처럼 대부분 부정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왜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지, 어떤 아픔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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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신부로서 노숙인 사목을 하며 만난 노숙인들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 책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를 통해 다시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저자는 후기에 “이 글은 노숙인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내 삶에 대한 고백이기도 한 셈이다”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늘 가는 가지 끝에서 위태하게 흔들리고 있다. 우리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노숙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때로 그들이 ‘내’가 아닌 것에 안도한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이들과 같은 생각, 같은 고민과 문제들을 안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IMF 경제위기는 가진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그리고 다시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심화되는 양극화, 실업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2009년. 자영업자의 몰락, 중소기업의 붕괴로 인한 대량 실업,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재개발지역 거주민 등 많은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현재 상황이 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위기는 언제나 극단화되고 과장된다. 위기의 노출 혹은 광고는 불안을 조성하고, 거대한 안전장치의 가동을 묵인하게 한다. 또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불안한 존재, 불안한 공간들을 끊임없이 배제하고 밀어낸다. 용산4지구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던 이들에 대한 공격, 그리고 이들을 도시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불안에 대한 과장된 안전장치가 정당화되기 때문이고 바리케이드처럼 가려지기 때문이다.
노숙인은 세계로부터 언제나 배제되고 밀려난다.
“호적이 없으니까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것 같아.” 그래서 그는 또다시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혼잣말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유령처럼 살았어.”
-「‘유령’처럼 살았던 이에게 전할 마지막 위로」에서
그들은 실체가 없는, 혹은 없기를 바라는 유령으로 세계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 지하도 찬 바닥에 종이박스로 집을 짓고 살기도 하는 이들에게 주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에게서 주거권을 박탈한 것은 무엇인가. 또 누가 이들의 생존권을 빼앗았는가. 이들은 내가 아니어서 안도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단지 지하도의 한 풍경이 아닌 이웃으로 울타리 안에 들어온 노숙인들, 그들의 이야기가 아프지만 따뜻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