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박스에 담으며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자료실장)
이정미 열사 평전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러 청구성심병원에 갔다. 8층 구석진 곳에 노동조합 사무실이 있다. 노조 사무실에 초창기 자료, 조합원들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조합원 중 노조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은 병원을 그만둔 경우가 많다. 기록으로 접하는 나도 끔찍한 일들을 감당하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좁은 노조사무실 한쪽 벽 책장 가득 오랜 자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1988년 설립 당시 가입원서, 교섭일지, 투쟁일지 등. 투쟁일지는 당시 상황을 아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이 자료들이 남아있을까. 아마 이사를 가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물어보니 사무실을 옮기긴 했단다. 그래도 옛 자료를 잘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문서보존 상자에 주제를 적어 담고 책장에 꽂아 놓으니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손 타지 않게.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자료를 대분류해 박스에 담았다. 지금 보면, 필사로 어찌 이렇게 꼼꼼하게 적었을까 싶다. 이런 기록방식은 1988-1989년 사이 다른 노조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창노련 자료를 정리하면서 보니, 단위노조에서 낸 많은 자료들도 아주 상세한 수준으로 기록을 남겼다.
물론 당시 컴퓨터 보급이 안 되던 때고, 현장에서 급하게 적어 유인물을 내거나 기록을 남기는 데는 필사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지금의 많은 노조들이 그때그때 기록을 남기는 데 소홀한 점에 비춰보면 예전 선배노동자들을 보고 배워야 할 것 같다.
청구성심병원노조 기록 중 여느 노조의 자료들에서 볼 수 없는 게 있다. 간부들의 일지다. 매일 이동, 회의, 교섭, 업무 등이 적혀있고, 가끔 개인적 감정이 적혀있기도 했다. 수집을 하러 간 우리는 그것을 누가 쓴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분회장 권기한 동지가 들춰보며 기록한 이의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줬고,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경우 메모를 해줬다.
그 일지에 적힌 메모들이 눈길을 잡았다.
‘죽고 싶다, 끝내고 싶다.’
가슴이 콱 막혔다.
청구성심병원은 병원 자체보다 미친 듯이 노조를 탄압한 곳이라 유명하다. 조합원들에게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은 일상이었고, 따돌림을 강요하고 노조에 가입한 간호사를 업무와 상관없는 데 배치하기도 했다. 급기야 1998년에는 조합원 총회 장소에 구사대가 난입해 식칼을 휘둘렀고 위장폐업과 함께 조합원 10명을 해고했다. 끔찍한 폭력과 괴롭힘에 조합원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걸렸다. 2003년에는 8명의 조합원이 집단 산업재해 인정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치료받고 복귀한 이들에게 병원의 탄압은 끊이지 않았다. 부당노동행위 판결만 13번을 받았지만 병원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 시기 노조를 지키는 중심에 섰던 이정미 위원장은 암으로 운명했다.
노조는 백서로 기록을 남기고 알리려는 시도를 한 적 있다. 중소병원 노동운동을 재조명한다는 면에서도 의의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하지 못했다. 재정, 인력 등 어려움에.
언제고 노동자역사 한내가 피눈물로 지켜가고 있는 이 노조 이야기를 써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