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스레터
..... 와글와글
.....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박스에 담으며_정경원 (32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1-07-03 조회 871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박스에 담으며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자료실장)
 

이정미 열사 평전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러 청구성심병원에 갔다. 8층 구석진 곳에 노동조합 사무실이 있다. 노조 사무실에 초창기 자료, 조합원들의 기록이 남아있었다. 조합원 중 노조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은 병원을 그만둔 경우가 많다. 기록으로 접하는 나도 끔찍한 일들을 감당하고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좁은 노조사무실 한쪽 벽 책장 가득 오랜 자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1988년 설립 당시 가입원서, 교섭일지, 투쟁일지 등. 투쟁일지는 당시 상황을 아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이 자료들이 남아있을까. 아마 이사를 가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물어보니 사무실을 옮기긴 했단다. 그래도 옛 자료를 잘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문서보존 상자에 주제를 적어 담고 책장에 꽂아 놓으니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손 타지 않게.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자료를 대분류해 박스에 담았다. 지금 보면, 필사로 어찌 이렇게 꼼꼼하게 적었을까 싶다. 이런 기록방식은 1988-1989년 사이 다른 노조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창노련 자료를 정리하면서 보니, 단위노조에서 낸 많은 자료들도 아주 상세한 수준으로 기록을 남겼다.
물론 당시 컴퓨터 보급이 안 되던 때고, 현장에서 급하게 적어 유인물을 내거나 기록을 남기는 데는 필사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지금의 많은 노조들이 그때그때 기록을 남기는 데 소홀한 점에 비춰보면 예전 선배노동자들을 보고 배워야 할 것 같다.
 
청구성심병원노조 기록 중 여느 노조의 자료들에서 볼 수 없는 게 있다. 간부들의 일지다. 매일 이동, 회의, 교섭, 업무 등이 적혀있고, 가끔 개인적 감정이 적혀있기도 했다. 수집을 하러 간 우리는 그것을 누가 쓴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분회장 권기한 동지가 들춰보며 기록한 이의 이름을 하나하나 붙여줬고,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경우 메모를 해줬다.
그 일지에 적힌 메모들이 눈길을 잡았다.
죽고 싶다, 끝내고 싶다.’
가슴이 콱 막혔다.
 
청구성심병원은 병원 자체보다 미친 듯이 노조를 탄압한 곳이라 유명하다. 조합원들에게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은 일상이었고, 따돌림을 강요하고 노조에 가입한 간호사를 업무와 상관없는 데 배치하기도 했다. 급기야 1998년에는 조합원 총회 장소에 구사대가 난입해 식칼을 휘둘렀고 위장폐업과 함께 조합원 10명을 해고했다. 끔찍한 폭력과 괴롭힘에 조합원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걸렸다. 2003년에는 8명의 조합원이 집단 산업재해 인정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치료받고 복귀한 이들에게 병원의 탄압은 끊이지 않았다. 부당노동행위 판결만 13번을 받았지만 병원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이 시기 노조를 지키는 중심에 섰던 이정미 위원장은 암으로 운명했다.
 
노조는 백서로 기록을 남기고 알리려는 시도를 한 적 있다. 중소병원 노동운동을 재조명한다는 면에서도 의의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하지 못했다. 재정, 인력 등 어려움에.

언제고 노동자역사 한내가 피눈물로 지켜가고 있는 이 노조 이야기를 써야겠다.
 
 
 
 
 
 
 
목록
 
이전글 굶어 죽으나 싸우다 죽으나 매 한가지다_송시우 (31호)
다음글 생활임금 쟁취 투쟁_정경원 (31호)
 
10254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공릉천로493번길 61 가동(설문동 327-4번지)TEL.031-976-9744 / FAX.031-976-9743 hannae2007@hanmail.net
63206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앙로 250 견우빌딩 6층 제주위원회TEL.064-803-0071 / FAX.064-803-0073 hannaecheju@hanmail.net
(이도2동 1187-1 견우빌딩 6층)   사업자번호 107-82-13286 대표자 양규헌 COPYRIGHT © 노동자역사 한내 2019.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