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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내, '자료창고'를 딛고 '희망곳간'으로_김영수(34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1-10-17 조회 958
 

한내, 자료창고를 딛고 희망곳간으로 

김영수(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

 
2008년 여름푹푹 찌는 더위 속에 태국 방콕에 갔었다. ‘들이 천국으로 알고 사는 곳이었다. 태국 사람들은 를 조상의 부활로 생각하면서 산단다. 굳이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울 필요 없이, ‘는 사람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도 봉건적 왕조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태국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을까?

나는 방콕의 마카싼(Makkasan) 철도역 옆 오막살이 한 채를 찾아 가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곳은 태국의 노동박물관이었다. 노동박물관은 199112월에 준비를 시작하여 19931017일 개관하였다. 아시아에서 최초였다. 오막살이치고는 노동역사의 숨결이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멀리 수코타이 왕조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 노동의 역사가 각종 자료, 사진, 모형 등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알싸한 느낌이 온 몸을 적셨다. 다들 노동 그 자체는 고귀하다고 하는데, 노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노동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시관 옆에서 마치 꾀꼬리 울음소리같은 태국 말이 박물관을 아주 소란스럽게 하였다. 노동조합운동의 여성 지도자들이 회의실에서 격렬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통역자는 태국 민주화를 위한 노동운동의 전략문제가 논의되고 있다고 하였다. 토론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태국의 한 노동자가 우릴 끌었다. 한국말로 대자보와 피켓 투쟁문구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과 손길로 알았다. 태국에 진출한 한국 자본가가 노동조합운동을 탄압해서 장기간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었다. 노동박물관은 박제화된 유물을 전시하거나 자료를 보관하는 공간만이 아니었다. 투쟁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곳은 과거로 치장된 현실의 공간에서 미래를 노래하는 투쟁공간이었다. 태국 노동자들의 희망을 하나 하나 모아내는 곳간이었다.

내가 본 태국의 희망곳간에는 세 가지의 유물이 있었다. 하나는 땀으로 수를 놓았던 노동자들의 고단함이요, 다른 하나는 변화를 갈망하는 노동자들의 격렬함이요, 마지막으로는 너와 내가 어께 걸고 웃으면서 맞이할 미래의 희망이었다. ‘희망곳간에는 자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함께 있었다. 태국 노동자들은 이 유물들을 함께 만들었고 함께 보존하면서 새로운 유물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이것은 태국 노동박물관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노동자들의 웃음이자 희망이었다.


전시만 하는 박물관이 아닌 노동자들이 찾아오는 살아있는 공간

태국 노동박물관에서 희망기운을 한껏 받고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땅을 밟는 순간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웃음소리를 듣질 못했다. 내가 귀를 막고 마음을 열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나 자신에 대해 의심도 많이 했다. 그런데 주변부터 돌아보니 사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탓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을 탓하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겠지만 암튼 남 탓만 하면서 웃질 않았다. ‘희망이 없다고들 하면서, 그것을 남으로부터 찾으려 한다는 그 느낌, 나만의 느낌이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노동자가 웃음과 희망을 스스로 만들고 그것을 훼손하는 사람들에 대해 당당하게 대적할 힘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 해답을 태국의 노동박물관에서 찾는다면, 노동자가 자신의 역사를 온 몸으로 적시면서 현실과 미래의 주역으로 나서는 것이 정답이다.
노동자역사 한내도 노동자들이 웃음과 희망을 찾는데 자그마한 밀알이 되어야 한다. 한내가 자료창고를 딛고서 희망곳간혹은 희망박물관으로 변화되어야 할 이유이다. 노동자 역사가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듬고 있는 현실의 부대낌으로 존재해야 한다. 한내는 그 부대낌과 함께 해야 한다. 너와 나의 부대낌이 곧 노동자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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