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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에레베이터노동조합 결성과 가두투쟁(1987년 8월)
첨부파일 -- 작성일 1987-08-11 조회 297

동양에레베이터노동조합 결성과 가두투쟁

 

⦁ 시기 1987811~ 823

 

 

동양에레베이터는 1987년 당시 일본 도시바와 기술제휴로 엘리베이터 국내생산 2~3위를 다투고 있었으며, 총 노동자 수 1,040명 중 생산직이 600여 명인 부천지역의 대공장 사업장이었다.

 

19875월 기계반과 제관반에서 각각 5명씩의 친목회가 만들어져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들이 현장투쟁과 결합해 노조 결성에서 파업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들 친목회를 중심으로 젊은층들이 단합하는 가운데 회사측은 노동자들의 원성을 사는 두 가지 사건을 터뜨렸다. 그 하나는 사장이 세운 원종문화재단에서 6월부터 <월간 에세이>라는 잡지를 발간했는데, 노동자들 말에 따르면 따분하고 배부른 놈들이나 보는이 책을 노동자들에게 강제로 판매하여 월급에서 2,500원씩 공제하기 시작했다. 7월 월급에서도 일방적으로 공제되자 7월 말경 약 30여 명이 모여 사무실에 항의하고 책을 반납했다. 다른 하나는 여름휴가 문제로 81416일까지 3일간을 휴가로 준다고 발표했는데 1516일은 원래 연휴인데다 14일 하루마저 연차휴가에서 공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노동자들의 불만이 표면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제관반과 기계반 친목회원 10여 명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하고 7월 말 사람을 확대하여 노조결성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때 모인 10여 명에는 계전, 에스컬레이터를 제외한 전 부서가 포함되었다. 이렇게 준비를 진행해 811일 잔업을 마친 저녁 1030분 한국노총 부천시협의회에 모인 66명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다음날 점심시간에 보고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812, 전 날의 노조결성식 소식이 전해져 현장이 동요하자, 회사측에서도 각 부서 반장들을 소집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조를 결성한 노동자들은 오전 930분 전 노동자들을 신축 건물 2층으로 집결시켜 노조결성 사실을 설명하고 파업을 선언했다. 참가한 노동자들이 앞 다투어 노동조합에 가입해 조합원은 순식간에 28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어 사무직 직원들도 여성들을 중심으로 70여 명이 사무실에서 독자적인 출퇴근 농성을 시작했다.

 

813, 회사측에서 부식 공급을 중단하고 전화선을 끊었으며 노동자들은 관리직들을 회사 밖으로 내보내고 자경단을 조직했다. 이날 밤에는 횃불을 들고 공장마당을 돌다가 가두로 진출, 주변 공장을 돌면서 정문 앞마다 멈춰 구호를 외치며 국도까지 행진했다. 횃불시위와 가두진출은 이후 동양투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매일 횃불시위와 가두진출을 전개함으로써 내부 사기진작과 외부에 대한 선전효과 및 다른 사업장 지원에 크게 기여했다. 한편 815일에는 지게차를 앞세우고 가두시위를 전개하던 중 전경들에게 저지당했으나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전경들과 대치해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며, 이날 노조 설립신고증이 교부됐다.

 

818일부터 회사측의 와해공작이 본격화되자 농성 7일째, 지친 노동자들이 빠져나가 인원이 급격히 감소해 150여 명만 남게 됐다. 인원이 축소되자 내부경비를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해 가두시위는 중단했다. 한편 공장 주변의 모든 술집을 관리자들이 차지하고 앉아 농성자들을 불러내거나 혹은 외출 나온 사람이 보이면 끌어들여 술을 먹이고 폐업하겠다” “회사를 매각하겠다협박함으로써 농성자들이 계속 동요해 822일에는 처음 농성인원의 3분의 1가량인 100여 명만 남게 되었다. 이들은 구사대의 습격에 대비해 투쟁결사대를 조직하고 공장 정문 앞에 시너와 산소통을 모아놓고 철야경비에 돌입했다.

 

823, 노동자들이 투쟁결사대를 조직하고 더욱 완강한 모습을 보이자, 회사측은 구사대를 동원했다가 노동자들이 설계도면 등 중요서류를 폐기할 것을 우려해 구사대 투입을 중지했다. 이어 선적 기일이 가까워지자 회사측이 비로소 협상을 제기해했으며, 양쪽 모두 막바지에 몰린 터라 협상은 급진전됐다. 이로써 1112일 투쟁은 상여금 1년 이상은 400%, 6개월 이상 1년 이하는 200%, 3개월 이상 6개월 이하는 120% 하기 유급휴가 3일 및 상여금 100%지급 복지지설 개선 4대절 유급과 국경일 5일은 무급휴일 파업에 대한 책임추궁 없음 저녁식사시간을 잔업시간에 포함 등으로 전격 타결됐다.

 

동양에레베이터노동조합은 이후 828일부터 시작된 옆 공장 신한일전기의 농성 때 정문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지지를 보내며 대흥기계와 더불어 민주노조 운동의 지역구심으로 떠올랐다. 농성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확인하고, 사장과의 종속적인 관계를 탈피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반면 농성 프로그램의 준비부족으로 효과적인 조합원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인원의 감소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지도부와 대중이 강고하게 결합하는 데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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