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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
첨부파일 -- 작성일 1994-05-01 조회 112

1994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


대회 기조와 주요 요구

노동절 대회를 계기로 다룰 현안은 임금인상, 노동법개정, 고용안정, 해고자복직, 탄압 대응 등 투쟁과제와 민주노조 조직발전 문제, UR 비준 문제, 경제민주화와 노사관계개혁 요구 등 다양했다.

민주노조 진영이 1994년 상반기에 주력해야 할 과제는 당면한 임금인상 투쟁 승리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건설을 위한 조직적 기반을 확충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와 관련해 주요하게 노·경총 임금합의 분쇄 전선을 대중적이고도 조직적으로 강화하고 각종 노동 탄압과 노동 통제를 저지해내야 했다. 또 전민족적 과제로 제기된 우루과이 라운드 문제 역시 민주노조운동 진영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투쟁으로 설정했다.

대회기조는 51일 노동절 부활을 맞아 전노대를 중심으로 민주노조 진영이 세계노동절의 정신을 현재적으로 계승하는 한국노동운동의 중심임을 확고히 함 김영삼 정권의 반노동자적인 노동정책과 탄압에 대해 강력히 규탄하고 1994년 투쟁 승리 결의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전망에 대한 대중적 결의와 단결력을 모아냄 노동열사정신 계승 기초농산물 수입개방 저지 투쟁 등 민중생존권과 사회민주화 실현을 위해 노동자가 앞장서겠다는 결의 등으로 정했다.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노동절대회 실천지침도 구체화했다. ‘경총 합의 분쇄 및 1994년 임금인상 투쟁 승리 결의를 위해 전노대는 단위노조별로 임금인상 투쟁 마무리까지 한국노총 탈퇴 및 의무금납부 거부 결의, 한국노총 산하 노조들에도 동참 촉구 임금인상 투쟁 일정에 맞춰 전국적 공동투쟁 전개 및 노경총 합의 가이드라인 분쇄 임금인상 투쟁 시 예상되는 제3자개입, 긴급조정권, 직권중재, 공권력을 동원한 탄압 총력 저지하기로 했다. 강화되고 있는 일련의 노동탄압에 대한 규탄 및 분쇄 결의와 관련해서는 김영삼 정권의 개혁 후퇴와 노동 탄압정책에 대한 규탄 자주적 단결권을 중심으로 한 노동악법 개정 업무조사, 주요간부 구속, 체결권 시비, 손해배상청구 등 탄압 철회 촉구 및 분쇄 결의 해고자복직, 구속자석방, 고용안정 촉구 등을 실천지침으로 내렸다. UR 비준 거부와 우리농업 살리기 운동을 위한 구체 실천지침은 우리농산물먹기운동 단체협약 명시 UR 국회 비준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 UR 비준 찬성 국회의원 소환과 정당 반대운동 노동자 가족을 포함해 전 조직적으로 우리농산물먹기 농촌일손돕기 활동 등이다.

그리고 1994년 노동절대회 주요 요구는 ·총경총 합의 분쇄 94임투 승리어용노총 해체하고 민주노총 건설물가폭등 저지하고 고용안정 쟁취원직복직 전원석방 수배해제 완전쟁취!벌경영 해체하고 경제민주화 쟁취노동악법 철폐하고 자주적 단결권 쟁취 등으로 정했다.

 

대회 조직과 준비

1994년 노동절은 권역 또는 지역별로 개최하고, 수도권대회에 중앙대회의 성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서울, 인천, 경기, 부천, 성남 등 수도권 지역이 참가하는 수도권대회 명칭은 104주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로 하고, 전노대 주최, 전국연합과 민주당 후원으로 세계노동절 기념대회 수도권 조직위원회가 주관했다.

수도권 조직위원회 대표자회의는 지역·업종·그룹별 수도권 조직 대표자로 구성하고 집행위원회는 전노대 집행위원회와 지역·업종·그룹 수도권 집행책임자, 그리고 각 반 반장으로 구성했다. 수도권 조직위원회 대표자회의는 416일 회의를 열어 대회 기조 전반을 논의했다. 집행위원회 회의는 주 1, 수도권 집행책임자가 참석하는 회의는 415일 한차례 열어 조직화를 논의했다. 각 준비반 회의는 주 1회 열어 실무집행을 점검·준비했다.

수도권 조직위원회 대표자회의는 세계노동절 기념주간을 425일부터 51일까지 1주간으로 정하고 단위노조 조합원들의 실천 활동을 조직했다. 기념주간 사업으로 노동절 자료집을 제작하고 51일 노동절이 합법화된 점을 활용해 각 지역·업종·그룹별로 단위사업장은 물론 주요 거리 또는 인파가 운집하는 역광장 등에 현수막을 부착했다.

한편 세계노동절 기념 심포지엄 국가경쟁력과 노사관계 개혁425일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실에서 열어 국가경쟁력 강화를 명분 삼아 임금인상 투쟁을 무마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파헤쳤다. 2백여 명이 참가한 토론회는 김금수(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사회로 김대환(인하대 경제학과)국가경쟁력 강화방안과 이광택(산업사회연구소장)노사관계 개혁방향에 대한 발제, 김말룡(민주당 국회의원), 서경석(경실련 사무총장), 이선(노동연구원 부원장), 황인성(전국연합 집행위원장), 박길상(노동부 노동정책과장), 최은석(전노대 공동대표)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노동절대회 홍보를 위해 421일에는 포스터(2) 8천 부, 담화문(2) 3,500부를 제작했고, 전야제와 대회 당일에는 대회 전단(164) 2만 부와 국민홍보물(164) 2만 부를 배포했다.

 

수도권 노동절대회 진행

문화선동대는 풍물 문화선동대와 노래 문화선동대 각 64, 율동 문화선동대 20명으로 구성했다. 그밖에 연출과 내용 준비 과정에 20여 명의 문화단체 회원이 참여했다. 회원이 참여한 문화단체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노동예술위원회, 풍물패 터울림,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노동미술위원회, 극단 현장, 꽃다지, 노래선언, 부천 그루터기 등이다. 전야제에는 푸른물결, 천지인, 노래공장, 본대회에는 꽃다지, 노래선언이 참여했다.

노래 문화선동대에는 연출단 2명 포함, 경기남부(안산) 27, 서노협(구로·중동부·서부) 15, 부노협 6, 인노협 8, 대학노련 3, 병원노련 3명으로 총 64명이 참여했다. 노래 문화선동대는 420일 첫 회의를 해서 조직별 참가인원을 점검하고 노래 선정과 역할 분담을 진행했다. 이어 272차 회의에서 독창자를 선정하고 노래 진행의 구체적 내용을 점검했다. 노래 문화선동대 연출은 노래선언 최도은, 꽃다지의 박미영이 맡았다.

풍물 문화선동대에는 서노협 10, 인노협 9(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 부노협 14, 경기남부 3, 건설노련 10, 전문노련 1, 병원노련 15, 언론노련 1, 사무노련 1명 등 총 64명이 참여했다. 풍물 문화선동대는 1대 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 2대 서노협, 3대 부노협, 4대 인노협과 경기노련으로 해서 총상쇠(부천 김진웅)의 인도로 전야제 길놀이, 대동놀이, 본대회 식전행사인 판굿, 본대회 길놀이, 깃발 입장, 상징의식, 거리행진을 진행했다. 풍물 문화선동대장은 조봉호(인노협 문화부장), 이현주(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 문화부장)가 맡았으며 연출은 홍성민(터울림)이 담당했다.

율동 문화선동대는 부노협 8, 경기남부 안산지구 12명 등 20명이 참여해 423일부터 30일까지 지역별로 연습하고, 51일 오전 10시에 총연습을 했다. 율동 문화선동대장은 부노협 문화부장과 경기남부 안산지구 문화차장이 맡았고, 율동 선동대장은 안산 율동패장이 담당했으며 전노협 문화국 이창환이 총연출을 맡았다. 율동 문화선동대는 식전행사로 율동과 율동배우기, 본대회 때 율동과 상징의식, 거리행진과 마무리집회를 진행했다.

물품지원반은 전노협 5, 건설노련 2, 병원노련 1명 등 8명으로 구성해 428~29일 차전 제작과 대회 현수막(30m) 제작, 30일 전야제 설치작업, 본대회 무대 설치작업, 전야제 철거, 현수막 제작, 51일 본대회 철거, 마무리집회 무대 설치와 철거 등 대회진행 전체의 설치 및 철거를 담당했다.

질서유지반에는 전노협 100(서울 30, 인천 10, 부천 20, 경기 30), 병원노련 15, 한총련 50명 등 총 155명이 참가했다. 질서유지반은 대회 준비를 위한 회의를 3차례 진행했다. 415일에 열린 1차 회의에서 질서유지반장으로 대학노련 법규부장을 선임하고 질서유지대장은 전노협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418일에는 전노협, 대학노련 담당자가 참석한 가운데 2차 회의를 열어 질서유지대 운영계획을 확정했으며 전노협에서 100, 업종회의, 현총련과 대노협에서 100명의 질서유지대원을 책임지고 조직하기로 했다. 3차 회의는 429일에 열렸는데 전노협 수도권 쟁의국 담당자들이 참가해 질서유지대 조직상황을 점검하고, 질서유지 시나리오를 확정했다. 질서유지대장은 전노협 쟁의차장으로 결정하고 질서유지대 모자 150, 무전기 8개 등 물품을 준비했다.

430,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전야제가 시작됐다. 놀이, 개막식, 전야제 본행사(지역·업종 발표 및 문화단체 공연), 대동놀이와 폐막식까지 진행된 전야제에는 노동조합 400여 명과 개별참가자 및 학생 등 총 1,000여 명이 참가했다.

51일 오후 2시부터 세계노동절 본대회에 앞서 사전행사는 노동자문선대 공연, 문화단체 공연, 연설(자동차보험노조, 여성문제, 원진레이온, 전해투, UR문제)로 진행했다. 이어 전노협 문성현 사무총장의 사회로 본대회가 열렸다. 주최·주관단체 소개, 내빈소개, 대회사(권영길 전노대 공동대표), 축사(이창복 전국연합 상임의장), 주제연설, 상징의식, 세계노동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채택, 특별결의문과 대회결의문 낭독이 이어졌다. 본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동국대에서 출발해 종로5, 종각, 미도파를 거쳐 서울역에 도착해 마무리 집회를 진행했다. 문선대 선무방송과 조직별 구호 및 노래, 문화단체 공연, 노동자 문선대 공연 등에 이어 전노대 양규헌 공동대표의 연설 후 만세삼창으로 모든 대회를 마무리했다.

 

영남권 노동절대회 진행

199438일에 열린 13차 영남지역 노동조합 대표자회의에서는 1994년 노동절 행사를 영남노동자대회로 치르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각 지역 실무책임자로 대회집행위원회를 구성했다. 2개월에 걸친 준비 속에서 대회조직위원회는 영남 9개 지역, 130여 개 노조, 30개 노동단체의 참여로 구성됐으며 재정은 참여단위에서 분담하기로 했다.

대회 명칭은 세계노동절 기념 및 박창수열사 정신 계승 영남노동자대회로 정하고 영남노동자대회조직위원회 주최, 영남지역노동조합대표자회의 주관으로,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대경연합·경남연합, 부산경남총학생회연합, 대구경북총학생회연합이 후원했다.

영남지역 대회는 지역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정신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다. 전야제, 본대회 등은 철저한 사전준비로 순조롭게 진행됐으며 1993년과 비교해 참여 인원도 늘었다. 그러나 진주, 포항, 구미지역에서는 지역 행사로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고 산별노조 건설 등 전국적인 노동자 단결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미흡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전야제는 430일 부산대학교 운동장에서 하고, 부산대학교 문창회관과 신축학생회관에서 1천여 명이 숙박한 뒤 다음날 7천여 명이 참가해 본대회를 진행한 뒤 부산역 광장을 거쳐 남포동 제일극장까지 행진하고 마무리했다.

 

전국 세계노동절 기념대회

 

지역

일시(장소)

주최

진행 경과

광주

4. 29

(YWCA)

광노대 주최

대회조직위원회 주관

- 기념식과 문화행사로 진행(600여 명 참가)

- 한국노총 해산,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민주노조 총단결, 임투시기 해고자 투쟁 결의

전북

5. 1

(이리 국민생활관)

노동절대회 조직위

- 경총 임금합의 반대투쟁, UR재협상요구 총투표 실시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문 채택

- 노동자 가요제(400여 명 참가)

순천

4. 30

(순천대)

노동문제연구소

- 1994 전남동부지역 노동자 문화제

- 여천, 광양 등의 노동자 400여 명 참가

대전

5. 1

(한남대)

34개 노조, 단체

- 400여 명 참가

- 기념식, 체육대회, 공동체놀이

천안

4. 30

(단국대)

천안온양아산

지역노조대표자회의,

천안상담소

- 기념식, 모범노조 표창, 연설대회(13)

- 문화제, 300여 명 참가

청주

5. 1

4. 30전야제, 51절 기념식 임투전진대회

경기

광주

5. 1

광주지역노조대표자회의

- 노동절기념 및 제5회 광주지역 노동자 체육대회

- 12개 사업장 1,000여 명 참가

성남

4. 30

- 창립 5주년기념 및 노동절 기념대회(300)

- 기념식 후 선동 마라톤

대구

4. 30

(대구백화점 앞)

대구노동자대회 조직위

- 사전행사로 임투결의대회

- 경총 임금합의 분쇄, 손배청구 등 탄압에 맞선 총투쟁 결의

포항

5. 1

(포항종합운동장)

포항지역노조 대표자회의, 금속연맹

포항지역본부

- 세계노동절 104주년 기념과 94임단투 승리를 위한 포항지역 노동자대회

- 식전행사 : 문선대공연

- 본대회 : 대표자회의 의장 동양석판 배상일 위원장의 대회사, 전노협 중앙위원(대구노련 부의장)과 한국노총 본부에서 연사로 참석

- 행진 : 목화예식장까지, 선전전 실시

- 600여 명 참가

 

1994년 세계노동절대회 평가

세계노동절 기념대회 예산 총액은 1,000만 원으로 이를 업종회의, 전노협, 현총련, 대노협(5:3:1:1)이 부담하기로 했다. 416일 수도권대회 대표자회의에서 전체 예산을 800만 원으로 배정하고 집행위원회로 위임했다. 그러나 본대회 무대 설치와 음향 등 각종 준비비가 턱없이 부족해 재고를 요청했지만, 419일 전노대 임시집행위원회 회의에서는 예산증액이 불가하다고 결론냈다. 문화반 예산 중 공연단체 악기, 기재운반비, 차비, 식비 등의 경비와 전야제 준비를 위한 비용이 180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는데 이 중 80만 원이 삭감됐다. 문화반은 전야제 음향은 추가예산 없이 치르도록 해보겠으나 지역·단체 등의 참가자 경비와 무대 설치나 대동놀이 등을 진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산은 책정해 달라고 요구해 결국 예산 200만 원을 추가했다.

1994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는 8개 요구안을 내걸었으며 이 중 ‘1994년 임금인상 투쟁 승리민주노총 건설을 주요 슬로건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주요 슬로건을 이루어내는 주요 투쟁과제로 경총 임금합의 분쇄투쟁어용노총 해체 투쟁을 제출했다.

대회의 기조와 내용에 대한 당시 평가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1994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는 36년 만에 합법적으로 치르는 대회로서 민주노조 진영이 전체 노동자의 대표성과 정통성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민주노조 진영은 노동절의 역사적 전통을 잇는 한국의 유일한 노동조합 조직임을 확인하고, 연장선에서 민주노총 건설 과제를 대중적으로 확인한 성과가 있었다.

둘째, 그러나 1994년 임금인상 투쟁에 대한 구체적이고 대중적인 결의를 도출해고 민주노총 건설의 구체 상을 정립하는 데는 많은 과제를 남겼다. 기존에 전노대와 전노협 차원에서 확인된 바 있는 1994년 임단협투쟁 방침과 제반 투쟁과제에 대한 방침을 대중적으로 제기하고, 이러한 투쟁 속에서 조직발전 전망을 열어나가는 측면에서는 내용이 미약했다는 평가다. 또 민주노총 건설이 주요한 과제라는 점은 확인했지만, 건설의 구체적인 상과 경로에 대해 대중적으로 구체화하지 못했다.

그리고 민주노총 건설 과제의 부각에 비해서 해고자복직 투쟁, 고용안정 쟁취투쟁, UR 비준 반대 및 쌀수입개방 반대 투쟁 등 6개의 당면투쟁 슬로건에 대해서는 내용 비중과 대중적 방침이 미약했다. 대회사와 주제연설의 내용이 민주노총 건설 과제에 치중되고 중복됨으로써 그 중요한 매개로서의 당면투쟁 사안은 미약하게 다루어진 셈이다.

대회 전체적으로 내용이 취약하고 사전 결집이 늦어져 시간이 지연되긴 했지만, 프로그램 진행은 순조로웠다. 본대회 후 행진 시 지침에 따라 지역별로 방송차, 짝짝이, 모자 등을 준비해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야제에 관해서는 결정 과정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제기가 나왔다. 노조 대오의 참여가 저조할 것이라는 점이 예상됐고, 실제 참여율이 미약했다는 점에서 전노대 차원으로 전야제를 주최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노동절 행사준비에 대한 평가 중 대회장 설치, 철거, 행사준비 일체가 참여조직들 모두에 의해 준비되지 않고 전노협 사무총국 사람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점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한편 영남권 대회의 경우 3월부터 영남권 각 지역이 사전준비를 해서 훌륭하게 대회를 치러냈듯이 수도권대회도 수도권 지노협과 업종조직이 사전 준비체계를 갖추고 준비했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게다가 중앙대회라는 성격이 있으므로 중앙차원의 지원을 받는 형식이 가미돼야 하는데 전면적으로 중앙 주관하에 준비돼 수도권 단위의 주도적인 역할이 발휘되기 어려웠고 중앙에서도 전국을 관장한다는 측면이 약화되는 이중의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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