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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인드 챈스/ Blind Chance, Przypadek>
첨부파일 -- 작성일 2010-03-04 조회 1056
 
<블라인드 챈스/ Blind Chance, Przypadek>

이성철 (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세 가지 색 <레드>, <화이트>, <블루>, 그리고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등으로 익숙한(?) 폴란드의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어렵다!) 감독의 1981년 작품입니다(국내의 여러 영화 사이트에는 1987년으로 되어 있네요). 폴란드 역시 우리에게 퀴리부인,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쇼팽, 시엔키비치, 바웬사 등으로 친근한 나라입니다. 여하튼 이 영화 역시 음악이 좋군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도 음악과 인형극이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곁가지 이야기입니다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란 제목은 영화의 내용을 오히려 곡해시킬 수 있는 제목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베로니카(이렌느 야콥의 1 2)가 모순되고 바르지 못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겠기 때문입니다. 폴란드의 베로니끄와 프랑스의 베로니카의 연기(緣起)적인 삶과 정체성 찾기에 관계된 것이므로, 보다 의미에 걸맞는 제목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각설하고…

 

<블라인드 챈스: 폴란드 원제목은 'Przypadek'입니다. ‘위기라는 뜻이랍니다. 그 의미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은 뒤에서 밝히도록 하죠). 먼저 이 영화가 발표된 1981년이라는 시점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 합니다. 어쩌면 1980년이나 그 전 해부터 구상ㆍ제작되고 있었겠지요. 그러므로 이 영화는 폴란드의 1970-1980년대 또는 이를 추동한 이전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갖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 비텍(Witek)이 겪는 세 가지 서로 다른(그러나 당연히 연결된) 스토리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각각의 스토리들은 기차역에서 비롯됩니다. 비텍은 바르샤바 의과대학의 학생입니다만,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4년 동안 공부했던 의사의 길을 일단 접습니다. 반체제 인사인 학장도 만류하지만…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비텍은 바르샤바로 가는 기차에 가까스로 올라타게 됩니다. 열차 안에서 이전 공산당(폴란드 통일노동자당)원이었던, 베르너(Werner)라는 중년의 신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반공산당 활동으로 투옥되었다가, 1954년에 출옥한 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호의로 비텍은 한동안 함께 지내게 됩니다. 베르너는 아담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도 투옥 경력이 있으나 여전히 공산당원이며, 바르샤바 지구에서 꽤 높은 간부인 모양입니다. 한편 아담의 부인인 크리스티나는 이전 베르너의 연인이었던 모양이네요. 어느 날 아담의 부탁으로 베르너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게 됩니다. 지난 40년 동안 자신이 간직했던 생각 또는 입장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느 세대에서나 빛을 갈망합니다. 지식의 욕구, 신념의 욕구, (이 모두)세상을 더 낫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욕구는 마르크스보다 더 오래되었고, 또한 더 새롭게 되는 마약 같은 것입니다

 

강연을 부탁한 아담의 표정이 좋지 않겠죠? 암튼 이 일 등을 계기로 베텍은 아담의 권유로 공산당에 가입을 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임무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신임을 얻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그의 첫사랑이었던(열 일곱살 때) 츄스카(Czuszka)와 조우하게 됩니다. 츄스카는 반공산당 지하운동조직에 몸담고 있는 학생입니다. 각종 유인물을 등사해서 배포하고, 금서들을 반입하여 그다니스크, 크라코프, 슈체친 등의 지역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의 학습용으로 전달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이미 이러한 일을 감시를 통해 잘 알고 있죠. 결국 지하조직이 발각되어 두 명이 연행되고, 인쇄기는 압수됩니다. 그리고 츄스카 역시 형사에게 붙들려 가게 됩니다. 비텍은 공산당원이라는 명함 덕분에 연행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츄스카와 그녀 동지들의 비텍에 대한 시선은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비텍의 배신으로 조직이 와해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비텍은 아담을 찾아가 폭행을 하고 격렬한 항의를 하게 됩니다. 프랑스로 떠나는 날, 우지와 루블린 등지에서 발생한 노동자 파업 때문에 출국을 접고 현지와의 결합투쟁을 위해 다시 남게 됩니다만, 결국 공산당을 떠납니다.

 

두 번째 스토리 라인입니다. 비텍은 바르샤바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지 못합니다. 역 구내에서 안전원과의 말썽으로 30일간의 공공봉사 명령을 받게 됩니다. 봉사의 나날 중에서 그는 어릴 적 친구였던 다니엘(Daniel)을 만납니다. 다니엘은 1968년 고향에서 덴마크로 가족 모두 이주한 친구입니다. 아버지의 장례식 땜에 잠시 폴란드로 오게 된 것이죠. 이제 그는 반체제 인사이고 지하대학(flying university), 우리식으로 표현한다면언더쯤이 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해외 지원). 비텍은 자연스레 지하활동과 결합하게 됩니다. 소위 운동권 활동가가 되는 것이지요. ‘언더에서는 부칸의 작품들, 코르니키의 신학서들, 그리고 코왈릭의사회체제등의 책으로 학습을 합니다. 폴란드에서는 1968년 경 부터 실제로 학생과 지식인들의 문학적 저항운동이 은근한 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하활동 중에 비텍은 신부인 스테판과 말렉, 스타첵(학장의 아들) 등을 만나게 됩니다(역시 반체제 인사들). 특히 스테판 신부에게는 세례를 부탁합니다. 이들은 폴란드 자유노조(훗날 연대노조의 기초)를 위한 서적의 반입을 비텍에게 부탁하게 됩니다. 참고로 폴란드 자유노조는 훗날솔리다리노스치라고 불리게 됩니다. 영어의연대’(solidarity)에 해당합니다. 1980년 발틱해 연안의 그다니스크 레닌조선소를 중심으로 설립된 동유럽 최초의 합법적인 독립 노조입니다. 이후 여러 곡절을 거치면서 1989년의 총선에서 연대노조가 압승하게 되면서, 1990년 솔리대리티 정권이 출범하게 됩니다. 이때의 대통령이 당시 노조위원장이었고, 나중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는 레흐 바웬사입니다(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철의 인간>을 보시면 연대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사족입니다만 바웬사는 2000년 정계은퇴를 선언합니다. 폴란드가 신자유주의의 길을 걷는다고 판단한 민중들이 더 이상 지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연대노조의 출발은 흔히 동유럽 및 소련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첫 신호탄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시기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한편 다니엘에게는 이제는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는, 6살 많은 누나 베라(Wera)가 있습니다. 유부녀인 그녀는 비텍과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사흘간의 밀회 또는 밀애 기간 중언더의 지하 유인물 제작소가 발각되고 동지들은 체포되어 감방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지하 유인물제작소의 안전은 비텍이 담당하게 되어 있었으나, 베라와의 만남으로 경찰들의 급습시에 부재중이었던 것이죠. 이 일로 비텍은 또 다시 동지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신부는 그들을 탓하지 말고 기도를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지하활동에는 음모가 판을 쳐. 양날의 칼이지라면서 격려를 합니다. 이때 폴란드 전역에는 다시 총파업이 발생합니다. 특히 바르샤바의 우르수스 공장 노동자 파업이 소개되고 있군요. 참고로 1976년에 발생한 우르수스 트랙터 공장노동자 투쟁의 결과, ‘노동자옹호위원회가 창립되고, 이 조직은 나중(1981) 연대노조에 합류하게 됩니다.

 

당 활동에도 결합되지 못하고, 반공산당 활동에서도 본의 아니게 배척되는 비텍의 삶이지요? 영화 제목처럼기회들이 스쳐지나갑니다(블라인드 챈스). 또는 서서히위기’(Przypadek)가 잦아듭니다. 물론 비텍 개인의 위기에 더해 조국의 위기까지…

 

이제 세 번째 스토리 라인입니다. 다시 바르샤바로 돌아가려는 비텍. 그러나 이번에도 열차를 놓쳐버립니다. 그러나 안전원과의 다툼은 없습니다. 근데 역내에서 의과대학 동창이었던 올가(Olga)를 만나게 됩니다. 비텍의 삶에서 극적인 삶의 반전을 가져다주는 이는 모두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이군요. 올가의 만남을 통해 그는 다시 의학공부를 하게 되고, 올가와 결혼도 하게 됩니다. 1978년 졸업과 함께, 학장의 권유로 대학에 남아 박사반을 밟게 됩니다. 강의도 병행하면서… 어느 날 회진 중 자연과학대학 노동자 서명에 동참해달라는 요구를 받지만 이를 거절합니다. 당국의 학생활동 탄압에 항의하는 서명이었던 것이죠. 이미 학장의 아들인 스타첵은 급진문예모임 건으로 체포된 상태입니다. 학생들은겁을 내시는군요라면서 비난과 힐책을 합니다. 서명 거절은 비텍이 겪은 앞서의 일들(당 활동과 언더 활동)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 날 늦은 밤, 비첵은 역에서 학장을 만납니다. 학장은 곧 대학에서 쫓겨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대신 리비아로 가 달라고 말합니다. 리비아에서의 학술 세미나에 대신 참석해달라는 것이지요. 비텍은 이에 응하게 되고, 6 11일 공항으로 가게 됩니다. 불안을 느낀 올가(둘째 아이도 임신하고 있습니다)의 만류를 뒤로 한 채… 그런데 공항에는 빠리의 카톨릭 모임(실제로는 국제 연대 모임인 듯)에 가려는 스테판 신부 일행들도 보입니다. 정보당국의 감시의 눈초리도 번뜩이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들과 동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텍의 리비아행은 빠리를 경유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행기는 활주로를 내달려 하늘로 치솟게 되지만 이내,

 

 ‘

 

보는 내내 영화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폴란드의 역사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비텍이 될 수 있고, 아니면 아담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다니엘이나 츄스카, 그리고 스테판 신부가 될 수 있겠습니다. 폴란드의 앞날은 여전히 위기일까요아니면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처럼, "위기란 다름 아니라 낡은 것이 죽어가는 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는 것일까요?

 

* 사족입니다만 주인공 비텍의 생년월일은 1956 6 27일입니다. 폴란드의 1956년은 포즈난 노동자 봉기가 일어난 해입니다. 포즈난은 <쿠오 바디스>를 쓴 시엔키비치의 문학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956 6월에 발생한 이 봉기는 폴란드통일노동자당(=공산당) 지배 하에서 일어난 최초의 저항이었습니다. 참고로 폴란드는 1952년에 인민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 봉기는 자동차 엔진공장 노동자들의 동맹파업으로 시작됩니다. 이후 '10월의 봄'이라는 정치체제의 자유화가 일정 정도 주어지고, 흔히 우리가 '고물카'라고 얘기하는 '고무우카'가 정권에 복귀하게 됩니다. 근데 감독의 생일도 같습니다. 다만 출생년도가 다르지요. 감독의 출생년도는 1941, 비첵의 그것은 1965, 생일은 모두 6 27. 감독의 조국 폴란드에 대한 일종의 비틀기가 아닐까요?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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