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공공성에 대한 단상(斷想)
이승원 (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노동자와 건강이란 코너를 연재하다가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대로 무상의료가 되면 어떻게 되지?’ 지금과 같은 의료체계에서 무상의료가 된다면 우리에게 의료의 선택권은 없을 것이다. 무조건 건강검진 받고 통계치 보다 나쁜 수치가 나오면 약먹고, 이상 소견이 나오면 수술 받고, 치료라는 이유로 감금당하고 그러다가 악화되면 투석도 받고, 인공장기와 관절도 갈아 넣고 이식도 받으면서 삶의 끝을 생각하게 된다.
아직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약과 치료항목들도 있고, 자비 부담률도 만만치 않고, 중한 병일수록 치료효과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으니 다른 방법들도 찾고 있지만 무상의료라면 어떻게 될까?
반성과 함께 이야기 하면 나야말로 1999년 3월 통합 공공연맹이 출범하며 초대 사무처장을 맡고 이 사회에 사회공공성이란 화두를 던지며, 무상교육·무상의료를 외쳤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정작 건강에 관심을 갖고 지금의 의료시장에 대해 알수록 지금 상황에서 무상의료가 된다면 혜택을 보는 사람은 의료자본뿐이다. 고가의 의료기기들을 팔아먹고 치료만으로 이윤율이 확보되지 않자 예방의학을 이야기하며 검진용 장비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환자의 입자에서 본다면 건강하기 위해 검진을 받지만 방사능을 이용하는 X-ray촬영, X-ray의 400배에 달하는 방사능에 노출되는 CT를 찍으면서도 과연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도 못하고 있다. 암에 걸리면 당연히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고 당뇨, 고혈압은 평생 약에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 두통, 치통, 생리통을 한 가지 약으로 해결하는 서양의학은 진통제의 오용으로 신경계통 질환을 유발시키고, 항생제의 남용은 슈퍼박테리아를 병원에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200년도 안된 서양의학이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인가? 최근에는 그의 딸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와 그 망령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지만,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가 의료법을 개악하여 의사와 한의사가 아니면 의료행위 자체를 못하도록 하면서 부터이다. 그래서 침사, 구(뜸)사, 접골, 안마법 등의 전통의술은 사장되고 병원과 한의원만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전통적인 민방에 의한 생약들은 건강보조식품이라는 포장 외에는 판매할 수도 없게 되었다. 최근 제약회사 연구진들은 오지의 원주민들이 전통적으로 쓰는 약초를 연구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경험의학을 통해 터득한 그들의 약들이 훨씬 우수함을 인정한 사례이다.
그래서 무상의료를 위해서는 의료행위의 독점부터 풀어야 한다. 법적 강제가 아니라 효과를 통해 건전한 경쟁이 이루어져야한다. 이것이 의료비를 낮추고 음성적인 의료행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나날이 늘어가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언제까지 무대책으로 갈 것인가? 독점적 지위가 사라지면 안전한 치료법을 개발하고 환자 중심의 의료체제로 전환되어 갈 것이다. 어려서부터 자기 스스로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면역력을 증강시킬 수 있도록 운동과 먹는 것 등을 교육하고 습득하게 해야 한다. 이런 것이 진정한 예방이고 의료비를 낮출 수 있는 길이다. 아픈 사람이 많으면 국민총생산이 증가하는 모순덩어리 자본주의 체제는 이제 바꿔내야 한다. 사람의 목숨을 갖고 돈을 버는 장사꾼은 없어야겠다.
12년 전 우리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대안학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경쟁체제 속에 애가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제도권 교육을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민주노총에서 결의한 공교육 정상화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과 학교운영위 참여 결의에 서명을 하고는 생각을 바꿨다. 그 결과 아이는 어버지 때문에 학교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고,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언제인가 내 주변의 운동권 동지들이 자녀들을 대안학교에 보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에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식이 소중하고 대안교육이 더 났다고 생각한다면 민주노총의 방침도 바꾸라는 것이다. 교육도 자율화하여 제도권교육과 대안교육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공적인 결의는 공교육 중심이고 자기 자식은 대안교육이라는 이중성이라면 곤란한 것 아닌가? 특히 대중지도자들이 그런 모습이라면 대중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의료공공성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료보험 확대적용, 무상의료가 의료자본의 고수익만 보장하고, 노인요양보험이 현대판 고려장 같은 노인요양병원만 양산하여 병원운영자들의 배만 불린다면 현대사회의 비극 아닌가 싶다. 국가에게 건강과 치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내 건강을 국가와 자본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나에게 올 혜택만큼 돈으로 준다면 더 좋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주노총과 정치권도 이제는 교육과 의료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를 토론해 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