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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제화 노조사수 및 임금인상투쟁(1984년 7월)
첨부파일 -- 작성일 1984-07-28 조회 235

라이프제화 노조사수 및 임금인상 투쟁

 

시기 : 1984728

 

 

라이프제화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시기 투쟁의 전형을 보여준다. 열악한 작업조건과 일방적인 착취에 맞선 자발적인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이 투쟁으로 다시 노동조합은 결성한 후 회사측의 집요한 노조 와해공작을 물리치고 임금인상 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거쳤다.

 

1984년 당시 라이프제화는 노동자 수가 210여 명에 이르는, 성남지역에서는 비교적 대기업에 속했다. 그러나 연월차 휴가도 없고, 기숙사는 난방시설조차 안 돼 있었으며, 전근대적인 강압과 복종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노동력 착취 기업이었다. 게다가 상여금은 명목상 연 200%였지만 실제로는 100%만 지급하고 있었다. 1984721, 하기 상여금 50% 지급 약속이 이행되지 않아 현장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724, 불량제품에 대한 임금공제 방침이 발표됐다. 727일 생산직 조장들이 회의를 해서 급여에서 공제하지 말고 연장작업으로 변상하자는 안을 건의했지만 회사측에서는 이마저 묵살해 버렸다.

 

728, 노동자 40여 명은 국민체조에 불참하고 탈의장에 모여 회사측을 성토했고, 이에 대해 회사측에서는 취업규칙 위반을 사유로 고참노동자 5명을 해고시켰다. 해고자들은 해고를 인정하지 않고 퇴근을 거부한 채 현장노동자 40여 명과 농성에 돌입해 부당해고 철회, 해고자 복직, 사장 면담을 요구하다 밤 10시에 농성을 해산하고 730(월요일)에 다시 농성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730, 해고자 5명이 동료들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유인물을 회사 정문에서 배포하며 출근을 시도하자 경찰과 근로감독관이 출동했고, 근로감독관이 부당해고임을 지적하고 복직을 명령하자 퇴근시간 때 복직을 결정했지만 상여금 지급과 불량제품 변상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였다.

 

라이프제화 노동자들은 국민체조 거부투쟁을 치른 이후 회사측에 대항할 조직의 필요성을 인식, 1주일간의 준비 끝에 8760여 명이 참가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오길성, 부위원장에 박순관, 원용달을 선출했다. 회사측에서는 노조 탈퇴공작을 폈지만 817일 노조신고필증이 교부됨으로써 노동조합이 법적 자격을 확보하게 됐다. 이어 93일부터 네 차례에 걸쳐 노조사무실과 위원장 전임문제를 포함한 단체교섭을 시도했지만 회사측에서 이에 응하지 않자 104일 잔업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이에 회사측이 단체교섭에 응해 1026일 해고 등의 인사권을 노조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한편 1129일 회사측은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5개 하청업체를 현장으로 투입하고 90여 명의 노조 반대파를 조직하여 폭력 등을 사용, 약 한 달간에 걸쳐 노조를 와해시키려 했다. 하지만 제품 과잉생산으로 재고품이 산적하여 경영압박을 받자 하청업체를 철수시킴으로써 노동조합 파괴공작은 실패하고 말았다. 자신감을 회복한 조합집행부는 122260여 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사장실을 점거하고 연말상여금 50% 지급을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해 이틀 만에 투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1985년 들어서도 회사측에서 교섭을 기피하자 215일 노조간부 철야단식투쟁에 이어 전 조합원 중식거부 후 현장농성에 돌입해 회사측이 협상에 나오게 했고, 424일 임금협상이 결렬되자 426일부터 투쟁에 돌입, 하루 만에 승리를 쟁취했다. 같은 해 515일에는 상여금을 생산부에만 지급하자 체불임금과 상여금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이어 516일에는 횃불농성을 감행하고, 간부들이 여의도 그룹본부로 찾아가 사장면담을 요구하는 등 투쟁을 확대시키자 근로감독관이 조정 중재하여 상여금을 즉시 지불하고, 체불임금이 하루 뒤인 517일 지급됨으로써 농성을 해제하게 된다.

 

이러한 라이프제화 조합원들의 끈질기고 단합된 투쟁은 모범이 되어 성남지역 민주노조 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라이프제화의 투쟁은 다른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투쟁을 통해 성장한 라이프제화노조의 지도부들이 성남지역 민주노조운동의 단결과 발전에 끼친 영향도 지대하다.

 

이밖에도 성남지역에서는 19841215일 설립된 협진화섬의 노조사수 및 해고자 복직투쟁’, 1985623일 설립되어 6개월간 전개된 광성화학의 조합원탈퇴 강요와 해고자 복직투쟁’, 소예산업 블랙리스트 관련자 해고와 완전복직투쟁1987년 이전에 많은 투쟁이 전개되어 역량이 축적되고 있었다.

  

참고자료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편, <성남지역 실태와 노동운동>(민중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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