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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어두워야 하고 눈길은 미끄러워야 한다_양규헌 (27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1-02-11 조회 922
 

밤은 어두워야하고 눈길은 미끄러워야 한다

 양규헌(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숱한 사람들이 새해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겠다고 동해안을 온통 뒤집어 놓는다. 새해 아침 해나 그믐날 떠오르는 해나 전혀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매년 새해에 해맞이 부산을 떠는 것은 절망의 벼랑에서 내일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나도 소래산을 찾았다. 기상관측 사상 최대의 폭설, 추위라는 발표에 걸맞게 산길을 꽁꽁 얼어붙었다. 불어오는 북풍에 몸을 움츠리며 바람 탓, 날씨 탓을 하며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늦추는 등산객들의 볼 멘 소리가 비탈길마다 자자하다.


소나무 가지위로 쌓여진 눈은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찻길 옆으로 ‘불법주차견인조치’라는 프랭카드와 산길 옆에는 오래되어 낡아빠진 팻말에 '좌익용공세력 신고' 어쩌고 하는 빛바랜 글씨가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심장을 파고든다.

‘좌익용공’이 무엇일까? ‘좌익용공’이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어 지하철에 버스 안에 쓰여 질 정도라면 ‘우익용자’라는 말도 있을텐데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좌익용공'의 기준과 '우익용자'의 기준이 뭘까? 그리고 '좌익용공'은 그자체가 범죄이며 법률의 적용을 받는가?

법은 ‘정의와 평등 자유의 근본’이라고 하고, 법은 ‘인생의 안내도’라고 하고 ‘생활의 설계도’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법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발전해 온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고, 민중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라는 판단 때문이다.

 법에서 드러나는 인간상은 이익을 쫓아 타산적으로 행동하는 장사꾼의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을 돈을 쫓기 위해 거래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설정하고 노동자까지도 인간 이전에 노동이라는 상품을 파는 존재, 이른바 자본가에 종속되는 인간상으로 그리고 있다.

 ‘좌익용공신고’의 근거가 지배권력의 폭력이든, 법의 잣대에 의한 것이든 그 자체를 분류할 수도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편의로 만들어진 그 법의 본질은 세월이 가도 불변이라는 사실이다. 때로는 통치를 위해, 때로는 일관된 그들의 돈벌이를 위해 마구잡이로 활용되는 것이다.

 박정희시절에 만들어졌다가 1980년에 폐기된 긴급조치 1호가 36년의 세월 속에 암약하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로 유령같이 나타나 무차별로 개인의 기본 권리를 짓밟았다. '유언비어 유포'에서 '허위사실 유포'로 이동하면서 노동자, 민중에게는 의무만 살아 꿈틀거리고 권리는 죽을 수밖에 없으며 ‘좌익용공’도 반국가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이 범주에서 갇혀 역사에 반영되고 있다.

민생이라는 명분으로 다양한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고쳐지고 있다. 소외된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겠다고 비정규법안이 만들어지고 보호해야할 비정규노동자의 대상을 확대한다며 파견범위확대와 직업안정법까지 들이대며 비정규노동을 정상적 고용형태로 안착시키고 있다. 자유롭게 노동할 권리조차도 앗아간 채, 마련되는 노동법이 정상적인 법일까.

법이 없어야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법의 존재이유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법은 민중의 안정된 삶을 보호하는 전재에서 만들어져야하고, 운용이나 적용이 법의 정신대로 정의, 평등이라는 기준 속에서 입법되고 작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악법에 고통 받는 노동자, 민중의 고통에 지배권력의 고무줄 법적용이 법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천안함 관련한 유언비어', G20현수막에 쥐를 그렸다는 이유로 공안검찰의 영장 청구, 인터넷 실명제를 강요하다 구글에 개망신, 인터넷 강국이라고 떠들며 ‘민간인 사찰의 극치’를 보이며 네티즌의 목줄을 졸라댄 건, 법의 잣대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기본권 유린이다. 용산참사, 쌍차관련 구속자들에 대한 법적용의 행태는 이명박정권에 의한 정치적 사살일 뿐이다.

'밤은 어둡고, 겨울은 추우며 눈 쌓인 길은 걸음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종에 섭리와도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밤은 밝아야하고 겨울은 더워야하며 눈 쌓인 길일수록 빨리 갈 수 있다'는 억척과,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 나아가 법의 이름으로 민중의 생존과 기본 권리를 말살하는 법적용은 동일한 억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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