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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하고 시신이라도 : 예비검속자 집단학살
송시우 (노동자역사 한내 제주위원회 운영위원)
태풍 메아리가 북상하면서 빗발이 치던 지난 6월 25일 제주공항 옆 용담레포츠공원 한켠에서 ‘제61주기 한국전쟁시 제주북부예비검속 희생자 원혼 합동 위령제’가 봉행되었다. 예비검속 학살의 책임위치에 있는 군을 대표해 해군제주방어사령관도 참석했다. 강정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전국으로 불붙고 있는 시점에서 용한 걸음을 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전날 이 위령제와 관련된 판결이 제주지법에서 의미있게 나왔다. 예비검속 희생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경찰과 군이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가해행위를 한 다음 사채를 매장하였기에 국가는 유족들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요지의 판결이었다. 이는 제주도민이 4?3항쟁과 관련되어 제기한 소송에서 처음으로 국가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예비검속 희생자인 고씨는 1950년 6월 28일 남원면 의귀출장소 경찰 등에 의해 끌려가 서귀포경찰서로 이송된 뒤, 고구마창고에 구금되었다가 7월 29일 군 트럭에 실려나간 후,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되었다. 그러던 중 작년 2월 4?3유해발굴사업 과정에서 DNA분석을 통해 망인의 신원이 확인되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2010년 6월 8일 제주도 예비검속자 194명에 대해서 불법한 절차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진실위에서 결정내린지 1 년만의 판결인 셈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11월 17일에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실규명’을 내렸는데, 그 요지를 보면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6월 25일부터 9월 중순경까지 국민보도연맹원 등 ‘요시찰인’들을 육군본부 정보국 CIC와 경찰, 헌병, 해군정보참모실, 공군정보처 소속 군인과 우익청년단원에 의해 소집?연행?구금된 후 집단학살되었고, 이는 정부가 보도연맹원 등 위험인물로 분류해오던 사람들을 예비구금하여 법적절차 없이 살해했다는 점에서 ‘즉결처형’ 형식을 띤 정치적 집단학살‘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제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산북 산남 사람 1,000명을 연행하여 제주항 주정공창 창고와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구금하였다가 7월 16일과 8월 4일 이틀에 걸쳐 500여명을 수장시켰고, 나머지 수백명을 8월 19일과 20일에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인 정뜨르에서 그냥 구덩이를 파서 몰아넣고 집단학살을 자행하였다. 또한 모슬포경찰서에서도 관내 357명을 구금하였다가 그중 252명을 8월 20일에 대정 섯알오름 탄약고 동굴에 몰아넣고 몰살시켜 버린다. 6년이 흐른 후 여기서 수습된 유골들을 겨우 맞추어 132구의 무덤을 만들었으니 ‘백 할아버지의 자손 백조일손지묘’다. 그런데 당시 성산포경찰서장이었던 문형순 서장은 학살 명령을 거부하고 명분없는 학살극에 비껴서서 난리통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제주도 일지
1949
6. 5 국민보도연맹 창립 선포대회
11.27 치안국, 11월 27일 현재 보도연맹에 가입한 전향자 수가 제주에서 5,283명에 이른다고 발표
1950
6.25 6·25전쟁 발발. 제주도 해병대사령관이 제주도지구 계엄사령관 겸임
치안국장, 각 경찰국에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 형무소 경비의 건’을 전화통신문으로 긴급 하달하여 전국 요시찰인 전원을 즉시 구속할 것을 지시
6.29 치안국장, 제주도경찰국장에게 ‘불순분자 구속의 건’ 하달해 “보도연맹 및 기타 불순분자를 구속, 본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석방을 금한다”고 명령
7.11 치안국장으로부터 ‘불순분자 검거의 건’이 제주도경찰국장에게 하달
7.20 비상계엄 남한 전역으로 확대
7.27 토벌대, 예비검속으로 제주읍 주정공장에 수감했던 사람들을 사라봉 앞 바다에 수장시킴
7.29 서귀포경찰서 관내에 예비검속 됐던 수감자 150여 명이 끌려나가 바다에 수장됨
8. 4 경찰 공문서(불순분자 검거의 건), 8월 4일 현재 제주 도내에서 820명이 예비검속돼 있다고 밝힘. 제주경찰서·주정공장 등지에 수감되어 있던 예비검속자 수백 명이 제주항 앞바다에 수장됨
8. 8 제주지검장, 법원장 등 도내 유력인사 16명이 ‘인민군환영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는 혐의로 체포·구금
8.19 19일 밤부터 20일 새벽까지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던 예비검속자 수백 명이 제주비행장에서 총살된 후 암매장
8.20 모슬포경찰서 관내 한림면·대정면·안덕면 예비검속자 344명 중 252명이 군에 송치돼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집단총살됨. 당국의 제지로 인해 6년만에야 시신을 수습한 대정면 희생자 유족들은 시신을 구분할 수 없어 적당히 유골을 맞춰 132기의 봉분을 만들고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라 칭함.
8.30 김두찬 해병대 정보참모,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에게 예비검속자에 대한 총살 명령 및 집행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는 공문을 시달했으나, 문형순 서장은 ‘부당함으로 미이행(未履行)’이라며 거부
9. 3 ‘제주도인민군환영준비위원회 사건’ 피의자 석방
9.14 제주도 사찰관계자 연석회의에서 예비검속자 중 개전의 가망이 있는 자를 석방하기로 결정
9.17 예비검속자 석방 시작됨
<참고한 글들>
2011년 6월 24, 25일 도내 인터넷 신문(제주의소리, 헤드라인제주) 기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종합보고서 3권.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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