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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 속에 묻힌 마창노련을 꺼내다
첨부파일 -- 작성일 2009-11-03 조회 1525
 

 

먼지 속에 묻힌 마창노련을 꺼내다

김선영(창원 노동사회교육원 회원)

저는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노동사회교육원에 보관되어 있는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맹(이하 마창노련)의 자료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본 작업은 ‘마창노련 기록물 전산화 사업’의 기초 작업으로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생산자를 기준으로 분류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료들은 소설가 김하경 선생님께서 「내 사랑 마창노련」을 집필하기 위해 모아 두었던 것들입니다. 원래는 더 많은 자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1차 분류작업을 한 후 본 사업을 맡아 진행 중인 서울의 “노동자역사 한내(이하 한내)”에 이관되고 1차 때 하지 못하고 남겨진 자료들을 제가 맡아 정리하게 된 것이죠.

처음 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땐 그냥 단순히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잘 정리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료들을 정리하는 것이 공부도 되고 경험도 되겠다싶어 찰나의 고민을 한 후 바로 ‘하겠다’ 하였지요. 그러나 이 일은 제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같이 단순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먼저 자료들이 어떻게 보관되어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정리해야 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교육원의 자료실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들어서서 자료들이 들어있는 낡은 박스들을 본 순간 ‘이게 대체 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여기저기 쌓여져 있는 박스들과 몇몇 책장에 흩어져 꽂혀 있던 책자들, 이것들이 정말 마창노련의 역사들이 맞나 싶었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자료실에 들어섰더라면 그저 나중에 버리기 위해 쌓아둔 박스, 책자들로 여겼을 것입니다. 뭐, 박스의 모양새는 어찌되었던 안의 자료들만 깨끗하면 돼지라는 생각으로 박스를 하나 풀었습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박스 안의 자료들은 더욱 더 제게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세월에 바랜 글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습기로 인해 눅눅하고 곰팡이가 슬고 책과 책의 겉표지가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않고 종이를 갉아 먹는 벌레들이 생겼는지 쥐 파먹은 머리채 마냥 거칠게 뜯겨져 종이 귀퉁이들이 가루가 되어 있는 등 그나마 정상적으로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자료들에게 고마운 맘이 들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어쨌든 하기로 한 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이쁘게 깔끔하게 정리를 잘해보리! 굳게 다짐하고 박스를 하나둘 풀며 자료들을 중성폴더에 싸서-종이는 산성이라 일반종이 파일에 철한 서류들이 시간이 지나면 산화가 된데요. 이를 조금이라도 늦춰주기 위해 중성폴더로 싸는 거랍니다.- 문서보존상자에 넣어 자료실 빈 책장에 하나둘 꽂아 나갔습니다. 그렇게 정리한지 1달하고 보름이라는 시간이 흐를 즈음 그 많던 먼지에 쌓인 낡은 박스는 다 사라지고 색색의 문서보관상자만이 반짝반짝 거리는 모습으로 자료실 한 벽면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뿌듯하고 사랑스럽던지…. 이후 정리된 자료들 모두 기록물 전산화를 위해 1차 때와 마찬가지로 한내로 이관되었습니다. 상자들을 운반할 트럭에 실어 보낼 때는 시원섭섭함과 마치 내 새끼들 떠나보낸 마냥 쓸쓸한 맘이 들더군요. 그래도 곧 기록물들이 깨끗이 정리되어 전산작업을 거쳐 오래오래 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대도 되고 완성된 자료들이 기다려집니다.
 


교육원 자료실에서 가정리된 마창지역 노동운동 관련 자료들.

저는 마창노련이 한창 활발히 활동할 때 걸음마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교에 가서 노동운동관련 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면 우리지역에 마창노련이 있었는지도 불합리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격렬하게 투쟁하고 노동자 권리를 쟁취해 왔는지도 몰랐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그와 관련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고 어떠한 자료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창노련 기록물 정리 작업을 통해 마창노련과 실질적으로 대면한 것입니다. 자료들을 정리하며 들춰보니 노동운동에 다소 무지한 저라도 들어본 적 있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이름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분들의 젊었을 적의 모습 어떠한 일들을 하였는지도 새로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노동운동을 하면서 겪었을 수많은 고초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열사들의 모습들을 보며 슬쩍 눈물도 훔쳐보았고 노동운동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기록한 수많은 글들을 보면 절로 탄성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들의 사업장 노조의 기관지를 보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이렇게 열심히 싸웠던 과거에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니 씁쓸한 기분이 들더군요. 특히 자료정리 할 때 꽤 자주 마주쳤던 “웨스트 전기”가 폐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공허한 기분이란…. 역사를 정리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역사가 조용히 정리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앞에서 말했듯 저는 마창노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보고 들은 게 없으니까요. 노동운동역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마창노련인데 왜 저는 알지 못했을까요? 현재에 조직되어 있는 민주노총은 알지만 그 전신인 전노협도 마창노련도 왜 그리 생소하게 느껴졌을까요? 저는 그나마 공부라도 하면서 알게 되었지 일반 사람들에겐 생전 처음 듣는 단어들일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의, 노동자의 역사를 자료실의 먼지 낀 낡은 박스 마냥 꽁꽁 싸매어 쌓아두고 방치해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역사는 기록하고 남기고 전해야지 그것이 과거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또한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관심을 가지고 노동운동의 정신, 노동자 정신을 기억하고 전할까요? 자본가가? 일반대중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의 역사는 스스로가 만들고 기억하고 전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지 않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역사입니다. 과거가 죽어 끊어진 현실은 그 또한 죽은 것입니다. 현재 노동운동이 겪고 있는 위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때는 정말 격렬히 싸웠었지, 이겼고 우리의 권리를 쟁취했었지’ 등의 과거의 무용담, 회상, 그리움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게 이후의 사람들에게 남겨줘야 합니다. 후대의, 그 후대의 사람들이 과거의 노동자들이 무엇을 하고자 하였으며 왜 싸웠으며 최종적으로 이루려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노동자의 역사를 상자 속 먼지에 쌓인 그대로 먼지가 되게 둘 건가요? 아니면 그 속에서 꺼내어 다시 살아 숨 쉬게 할 건가요?

* 이 글은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http://lsec.name 에서 발간하는 『연대와소통』에 실린 글입니다. 글을 제공해주신 창원 노동사회교육원과 김선영 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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