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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급날 걱정 _ 김희순 (43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2-07-15 조회 896
 

월급날 걱정

김희순 (민주노동 31984.6.25.)

생활비가 완전히 바닥나버린 이 며칠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입사한 첫 달 결근 한 번 하지 않고 일하여 받은 월급이 국민저축, 의료보험을 빼고 68,650. 이것을 가지고 한 달 살아갈 일이 꿈만 같다. 일이 익숙해지지 않아 잔업 없이 끝난 날, 햇빛이 환한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리도 좋았지만 내 옆의 언니는 한 달 70시간을 잔업하여 17만 원을 받으니, 나도 잔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이 지나고부터 잔업을 시작했다. 일년 365일 잔업 없는 날이 거의 없고보니 이제는 5시 퇴근하던 일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가끔씩 잔업이나 철야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얇던 월급봉투를 생각하면서 꾹 참는다. 어쩌다 몸이라도 아파 일찍 퇴근하려 하면 반장이나 주임이 도끼눈을 뜨고는 회사가 바빠도 도와줄 생각을 않고 저 하나만 생각한다는 둥, 다른 애들은 다 힘들어도 견디는 데 너만 어떻게 엄살을 피우는지 모르겠다고 야단하는 바람에 아무 말 못하고 그냥 주저앉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입사하여 석 달 동안은 수습기간이라 하여 여러 가지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같다. 우선 한 달 정도 되면 일이 익숙해져 오래된 언니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석 당동안은 일당이 500원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또 그 기간 동안 작업성과를 봐서 정식 채용을 결정한다고 하기 때문에 일하면서도 행여 남들 보다 불량품을 많이 낼까봐서 가슴을 얼마나 조이는지 모른다. 거기다 반장, 주임, 과장은 누가 불평불만을 많이 하는가 하고 우리들의 얘기를 엿듣기 일쑤다. 입조심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는 동안 우리들은 날로 울음을 잃어 시든 꽃들 마냥 딱딱히 굳는 채로 하루종일을 기계에 매달려서 우리 또한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다.

어제는 과장님과 마주앉아 얘기하는 자리에서 부식을 개선해 달라고 전의를 하였다. 하루 점심, 저녁 두끼를 회사에서 먹게 되는데, 매일 감치, 나물, 된장국 꼭 같은 반찬이다. 우리들 월급으로 집에서 잘 해먹을 수도 없는 형편이니, 일은 힘들기만 하고 먹는 것을 부실하고 날로 몸무게가 줄기만 한다. 부잣집 아가씨들은 헬스클럽이다, 아니면 굶는다 하여 살 빼느라 야단인데, 우리들은 누구 하나 살이 쪄서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우리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과장님은 회사 예산을 들먹인다. 동생이나 딸이 우리들과 같이 일한다면, 이런 밥, 이런 반찬은 먹게할 수 있을까.

6월로 접어들자 한낮은 무덥기 그지없다. 우리들이 내쉬는 뜨거운 숨과 수백도의 히터의 열기에 작업장은 푹푹 찌고 등줄기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려 작업복이 흠뻑 젖는데도 전기세 몇 푼 아끼느라 선풍기나 에어콘을 틀어 줄 생각은 않고, 마냥 생산량 늘이라는 말 뿐이다. 화단의 꽃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불펜을 굴리는 사무실에는 초여름부터 에어콘이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들은 더위도 타지 않는 기계처럼 보이나 보다. 하루 종일 일하고 후즐근히 늘어져 돌아오면 쓰러져 자기 바쁘다. 정말 언제쯤 우리도 졸립지 않는 눈으로 보고 싶은 책이라도 한 권 읽고, 여름이 오면 시원한 바닷가에 친구들이랑 놀러도 가고, 걱정없이 집에 동생 학비도 넉넉히 부쳐줄 수 있고, 저녁에 잠도 실컷 잘 수 있을까. 내일이 월급날이지만 기쁘기 보다 어느새 걱정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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