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우리는 실험쥐가 아니다. 밥, 밥, 밥을 달라! 1화 어용노조 배제한 1987년 파업 2화 파업을 부추기는 사용자
* 1987년 파업이후 조합원들의 3교대에 대한 열망은 대단했다. 노동시간단축으로 인해 줄어들 월급을 우려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건 노동 강도가 약한 사람들뿐이었다. 온몸을 파스로 도배를 하며 밤낮없이 11시간을 기계에 붙어 서서 일을 하는 아가씨들은 그게 아니었다. 남자들은 라인작업이 아닌 관계로 작업 중에도 화장실을 자유자재로 드나들고, 담배를 태우기 위해 언제든지 밖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화장실도 오전, 오후 각각 10분씩 밖에 갈 수 없었다. 돈보다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본급을 낮게 책정한 주야 2교대 근무제가 결국 장시간 근로를 강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본급도 올리고 근무시간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1일 8시간 3교대 근무였다. 인근 타 회사에 비해 일은 더 힘들고 월급은 적으니 아가씨들의 경우 1-2년 다니다 그만 두는 게 예사이고, 과장과 부장이 조회시간을 이용해 애사심과 주인의식을 아무리 강조해도 소용이 없었다. 일이 힘들면 월급이라도 타 회사보다 많든가, 아니면 근무조건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월급도 적고 일은 더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기계쯤으로 취급받으니 이직률이 높고 애사심이 적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코피 터지게 일해 봐야 망가지는 몸 약값 대기도 바쁜 것이다. 휴일근무자나 연장근로자가 점점 줄어들어 1일 11시간 근로가 점점 차질을 빚게 되자 회사에서도 1일 12시간 주야 2교대는 어렵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임금이었다. 현행 임금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1일 8시간 3교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희망이었다. 그런 취지에서 1989년 대의원대회에서 확정한 임금인상 요구안이 49.3%였다. 그러나 이 안은 현재 1일 12시간 2교대를 하며 받고 있는 임금의 80%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년도 물가상승률을 기준으로 산출한 노총의 임금인상 요구안인 26.8%는 아예 포함시키지도 않은 안이었다. 1일 2교대인 현재의 임금을 100% 요구할 경우 임금인상 요구안이 60%가 훨씬 넘으니 회사의 입장을 고려해 우선 올해 80%를 보존 받고 내년에 나머지 20%를 보존받자는 생각이었다. 이는 동종업체인 롯데나 해태제과 등 3교대 식품업체의 임금에 80%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양심적으로 산출한 요구안이었다. N라면의 기본급이 그만큼 적다는 반증이었다. 1989년 3월 18일. 임금인상 요구안을 1차 노사 임금협상에서 회사 측에 제시하자 회사 측 대표들은 장난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세상에 49.3% 임금인상을 요구한 곳이 어디 있냐며 이죽거렸다. 물론 회사 측의 인상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장난처럼 그랬다. 1차 협상에서 노사가 서로 협상안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1차에서 노조 측 요구안만 제시하고, 회사 측은 3-4차나 돼서 찔끔 안을 내놓는 게 관례였다. 3-4차까지 도저히 알아볼 수도 없는 복잡한 경영 자료를 제시하며, 또 환등기를 통해 설명하며 협상을 지연시키다 그야말로 장난 같은 안을 내놓았다. 이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관례는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후 있은 2차 협상에서 회사 측은 3교대 근무는 제반 준비문제로 7월 1일부터 실시할 예정임을 통보하고 49.3%를 인상시킬 경우 58억이 적자임을 강조했다. 그 후 3차 협상에서 회사 측의 안으로 34.3%를 제시하며 여기에서 상여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제외하면 23.3%가 적정한 임금인상이라고 했다. 상여금처럼 회사에서 부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일체의 경비도 임금이므로 이 부분도 당연히 포함시켜야 한다는 얘기였다. 임금의 정의나 임금인상안 계산방식이 노조 측과 너무나 다른 얘기였다. 그동안 우리들이 보고 느낀 N라면 상황과는 현격한 차이가 나는 얘기였다. 4차 협상에서 회사 측은 5월 1일부로 3교대 근무를 앞당길 것을 제의하며 노조 측의 요구안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노조 측은 회사 측의 상여금의 임금 포함을 전제로 한 23.3%를 수용하되 물가상승률과 최저생계비가 포함된 노총의 임금 인상안인 26.8%를 포함시킨 50.1%를 49.3%로 하향 조정하여 회사 측에 다시 전달했다. * 한 달 가까이 교섭을 이어갔으나 진전이 없자, 회사 측은 반장 조회를 소집해 현장에서의 조합원 설득 작업을 지시했다. 노동조합에서는 대의원 총회를 소집해 48명의 대의원들을 상대로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만장일치로 역사적인 쟁의발생 신고를 결의했다. 구체적인 쟁의방법 등은 추후 결정을 하는 것으로 막연히 쟁의를 하겠다는, 다분히 형식적인 결정이었다. 노조 창립이래. 처음 있는 일로 회사 측의 성실한 협상을 촉구하는 엄포였다. 그러나 당황한 회사에서는 조합원인 반장들을 동원해 조합원들을 설득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노조 측 협상대표들이 무모하고 과격한 느낌을 갖게 하려는 고도의 노노 분열책이었다. 이후에도 협상은 계속 이어졌으나 답보상태였고, 노동조합 대의원총회에서는‘임금 49.3% 쟁취’리본달기와 때마침 회사 주관으로 점심시간에 하고 있던 부서별 체육행사의 불참과 연장근로 거부를 결의했다. 해마다 임금협상 때면 노사화합이란 이름으로 하는 부서별 체육대회였다. 우승 상금이 부서원들의 막걸리 값도 안 되고, 그것도 금쪽같은 점심시간에 억지로 하니 조합원들의 흥미도 관심도 없는 회사만의 행사였다. 23.3%만 인상하면 현재 2교대 때 받는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회사 측의 주장을 믿는 조합원은 아무도 없었다. 각종 수당이 월급의 절반 가까이 될 정도로 기본급이 낮은 임금구조임에도 똑 같다니 어이가 없었다. 일체의 연장근로가 없고 야간근로나 휴일근로도 월 1회에 불과한 게 1일 8시간 3교대 근무였다. 하루 3시간의 연장근로와 월 2주의 야간근로, 월 2-3일의 휴일근로를 해서 받는 게 2교대의 월급이었다. 그럼에도 23.3%만 인상하면 같다니 이는 숫자 놀음이고, 조합원들을 우롱하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장시간 근로를 줄이고 낮은 임금을 동종 업종의 타 회사 수준으로 올리자는 3교대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으로 일을 적게 하니 그만큼 적게 주겠다는 궤변이었다. 회사 측의 이러한 비현실적이고 허구적인 논리는 조합원들의 분노를 촉발시켜 현장 분위기를 흉흉하게 했다. 그러자 각과 부장들은 부서의 조합원들을 수백 명씩 강당에 집합시켜 놓고 회사 측의 안을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괴한 논리로 이해시키려는 회사 측의 안간힘은 더욱더 조합원들의 불신만을 증폭시켰다. 4월 7일 라면1과 야근조 조회 때는 격분한 20여명의 아가씨들이 항의하며 집단 퇴장해 조회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러한 집단 항의와 퇴장은 타부서의 조회로 번져 조회 자체를 포기하게 했다. 이 역시 회사 창립이래. 초유의 일로서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식사시간을 이용해 조합원들은 연일 노조사무실에 모여 노조 측의 수정안만을 요구하는 회사 측의 무성의를 성토하며 제대로 된 안이 나올 때까지 수정안을 내지 말 것과 조합원의 힘을 믿고 제대로 된 협상을 할 것을 촉구했다. 몇몇 민주파 협상대표에 끌려 다니며 회사 측 눈치만 보고 있는 노조 집행부에 힘을 북돋우고 회사 측에 조합원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분위기가 회사 측의 희망과는 정반대로 돌아가자 7차 협상에서 회사 측은 2%가 오른 36.3%를 제시하며 노조 측의 수정안을 요구했다. 49.3% 인상시 58억이 적자라 했으니 45억의 적자를 감수하고 제시한 수정안이었다. 처음 안보다 2억 4천만 원 정도의 적자를 더 보겠다는 얘기였다. 서로 양보해서 적당히 타협하자는 거였다. 회사 측의 사정까지 감안해 양심적으로 만든 요구안을, 2천5백 조합원과 그 가족의 생존권의 문제를 시간을 끌다 장터의 물건 흥정하듯 적당히 끝내자는 거였다. 가능하면 안주고, 주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끌어 지치게 해 적게 주자는 수법이었다. 먼저 지치고 조급해 하는 것은 항상 노동조합 쪽이기 때문이다. 회사 측의 의도대로 또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노조 집행부에서는 노조 측 수정안을 제시해 조속히 협상을 끝낼 것을 주장했으나 대의원 대표인 정동철 등의 강력한 반대로 저지한 상태였다. 그러자 다음 협상에서 회사 측 대표인 생산본부장은 대의원 대표인 정동철을 노려보며, 배후세력의 조종을 받아 협상을 지연시키며 조합원들을 선동해 파업을 일으키려 하는 몇몇 불순세력이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니 나머지 대표들은 이를 의식하지 말고 소신껏 발언할 것을 충고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민주파 대의원으로서 노조 측의 협상을 이끌고 있는 정동철을 고립시키기 위한 수법이었다. 8차 협상에서 노조 측은 2%를 낮춘 47.3%를 수정안으로 제출했다. 7차 협상에서 회사 측이 2%를 올려준데 대한 답례였다. 그러나 회사 측은 더 이상의 양보안을 요구하며 36.3%를 고수하였으며 회사가 중재신청을 할 경우 36.3%도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엄포를 놓았다. 노동부에 중재 신청을 하면 그들이 노동자의 입장을 이해해줄 리가 없으니 그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단체협약상의 일방중재 조항을 거론하며 노조 측에서 파업을 할 경우 회사에서는 중재신청을 할 것이고, 그러면 15일간 쟁의를 중지해야 하고, 또 중재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였다. 소위 불법파업이라는 거였다. 쟁의의 종류 또한 리본달기, 정시 출퇴근하기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해 마지막 수단인 파업까지 수십까지에 이르고 그 기간에도 노사가 원할 경우 얼마든지 협상이 가능함에도 회사에서는 마치 파업을 기다렸다는 듯 노동조합의 파업을 전제로 모든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단체협약상의 일방중재 조항 때문에 파업을 해도 불법이고, 회사에서 중재신청을 하면 회사에서 제시하는 액수보다도 훨씬 적은 액수가 결정 날게 뻔하고, 그 결정을 노사가 수용해야 하니 차라리 지금 주는 대로 받는 게 이익이라는 얘기였다. 이는 조합원들을 불안하게도 하고 분개하게 하기도 했다. 집행부 역시 회사와 마찬가지로 앵무새처럼 불법적인 파업은 안 된다는 말만 되뇌고 있었다. 조합원의 입장에서 회사 측의 성의 있는 협상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보다는 이도 저도 아닌 입장으로 회사 측의 논리만을 그대로 주장했다. 조합원과 회사 모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하자니 양쪽의 눈치를 보기에 바쁘고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점심시간을 이용해 연일 노조사무실 앞 공터에 모여 임금협상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오던 조합원들은 회사 측의 무성의보다는 노조집행부측의 소극적인 협상태도에 더 분개했다. 이러한 조합원들의 답답증과는 상관없이 노조위원장은 아예 점심시간이면 자리를 피했다. 임금 교섭상황에 대한 모든 보고는 대의원 교섭대표인 정동철 등 몇몇 대의원들이 주도했다. 단체협약상의 일방중재 조항문제로 노조 측 대표사이에서도 파업 가능여부로 의견이 분분해 노조 측 교섭대표 13인이 파업 가능 여부를 문의하기 위해 노동부에 간 사이 회사 측은 전격적으로 노동부 중재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했다. 노사 간의 의견 차이로 협상의 진척이 없으니 중재를 해 결정해 달라는 얘기였다. 더 이상의 협상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이에 격분한 노조위원장은 쟁의행위 돌입 찬반투표를 할 것과 역시 합법적인 쟁의를 공언했다. 임금협상을 시작한지 한 달만의 일로서 8차 협상까지 마친 때였다. 쟁의행위 돌입 찬반투표 결과에 조합원들은 환호했다. 일손을 놓은 채 10여명이 2층 베란다에 나와 걱정스레 개표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관리자들도 기가 죽은 듯 사라졌다. 총 2,559명 중 88.1%가 투표를 해 76.5%가 찬성을 한 것이다. 그러나 환희도 잠시였다. 무효표가 문제였다. 기표 후 접을 때 인주가 투표용지에 조금만 묻었거나, 부산 공장의 경우 인주가 준비 안 된 부서는 부산 선관위의 지시로 사인펜으로 기표를 했음에도 안양의 노조 집행부에서 무효처리를 한 것이다. 모두가 찬성표들이었다. 이 무효표가 자그마치 찬성표의 5.5%였다. 대의원과 조합원들은 이를 포함해 찬성률이 82%라고 주장하였고 노조 집행부에서는 76.5%라고 우겼다. 찬성률을 낮추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조합원들이 분개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노조위원장과 사무장은 아예 기권을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해 듣고 연장근로를 거부한 채 오후 2시 퇴근하던 오전 조 조합원들은 정문안 주차장에 모여들었다. 서너 사람이 모여 무슨 얘기만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임금협상에 대한 소식일까 하고 모여들어 귀를 기울일 정도로 모두들 민감한 때였다. 모인 인원이 10여명이 되자 통근차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와 순식간에 인파가 수십 명으로 불어났다. 통근차에서 뒤늦게 내려오거나 걸어서 퇴근하던 조합원들이 발길을 멈추고 기웃거리자 인파는 속속 불어났다. 인파 속에서는 노동조합의 회계감사이자 대의원인 송인자양이 투표결과와 과정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조합원의 결정을 존중해 집행부가 강력한 협상을 해야 하며 회사 역시 성의 있는 협상을 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얼씬거리는 관리자들의 눈치를 보며 퇴근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대개는 숨을 죽이며 송양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맞장구를 치며 열변을 토했다. 인원이 4-5백 명은 되어 보였다. 자연스레 위원장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엉겁결에 이끌려온 위원장은 들뜬 조합원들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우리 회사의 경우 쟁의는 곧 불법임을 강조하며 회사 측의 논리만을 대변했다. 노조 간부들은 물론 전 조합원들이 가장 낮은 수준의 준법투쟁인 ‘임금 49.3% 쟁취’ 리본을 달고 20여일 근무했지만 회사 측의 무성의한 협상태도는 오히려 더 심했다. 노무관리과 박인상 대리는 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로 빨갱이들은 못 들어온다며 조합원들의 사무실 출입을 막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럼에도 위원장은 이후의 협상 전략이나 투쟁의 방법 등에 대해서는 일체의 말이 없이 회사 측의 대변인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를 피해 노조위원장이 노조 사무실로 피신하자 흥분한 조합원들은 노조사무실로 이동하였고, 투표결과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했다. 분위기가 급변하자 초죽음이 된 관리자들이 자기 부서원들을 찾아 퇴근시키기 위해 눈에 불을 켰으나 조합원들의 야유소리에 물러갔다. 대부분이 아가씨들뿐이었던 지금까지의 집회와는 달리 이번엔 기혼 남자 조합원들도 상당수 끼어 있었다. 위원장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조합원들은 날이 어두워져도 자리를 뜰 줄을 몰랐고, 남자 조합원들은 대형 박스를 갖다 펴며 밤샘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런 한편 대다수의 대의원과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위원장에게 투표의 결과대로 파업에 돌입할 것을 요구했다. 밤 12시가 되어 야근자까지 작업을 거부하고 농성대열에 합류하자 인원은 1,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미 파업이 시작된 셈이었다. 토요일인 다음날 아침 9시, 위원장은 월요일 아침 8시부터 안양과 안성, 부산공장이 동시에 파업에 돌입하며 금일 중으로 각 공장의 파업지도부를 구성한다는 안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파업 여부를 묻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한지 하루만의 일이었다. 그야말로 회사와 어용노조 집행부가 유도한 파업이었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주장할 수 있는 대부분의 방법들이 대부분 불법이란 이름으로 차단되어 있고,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회사 측의 성의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불법이나 불법적인 합법은 큰 차이가 없었다. 회사 측과 노조 집행부의 성의 있는 협상과 조합원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바로잡는 방법은 강력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보여주는 방법뿐임을 조합원들은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그러자 회사 측에서는 파업이 불법이며 따라서 주동자는 물론 참석자도 전원 의법 처리할 것임을 알리는 대형 대자보를 공장 구석구석에 부착했다. 정말이지 장정 팔로 두어 아름은 되는 종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은 초대형 대자보였다. 이 대자보를 처음 본 조합원들은 잠시 술렁거리기도 했으나 자주 들어온 말인 탓인지 이제는 불법이 불법이 아니라는 표정들이었다. 합법의 탈을 쓴 불법을 깨는 방법은 불법적인 방법 외에는 달리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1975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시절 자재과 주인인 성낙선을 내세워 어용노조를 만든 후 이후 14년간 반장출신 어용노조 위원장들과 서로 돕고 살며 만든 게 노예문서인 단체협약이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하루를 쉰 월요일 아침, 회사에서 출근을 막기 위해 통근차의 운행을 전면 중지시켰으나 조합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노조 사무실 앞으로 집결했다. 정식으로 파업이 시작되는 날임을 위원장이 선포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사기는 더없이 충천되어 있었다. 비로소 노동조합의 존재를 실감하는 기분이었고, 우리의 존재와 우리의 힘을 과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뿌듯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조위원장은 2일 전의 파업 공표를 뒤집어 화요일인 내일부터 3개 공장이 정상조업에 들어갈 것을 요구했고, 쟁의대책 위원회의 해체와 벽보등 유인물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공표해 조합원들을 격분시켰다. 그런 가운데 본관 사무실에서는 쌍안경으로 조합원들의 동태를 감시했고, 연일 불법 파업의 사실과 동조자는 모두 의법처리 할 것이라는 내용의 대자보를 써 붙였다. 변심한 위원장과의 협상은 진통을 겪었고, 조합원총회는 노조집행부가 빠진 상태에서 파업지도부의 주도로 파업을 계속하며 파업기금으로 1인당 1,000원씩 갹출할 것을 결의했다. 노조 집행부가 빠진 상태이니 안성과 부산공장은 정상적인 작업을 하는 가운데 안양공장만의 파업이었다.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위원장이 막무가내이니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