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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방 노동조합 결성투쟁
⦁ 시기 : 1987년 8월 11일 ~ 8월 17일
원방은 한국 100대 기업 중 하나로 1987년 국회 예결위원회 간사인 이용호 소유의 협진계열 방계회사였다. 생산직 노동자는 60여 명으로 월평균 잔업이 90~100시간에 이르렀다. 그밖에 한 끼 300원짜리 식사도 엉망이었으며 기숙사 시설 등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었지만, 역시 동일 업종에 비해 절대적으로 낮은 저임금이 최대의 불만사항이었다. 이러한 불만이 7월 초순에 강제잔업 거부로 나타나, 후가공반 전원의 잔업거부 투쟁으로 이어졌다.
8월 11일, 월급 다음날 작업 준비종이 울리자 프레스반과 후가공반 노동자들이 모여 대열을 형성하고 성형반을 돌며 “동참하라”고 구호를 외쳤으나 사전 연락과 준비 부족으로 대오는 삽시간에 관리자들에게 밀려 프레스반을 중심으로 17명의 노동자가 옥상으로 밀려올라 갔다. 이들은 △일당 600원 인상 △상여금 400% △강제잔업과 특근 폐지 △식사 및 기숙사 시설 개선 △법정 공휴일 유급 실시 등을 내걸고 회사측과 협상에 돌입했지만, 옥상 문이 개방돼 있어 관리자들이 수시로 출입하며 회유하자 5명이 중도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이날 원방의 파업소식을 전해들은 지역 노동자들이 찾아와 공장 밖에서 옥상에 있는 노동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부족한 물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
8월 12일, 농성은 거의 와해되어 사측과 협상하기 위해 옥상 농성장을 비우자 그 사이 사측이 쟁의물품을 모두 치워버렸다. 그러자 도리어 속았다는 생각과 이제 정말 싸워보자는 생각으로 뭉쳐 투쟁전선이 처음으로 굳게 형성됐다. 농성 3일째인 8월 13일, 4시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회사측에서 임금 300원, 상여금 300%를 제시했고, 농성자들은 이를 거부했으나 성형반 대표들은 동의해서 도장을 찍고 농성장에서 내려갔다. 그러나 농성자들은 이러한 합의내용에 대해 거부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현장 노동자들이 반발하여 합의는 무효가 됐다. 투쟁 4일째, 성형반을 합류시키기 위해 옥상 농성자들이 성형반 앞까지 행진해 갔으나 관리자들에게 밀려 옥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이날 후가공반 여성노동자 5명이 옥상농성에 합류하며 분위기가 다시 상승되기 시작했다.
8월 15일, 농성 5일째 회사측에서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해 할머니 사망, 어머니 위독 등의 거짓 전보와 온 가족을 상경시켜 설득시키는 등 분열공작을 펼쳤지만 한 명의 동요나 이탈도 없었다. 8월 17일 농성 7일째, 관리자들이 구사대를 조직하여 농성장을 침탈할 것에 대비해 전원 무장했지만, 성형반 반장을 중심으로 임금 300원 인상과 상여금 300%에 합의해버리고 농성자들에게 인정할 것을 종용했다. 결국 농성자들은 장마철 무더위와 식수, 식사 등의 곤란에다 많이 지쳐있다고 판단하여 농성을 해제하기로 했다.
이렇게 △임금 300원 인상 △상여금 300% △월차·연차휴가 실시 △4대절 유급처리 △기숙사 시설 및 식사개선 △보복행위 금지 △농성기간 유급처리로 투쟁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8월 21일, 농성과정을 통해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한 노동자들 33명이 모여 노조를 결성하고 25일 서류를 보강해 시청에 접수했다. 이어 노조 결성을 대자보로 공고하고, 26일에는 설립 보고대회를 개최했으며, 신고증은 29일 교부됐다.
원방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조합 결성으로 마무리됐지만, 투쟁과정 전반에 걸쳐서 문제가 드러났다. 먼저 프레스반과 후가공반, 성형반 등 3개 부서가 하나로 단결하지 못했고, 현장노동자들이 투쟁에 전체적으로 참여하는데 실패해, 일부만이 옥상농성을 전개함으로써 회사측에 포위됐다는 점이다. 즉 현장노동자들의 심정적 동조를 물리적 힘으로 묶어내지 못함으로써 요구조건을 확실히 쟁취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노동조합이 설립된 후 회사측의 노조 말살 음모가 구체화된 11월의 2차 투쟁에서야 극복될 수 있었다. ‘프레스반 폐쇄계획’ 철회투쟁에 성형반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함으로써 8일간의 파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19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9월 하순경부터 자본과 정권측의 탄압이 훨씬 집요해진 가운데 벌어진 (주)원방의 민주노조 파괴에 맞서 부천지역 23개 노조가 11월 6일 성명을 내 강력한 연대투쟁을 전개할 것을 밝히는 등 지역 연대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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