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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은 남다른 노동위원회 대응투쟁
첨부파일 -- 작성일 2009-03-31 조회 793
 

조금은 남다른 노동위원회 대응투쟁?!
 

박경수 (민주노총 법률원)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부터 젖먹이를 업은 엄마까지

파업으로 인해 무더기로 해고된 조합원들의 부당해고구제신청사건 첫 심문회의가 열리던 날이었다.  심문회의가 시작되기까지 1시간도 넘게 남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노동위원회 앞은 발 딛을 틈조차 없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전집회라도 하려나...’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노동위원회 안으로 들어선다.

앗! 안은 밖보다 더 복잡하고 소란스럽다. 그리고 조금은 뜨악하기까지 하다.
건물 안을 가득 채운 이들은 다름아닌 어린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업고, 안고, 손잡고 있는 엄마들... 술래잡기라도 하는지 탄성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 음료수를 달라고 보채는 아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뛰지 말라고 말리는 엄마, 한쪽 구석자리에는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는 엄마까지...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담당조사관은 얼이 빠져버렸다. 심문회의 참석자 명단은 절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당사자만 해도 이미 심문회의장은 터져나갈 지경이지만, 가족의 자격으로 모두가 참관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참이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눈이 ‘빤짝’ 빛난다.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

그러나 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내가 그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는 의사표명은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손을 어정쩡하게 편 채로 어깨를 소심하게 들어 올리면서 고개는 갸우뚱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 당황스러움도 잠시. 누군가 내게 놀라지 말라고 사연을 설명해준다.
사연인 즉, “심판위원들도 사람인데, 저렇게 젖먹이부터 초등학생까지 줄줄이 복도에 앉아 아빠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으면, 오늘 자기가 내릴 결론이 얼마나 막중한지 알겠지요”라는 것. 한마디로 “노동위원회 대응투쟁전술”이라는 것이다.

잠시 후 심문회의장으로 사측의 간부들이 들어온다.
그렇다. 짐작하다시피, “후배 자르는데 한몫하러 왔냐?”, “오늘 무슨 말 하는지 한번 두고 보자”, 심문회의장 안팎으로 수십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급기야는 울음도 터진다. 사측 간부들은 헛기침조차 반쯤 삼키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심판위원들은 난감해 한다.

심문회의 중에 멱살을 잡고

의장은 가족들을 향해 ‘정말 신중하게 잘 결정할 테니 자신을 믿어 달라’고 입을 열고, 회의장 문도 닫지 못한 채로, 그렇게 심문회의는 시작되었다. 간간히 아이들이 칭얼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여러 개의 쟁점을 둘러싼 사실관계의 주장과 법리적 논쟁이 오가면서 심문회의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의장은 이제 노사양측 참석자들로부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 한다.

조합원 몇 명의 심경고백과 부당성에 대한 주장이 끝나고, 사측 간부에게 마이크가 넘어갔다. 해고 및 징계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뭔가 더 쐐기를 박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기어이 어이없는 비유를 하고야 말았다. “노조의 파업으로 회사가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수십억에 달한다. 회사가 회사의 재산을 수십억이나 훔친 도둑놈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듯이...” 그는 선을 넘어버렸다.

여기저기서 조합원들이 일어서고, 고함이 터져 나온다. 나도 문제의 사측간부를 뒤돌아봤다. 순식간이었다. 어느새 덩치 큰 한 조합원이 금방이라도 내리칠 듯이 한손에 생수병을 들고, 한손으로는 그 간부의 멱살을 잡고 서있다. 누군가 뛰어가 얼른 뜯어말린다. 다행이다.

“저것 봐라. 평생을 열심히 일해 온 후배들을 도둑놈 취급한다.”, “저런 식으로 우리를 해고한 거다”, “이대로 못 넘어 간다.” 고성이 오가고, 복도에 있던 가족들도 뛰어 들어오고, 아이들은 놀라서 울고, 심문회의장은 다시 아수라장이다.

의장이 다시 수습한다. “모두들 마음 알겠으니, 진정해라. 나도 이대로는 못 넘어가겠다”, “사측 간부는 일어나서 사과해라. 말 길게 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과해라.” 그렇게 사측 간부는 실언이었다고 사과한다. 분위기는 진정되지 않는다. 의장은 사측을 향해 일장훈계를 한다. 물론 ‘립 서비스’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의장을 비롯한 공익위원들은 잔뜩 짜증이 났다. ‘암튼 자신을 믿어 달라’는 의장의 당부말로 심문회의는 끝났다.

지금 결정하라

심문회의는 끝났지만, 누구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노동위원회 앞에서 정리집회를 하는 동안, 노조는 오늘 중으로 결정하라고 노동위원회에 요구하였다. 결과를 듣고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1시간쯤이 지났을까. 지노위 위원장이던 의장이 퇴근을 한다. 조합원들과 가족들은 의장이 탄 차 앞을 가로막는다.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는 차 앞에 주저앉는다. 이대로는 퇴근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10여 분이 지나자 의장이 차문을 열고 내린다. “정말 좀 믿어주면 안 되겠냐. 여러분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잘 판단하겠다. 정말 믿어봐라.” 조합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의장은 다시, “내일 노조 측 대표자들과 면담하면서, 결과를 알려주겠다. 정말 믿어도 좋다. 내일 보자.” 그렇게 의장은 퇴근하고, 조합원들과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에필로그?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면 결과를 궁금해 할 지도 모르겠다. 믿어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지금 그 조합원들은 회사에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조합활동도 열심히 하고, 집회장에서는 종종 반갑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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