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노동
<마이클 콜린스>
이성철(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닐 조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일별해보니 대중성과 작품성이 뛰어난 것들이 많군요. 조디 포스터 주연의 최근 작 <브레이브 원>을 시작으로, <늑대의 혈족>, <모나리자>, <크라잉 게임>, 그리고 <인 드림스> 등이 그것입니다. <마이클 콜린스>는 그의 <크라잉 게임>과 함께 아일랜드의 독립과 해방투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1997년). 감독 자신도 아일랜드 출생이고, 주연인 리암 니슨, 그리고 영국 경찰청의 특고형사이나 마이클의 연설을 들은 후,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복무하다 숨지는 형사 네드 브로이역의 스티븐 레아 역시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출신이네요.

이 영화를 좀 더 의미 있게 보려면, 아일랜드의 약사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시공사에서 출간된 피터 그래이(Peter Gray)의 <아일랜드 대기근>이 도움 됩니다. 물론 이 책에는 현대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약 80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현재까지도 그 고통은 이어지고 있죠(북아일랜드의 경우 아직까지 영국령). 이미 12세기부터 부분적으로 식민지화가 되다가(영국 최초의 식민지), 16-17세기에 이르면 식민지가 확대되어 아일랜드의 자립적인 공동체 발전이 중단되고 맙니다. 예컨대 18세기 초의 경우 아일랜드인(주로 카톨릭교도)이 소유한 땅은 전국토의 14%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적 배경은 다릅니다만, 일제하 4차례에 걸쳐 진행된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총독부에 강제적으로 귀속된 조선의 국토가 62%에 이르렀다는 것과 비교해볼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토지의 강탈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1700년에 제정된 영국의 형법(Penal Law)에 의해 아일랜드인은 영어만 사용해야 했고, 일체의 교육과 투표도 금지됩니다. 이 결과 아일랜드는 1700년 이후 자신들의 언어(Galeic)를 점차 잃게되고 이제는 고어로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소개한 이 나라의 시인 로버트 번즈의 시에는 이러한 게일어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만...이에 덧붙여 심지어 말 조차 소유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말을 이용한 원거리 이동이 독립을 위한 의사소통과 집회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이를 금지 시킨 것입니다. 톰 크루즈 주연의 <파 앤 어웨이>를 보시면,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집을 태운 지주를 응징하기 위해 말이 아닌 노새를 타고 먼 길을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감독 등의 철저한 고증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는 마치 조선총독부의 ‘교육칙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일제 총독부의 데라우치는, 아일랜드인 대학살의 주범인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1599-1658)과 일치합니다. 청교도 혁명으로 잘 알려진 크롬웰은 실상 아일랜드인에게는 제 1의 공공의 적입니다.
한편 아일랜드는 1846-1847년 사이에 덮친 대기근(흔히 감자 대기근이라고 함)과 세균성 이질 등으로 수많은 인구가 죽게 됩니다. 이러한 대기근은 한번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1848-1851년에 다시 닥치게 됩니다.. 1851년에 실시된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행방불명자의 수가 약 240만 명입니다(전체인구 약 660만명의 4분의 1에 해당). 이때부터 아일랜드인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러나 대이동은 순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타고 간 배는 흔히 'coffin ship'(관과 같은 배)으로 불립니다. 캐나다의 몬트리올에는 이 와중에서 숨진 이민자 25,000명의 묘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니 보이’와 함께 아일랜드인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는 슬픈 노래 역시 이러한 대이민과 관계 깊은 것입니다. ‘노린 본’(Noreen Bãn)이 그것입니다. 아일랜드의 아리따운 처녀 노린 본이 미국 이민을 떠났다가 몹쓸 폐병에 걸려 돌아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파 앤 어웨이>나 <갱스 오브 뉴욕> 등의 배경이 되는 셈이지요. 한편 노동계급 카톨릭 교도들이 가장 많이 이주한 곳은 미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일랜드인의 공동체 의식은 이 와중에도 공고화됩니다. 예컨대 1900년이 되면 아일랜드계 미국인 중 15%만이 단순 노무직에 머물게 되고, 대부분은 상승이동을 하죠. 좀 특수한 예를 든다면 케네디 가문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마이클 콜린스>의 이야기는 1916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시작됩니다. 닐 조던 감독은 이 시기 이후가 아일랜드의 전 식민지 기간 중 가장 중요한 때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일랜드 자치의 첫 출발이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죠. 1916년 대영 무장테러해방투쟁에 참여한 마이클은 이 일로 약 2년간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와 동지들에게 감옥은 오히려 큰 학교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출옥 이후 대중 선동가와 무장투쟁 유격대장의 경험 등으로 서서히 대중적 지도자로 부상하게 됩니다. 수 많은 암살과 테러 등으로 영국도 마침내 협상을 제의하게 되는데, 우여곡절 끝에 마이클이 협상 대표로 런던으로 가게 됩니다. 당시(1922년 6월) 합의안은 아일랜드를 공화국이 아니라 자치구로만 인정하고 여왕에게 충성을 여전히 맹세해야 하며,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를 여전히 받아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습니다. 조약안은 아일랜드 의회에서 64대 57, 겨우 7표 차이로 통과하게 됩니다. 이것이 독립투쟁 진영 내의 정파분쟁으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내란을 초래하게 되죠. 즉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를 토대로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도모하자는 주화파인 마이클과 그를 매국노로 매도하고 진정한 독립과 해방은 끊임없는 전면전 밖에 없다는 주전론자간의 내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이클은 반대파와의 대화와 협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가 결국 저격 당하는 것도 반대파의 대표(나중 아일랜드 대통령이 되는 이몬 드 발레라)를 만나러 가는 와중에서입니다.

마이클 콜린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종 다기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이 부상되는 모양입니다. 아일랜드는 흔히 한국, 한국인과 비교되곤 합니다. 식민지배의 경험, 저항, 그리고 새로운 도약, IT 강국 등에서 비교되곤 합니다. E. H. Carr는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합니다.
민족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 지도자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가?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는 상대방에 직접 뛰어들어 풀어야 한다는 점 등 나 자신들을 문제의 중심에 두고 실제 같은 가상체험을 해봄직 합니다. 그리고 최근 한-미간의 여러 협상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이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네요. 그러면 너무 머리가 아플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