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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LNG선상 파업
한진중공업의 열악한 노동조건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평균 나이 38.4세, 평균 부양가족수 3.49명으로 다른 대형조선소와 비슷했지만, 임금 수준은 평균 통상임금으로 따져 월 62만여 원으로 현대중공업(78만원), 대우조선(77만원), 현대미포조선(77만원), 한라중공업(71만원)보다 훨씬 낮았다.
대한조선공사 시절부터 국내 조선소의 원조 격인 한진중공업은 그 관록만큼 근속 년수도 평균 12.8년으로 대우중공업(9.8년), 현대중공업(10.7년), 현대미포조선(10.2년), 한라중공업(5.6년)보다 길어 실제 임금 차이는 더욱 컸다. 물론 회사의 경영상태 등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해마다 회사가 일방중재 조항을 믿고 노조의 쟁의를 불법로 몰아 공권력을 불러들여 간부들을 구속·해고함으로써 임금을 억제해 온 결과다.
조합원 수 1,400여 명의 같은 조선업체로서 1993년 확실한 투쟁으로 일방중재 조항을 삭제했던 인천의 한라중공업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한라중공업은 일방중재 삭제 후 첫해인 1994년 교섭에서 노조의 부분파업을 벌여 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전폭 수용, 평균임금으로 따져 30만 원 이상의 인상 효과를 가져오면서 교섭을 타결했다. 물론 다른 조선소들도 웬만한 부분파업이나 전면파업은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와 밀고 당기면서 교섭력을 높여갈 수 있었고, 그만큼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다.
그러나 일방중재의 족쇄가 채워진 한진중공업은 수년 동안 한 자릿수 임금인상에, 일방중재가 상징하듯 단체협약 조항도 대부분 동종업체의 최하위 수준을 맴돌고 있었다. 노조 활동도 마찬가지여서 한진중공업보다 조합원 수가 4백여 명이나 적은 한라중공업노조는 1994년 교섭에서 전임자 수를 사무원을 포함 13명으로 늘렸는데, 한진중공업노조는 겨우 4명에 지나지 않았다.
1994년 임금․단체협약 최대 현안
한진중공업은 단체교섭을 5차례 이상 했는데도 진전이 없으면 노사 일방이 노동위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고 노동위 중재가 들어오면 더는 쟁의를 할 수 없으며 쟁의를 하면 불법으로 처벌받는 이른바 ‘일방중재’ 사업장이었다. 한진중공업 송영수 사장이 4월 23일 서울 한진그룹 본사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천막농성 중이던 해고노동자들을 승용차에 매달고 살인 질주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해서 조합원들을 자극한 것도 회사가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한진중공업노조 조합원들은 1987년 이후 내리 5년 동안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파업투쟁을 벌여왔지만, 해마다 일방중재조항에 걸려 임금이나 단체협약안과 관련한 불이익을 받아 왔다. 더구나 1987년 이후 치열한 투쟁으로 민주노조를 건설한 박창수 위원장이 ‘전노협 탈퇴 공작’ 끝에 타살되는 비극을 겪으면서 노사교섭에 정부가 개입하는 일에 분노와 불신이 컸다.
따라서 조합원들은 1994년 임단협에서 무엇보다도 ‘일방중재 철폐’를 가장 중요한 요구로 내걸었으며, 민주노조 건설과 박창수 위원장 살인 규탄 투쟁 과정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12명의 복직, 임금 86,050원(기본급 14.9%) 인상, 월급제 실시, 노조 전임자 4명에서 8명으로 늘릴 것을 주요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1994년 임금․단체협약 교섭 경과
한진중공업노동조합은 3월 29일 상견례를 시작해 본교섭을 임금, 단체협약 각각 4차례씩, 실무교섭 15차례씩 3달간 진행했다. 그러나 회사는 임금인상안조차 내놓지 않고 단체협약에 대해서도 기존 안에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노조는 회사의 불성실한 태도로 단체교섭의 진전이 없자 6월 15일 쟁의발생신고를 결의하고, 무쟁의와 한 자릿수 임금인상을 감수한 노동자의 희생으로 가능했던 최근 3년 동안의 연속 흑자를 이제는 조합원들의 생존권과 기본권리 확보에 돌려주기 위해 노조 안을 전폭 수용하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6월 25일 전격적으로 일방중재를 신청했고,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수용을 통보했다. 노사자율교섭은 간데없고 정부개입에 의한 강제타결을 강요하고 나선 것이다. 마침내 노동자들은 6월 27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여 조합원 1,836명 중 1,497명(81.5%)이 참석한 결과 1,398명(93.4%)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결의에 따라 15시 30분을 기해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한편 정부는 조길표 위원장 등 노조 간부 5명에게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하고 경찰투입 지시를 내렸다. 이를 민주노조운동 자체를 말살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인 조합원들은 7년 가까이 싸워 세운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파업투쟁에 나서게 된다.
파업투쟁의 전개
6월 27일 전면파업 돌입
한진중공업노조는 오후 3시부터 파업 선포식을 열고 곧바로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조합원들은 오전 11시부터 노동자문예창작단의 공연 ‘바리케이트’를 관람하고, 오후에는 부서별로 조를 편성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1,300여 명이 부서별로 모여 생활관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쟁의대책위원회는 규찰대와 정당방위대 각 50여 명씩을 뽑아 출입문을 지키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6월 28일 5명 사전구속영장 발부와 LNG선 승선
아침 6시에 기상한 조합원들은 출입문에서 외주 업체의 출근을 통제하고 오전 10시부터 회사 앞 단결의 광장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어 요구안 쟁취의 그 날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노조는 회사가 경찰투입, 손해배상소송 등을 동원해 탄압할 것에 대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날은 손해배상소송과 관련하여 전 조합원이 피의자로 매일 검찰에 출두하여 회사의 책동을 무너뜨리는 ‘소송고지’ 전술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대응책을 마련했다.
한편 오전에 대검찰청은 노조 조길표 위원장, 김주익 사무장, 윤국성 총무부장, 김순섭 조직부장, 김병철 쟁의부장 등 간부 5명에게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하고, 농성장에 경찰병력 투입을 지시했다.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은 오후 2시부터 집회를 열어 경찰 침탈을 단결투쟁으로 막아낼 것을 결의했다. 오후 내내 쟁의대책위의 지침에 따라 부서별로 경찰투입에 대비하던 조합원들은 저녁 6시부터 계속된 쟁의대책위의 결정에 따라 밤 9시부터 LNG선에 올라탔다. 1,200여 명의 조합원들은 “사전영장이 떨어진 위원장을 잡아간다면 모든 조합원이 구속을 불사하며 투쟁할 것”이라고 결의하고, “요구조건 완전 쟁취가 이루어질 때까지 배에서 결코 내려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12만 8천 톤에 달하는 LNG선의 높이가 42m에 달하는 데다 열과 습기가 가해질 경우 치명적인 파손을 입게 되므로 경찰이 공중 투하 작전을 펼치지 않는 한 진압이 불가능하며, 그것마저도 엄청난 액수에 달하는 LNG선을 포기하고 예기치 못할 인명피해를 각오해야 해서 진압은 엄두도 못 낼 것으로 판단했다.
파업 첫날 철야농성투쟁에 참여한 1,200여 조합원들은 이미 비상식량과 식수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사다리를 설치한 뒤 밤 9시부터 일사불란하게 갑판 위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올라가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갑판 위로 올라간 조합원들은 쟁의대책위의 지휘하에 인원확인, 취침장소 마련, 화장실 설치 등 장기농성투쟁을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결의의 시간을 가졌다. 결의의 시간에서 조합원들은 “정부의 탄압이 민주노조의 뿌리 자체를 뽑으려는 것인 만큼 강력한 단결투쟁으로 반드시 위원장과 노조를 지켜야 하며, 전 조합원이 구속될 각오로 싸우자”고 다짐했다.
6월 29일 LNG선 결사투쟁 선포식
10시 30분 LNG결사투쟁 선포식 때 SBS, MBC, KBS에서 취재하던 중, 위원장은 “지금 언론은 자주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라며 “노동자들의 생존권 싸움을 정부와 자본의 이윤 착취 논리에 편재된 편파적인 보도로 노골화시키고 있음에 심히 유감”을 표시하고 “왜곡 보도 자행하는 언론사는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서 투쟁의 의의와 계획을 설명하고 투쟁 원인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에 정부가 3자 개입하여 우리들의 지도부에게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에 있다”며 “오늘부터 공권력 침탈에 대비해야 하며 조합원 모두 LNG선상 결사투쟁을 사수할 수 있는 방어품을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식수 문제는 조직부장의 제안으로, 조합원이 일렬로 줄을 지어 물통을 전달하는 일명 ‘인간 사슬’ 방법으로 30일분의 식수를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오후 3시 40분 공권력의 움직임이 있자 배 위에서는 즉시 비상을 걸어 조합원들의 위력시위가 진행됐다. 불똥 하나라도 떨어지면 완전히 교체해야 하는 LNG선의 특성으로 조합원들의 위력시위는 공권력의 투입계획을 지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밤 10시 “비상, 지금 경찰병력이 투입되고 있다고 합니다. 조합원 여러분께서는 아침에 배치된 자리에서 자기 자리를 사수해 주십시오”라는 지침에 조합원들은 단 3분 만에 완벽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밤부터 공장 건물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은 노조원의 출입은 물론 물, 쌀, 약 등 일체의 물품 반입을 차단했다. 농성자들은 빗물과 공업용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바람에 배탈․설사에 시달렸고, 장마로 인한 감기몸살과 배멀미 등에도 내몰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조길표 위원장은 오후 3시 50분 배 위에서 전노협으로 전화를 걸어 “전국에서 투쟁하는 동지들 고생이 많습니다. 지금 노사 간의 싸움은 단순한 임단협 갱신투쟁을 넘어서서 김영삼 정권의 노동자 말살 책동에 대한 처절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영삼 정권은 노동법 개정을 비롯한 노동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해야만 합니다. 한진중공업노동조합은 전국의 노동자들과 함께 끝까지 싸워나가겠습니다. 전기협, 서울·부산지하철 동지들을 비롯한 전국의 투쟁하는 동지들, 끝까지 함께 싸워나갑시다. 우리는 40m 배 위에 전노협, 부양노련 깃발을 힘차게 꽂아 놓았습니다. 건투를 빕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부산지역 노동조합, 민주단체와 농성자 가족들은 부양노련 교육관에서 공동대책을 논의했다. 경찰이 노동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어 제압하려 하는 것은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이라며, 물품 반입 차단을 규탄하고 지원물품 모금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 7월 1일 저녁 6시 한진 앞 집회를 시작으로 매일 규탄 집회와 물품 전달식을 하는 등 조직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7월 1일 오전 9시 배 위에서 조길표 위원장 기자회견
조길표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노사문제에 개입하여 노사자율교섭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노사자율교섭을 가로막는 위헌적 독소조항인 일방중재 철폐만이 이 사태를 원만히 해결할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현재 LNG 선상농성은 모든 준비가 완벽하고 조합원의 결의가 높기 때문에 진압이나 고사작전은 모두 부질없는 망상”이라고 일축하고, 만약 자신들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간다면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면서 정부의 개입중단, 자율교섭, 요구안 수락이라는 사다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절대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교섭창구는 언제나 열어놓을 것이며, 노사 간에 사태의 슬기로운 해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며 언론도 많이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기자회견문에서는 ‘LNG선 위에서 1,200여 한진중공업노동조합 조합원 일동’ 명의로 ①정부는 노사문제 개입 중단하라! 경찰병력을 철수하고 사전영장을 철회하여 노사자율교섭을 보장하라! ②경찰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LNG선을 상대로 한 진압작전과 봉쇄작전을 포기하라! ③조합원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말고 당장 철수하라! ④회사는 정부에 의지하는 불성실한 교섭태도를 버리고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라! ⑤회사는 일방중재 철폐, 해고노동자 복직, 임금인상, 월급제 실시 등 노조 요구를 수락하라는 5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한편 신관 1층에서 재개된 노사교섭에서 회사가 임금 43,000원 인상(기본급 7.3%), 현장 생산장려 수당 2만 원 신설, 상여금 50만 원 인상 및 기본급의 20% 추가 지급(약 13만 원), 격려금 40만 원 지급 등을 제시하는 한편, 노조 핵심 요구사항인 일방중재 철폐와 해고노동자 복직에 대해서는 “노조가 쟁의에 들어가기 전에 회사가 중재신청을 하지 않는다” “해고자의 생계대책 마련을 검토한다”는 수준만 제시했다. 말만 바꾸었을 뿐 노조 쟁의권을 박탈하는 일방중재를 계속 고집하는 데서 한발도 나아가지 않은 것이고, 해고노동자 문제도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이다.
저녁에 간호사 10여 명이 배탈과 감기 등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배 위에 올라가 전체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혈압이 위험수위에 가까운 60세 안팎의 노동자 3명과 함께 하선했다. 그런데 간호사들의 상선을 허락했던 경찰이 갑자기 하선하는 간호사들에게 제3자개입금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간호사들은 경찰의 이율배반적이고 범법을 유도하는 작태에 분노해 경찰투입의 때를 놓쳐 대검의 질책을 받는 것에 대해 체면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냐며 항의했다.
일명 ‘공포의 몸빼부대’라 불린 30~50대 여성들이 주를 이룬 200여 명의 조합원 가족들은 매일 회사 정문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식수․라면․약품 등 보급투쟁을 담당해 농성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저녁에는 지역의 노조와 단체 회원들이 함께 라이터로 노동가에 장단을 맞춰 불을 밝히며 파업 지지농성을 벌였고 선상에서는 쇠파이프로 배 갑판을 치면서 이에 호응해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7월 2일 경찰병력 현장침탈
회사측은 “일부 빨갱이, 간첩들의 사주를 받은 외부 불순세력이 위원장을 둘러싸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안 하는데 한진만 하면서 이용 당하느냐”는 등의 내용으로 된 송영수 사장의 선무방송을 하루종일 내보내며 ‘대화의 자리’를 제의했다. 그러나 위원장에 대한 신변 보호를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조는 대화를 빙자한 위원장 납치 기도로 판단, 제의를 거부했다.
저녁 6시경 지역 노조와 단체가 물품 전달과 지원 집회를 위해 모여들자 경찰은 신관 유리창을 깨고 일제히 작업현장으로 치고 들어와 정문 규찰대를 뒤에서 역습하는 등 회사로 통하는 모든 문에서 규찰 서던 조합원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현장을 장악해버렸다. 이 과정에서 사전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정문 규찰대를 지휘하던 윤국성 총무부장은 긴급 상황을 알리는 규찰대의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재빨리 LNG선으로 달려가 체포를 피했지만, 학생과 지역 노동자들은 닥치는대로 연행돼 ‘닭장차’에 실렸다.
경찰이 헬기로 배 위를 돌며 전단을 살포하고 선무방송을 하는 가운데, 이에 맞대응하여 노조 김병철 쟁의부장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쳤다. 그러자 선무방송이 쟁의부장을 향해 “한진 작업복을 입은 외부 불순세력”이라고 말해 조합원들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날 ‘공포의 몸빼부대’로 불리는 가족들은 노상 철야농성을 전개했다.
7월 3~6일 투쟁 장기화에도 승리에 대한 자신감
선상파업이 장기화 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신문과 방송을 통해 경찰이 LNG선 진압을 공식 포기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여론의 향배가 노조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노조는 제일 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일방중재 철폐도 회사가 마음만 바꾸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 앞으로의 투쟁에 자신감을 가졌다.
오후부터 회사가 가족들의 지원물품을 중간에서 가로채 회사 식당에 쌓아놓고 마이크로 농성자의 이름을 부른 후 개별적으로 내려오면 주겠다고 농간을 부리기 시작했으나 한 사람도 내려오지 않았다. 회사는 결국 가져가라고 태도를 바꾸었다. 그러나 부탄가스를 전부 빼내 음식을 익혀먹지 못하게 했다. 이날도 ‘공포의 몸빼부대’로 불리는 가족들은 노상 철야농성을 계속했다.
전날 오후 6시부터 7월 4일 새벽 2시까지 계속된 회사쪽과의 마라톤협상에서 노조가 요구하는 일방중재 철폐와 해고자 복직에 아무런 대안이 나오지 않자 장기전 태세에 돌입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신관에서 교섭을 속개, 오후 내내 진행했으나 회사쪽의 생색내기용이라고 판단한 조길표 위원장은 더는 참석하지 않았다.
회사가 가족들이 가져온 음식을 안에 넣어 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받아놓고서 전날과 같은 농간을 부리자, 사태를 파악한 가족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며 도로점거를 시도했다. 이러한 사실이 부산 인권단체들에 알려져 진상조사와 항의방문을 계획한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는 급히 음식물과 부탄가스의 반입을 허용했다.
한편 하청업체가 작업을 재개했으며, 어용집행부로 알려진 한진 울산조선소의 타결 소식까지 곁들여 회사가 심리전을 폈으나, 모든 조합원이 배 위로 올라가 효과는 없었다. ‘공포의 몸빼부대’로 불리는 가족들의 노상 철야농성은 3일째 계속됐다.
7월 7일노사합의로 농성 해제
오후에 노조가 무파업시 회사도 일방중재 신청 자제, 해고노동자 복직문제 대책 마련, 고소고발 취하, 임금 및 상여금 인상 등에 전격 합의함으로써 농성을 풀었다.
오전 10시 회사 신관에서 시작된 교섭 중 조길표 노조 위원장과 송영수 사장의 단독회담 자리에서 합의가 대부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임금 관련 사항 이외에는 자세한 내용이 명확한 문서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후 3시 30분, 회사의 최종안을 들고 LNG로 돌아온 교섭위원들은 대의원대회를 열어 이를 수용하기로 했고 농성조합원들이 모인 가운데 보고대회를 가졌다. 곧이어 송영수 사장이 올라와 조합원 앞에서 위원장과 합의한 내용을 실천할 것이라는 요지의 발표를 하고 미리 준비한 ‘우리의 대화합 선언’을 읽은 후 문서에 노사 대표가 서명했다. 곧바로 김주익 사무국장이 박수로 통과시키자고 제안하고 조합원들이 박수로 동의했다. 투표 절차는 생략했다.
오후 5시경 조합원들이 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위원장을 비롯한 사전영장 발부자 5명 중 4명과 고소고발자 6명 등 총 10명은 대기하고 있던 경찰에 의해 영도경찰서로 연행됐다. 애초에는 사전영장이 떨어진 5명 이외에는 고소고발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회사는 이미 6월 28일 부위원장 2명, 기획부장, 교선부장 등 6명을 추가로 고소고발했던 것이다. 또 타결이 임박한 상황에서 박성호 조사통계차장(해고자), 변영철 조선노협 조직쟁의부장 등 2명을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노동청에 고발한 사실도 밝혀졌다. 사전영장이 발부된 윤국성 총무부장은 배 위에서 미리 몸을 피했고, 박성호 조사통계차장은 배에 있다가 7월 8일 새벽 3시경 밖으로 나오던 중 경찰에 연행됐다.
임금․단체협약 조인식
열흘간의 LNG 선상파업 끝에 1994년 임단협투쟁을 마무리한 한진중공업노동조합은 7월 22일 회사와 임단협 조인식을 했다. 협정서 내용을 보면 임금인상은 기본급 45,000원 정액 인상, 근속수당 인상 조정 및 통상임금 포함, 생산장려수당 17,902원 신설 및 통상임금 포함 등이다. 단체협약과 관련해서는 장기근속자 포상 조정, 상여금 550%에서 600%로 인상, 지급 기준 ‘통상임금+1만원’은 ‘통상임금+기본급 20%’로 변경, 경조금 인상, 휴직자 처우개선, 옥외 작업장 근무 시 재해 발생 우려될 경우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작업 중단 등 필요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기타 합의서로 공기준수금 50만 원 지급, 매출 목표 달성금 40만 원 지급, 1993년과 동일하게 1년 만기 단체 정기보험 가입, 사내복지기금 20억 원 출연 등에도 합의했다.
한편 타결 시 위원장과 사장이 구두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해고노동자 7명 연말 연초 원직 복직 △3명 생계대책 마련 △구속자 징계 시 해고 배제 등은 사장이 “유효하나 문서로 남길 수 없다”고 고집해 협정서에 포함하지 못했다. 또 당시 생산장려수당 2만 원을 신설하고 통상임금화한다는 내용이 있었으나 조인식을 앞두고 회사가 “생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간접 부서에 대해서는 지급할 수 없다”고 번복하고 결국 금액을 17,902원으로 낮춰 전 조합원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했다. 조인식에서는 구속된 조길표 위원장 대신 노조쪽 교섭대표로 직무대행인 신영숙 부위원장 등 3명이 서명했다.
파업과 관련해 조길표 위원장, 김주익 사무장, 김순섭 조직부장, 김경천 기획부장, 김병철 쟁의부장, 박성호 조통차장, 윤국성 총무부장, 조충렬 대의원, 안현달 쟁의차장 등 9명이 구속돼 부산교도소에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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