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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내 4.3역사기행 후기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_이정희(100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7-05-16 조회 1112
 

[한내 4.3 역사기행 후기]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정희(한내 회원)

 

여행은 떠나기 전에 가장 설렌다더니 그럴 짬도 별로 없었다. 휴가 전에 끝내야 할 일들 때문에 한내에서 미리 읽어보라고 전해준 ‘4.3 항쟁 발생 배경과 진상문건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래도 비행기는 떴고 나는 또, 제주에 도착했다.

4.3에 대해서는 얄팍한 지식이 전부였다. 제주는 그저 풍광 좋은, 걷고 싶은 섬이라는 인상이 먼저였다. 2016년 첫 번째 역사기행은, 제주라는 땅은 발을 딛는 순간부터, 가는 곳, 지나는 사람 모두가 항쟁의 역사임을 가르쳐주었다. 해방 공간에서 당시 민중들이 만들려 했던 새로운 국가가 무엇이었는지, 일제에 이은 미군정과 이들의 비호를 받은 당시 지배세력들이 왜 제주를 초토화하려 했는지, 그럼에도 왜 저항이 그리 끈질기게 지속되었는지, 제주를 걷는 내내 토론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길의 이쪽과 저쪽에 서북청년회와 인민위원회 사무실이 있었다 하고, 불과 8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같은 건물(조일구락부)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제주도위원회와 서북청년회가 각각 결성식을 했다는데, 대체 이 에서, 건물에서 어떤 이념과 어떤 세력들이 오갔을지, 감히 상상조차 어려웠다. ‘은 얼마나 정치적인가. 그리고 태극기. 무차별적으로 학살되었던 민중들을 추모하기 위한 곳곳의 유적지에 태극기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분단이 아닌, 미군정의 통제가 아닌 기업가와 노동자가 다 같이, 지주와 농민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 여자의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 청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 학생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민전의 건국 5가지 원칙)를 세우고자 했던 이들을 기리는 곳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는 또 무슨 의미인가.

이렇게 나의 첫 한내 역사기행은 많은 사실도 알려주었지만 또 다른 궁금증, 또 다른 토론거리를 만들어냈다. 다시 오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때는 한 명의 친구와 함께였고, 올해는 동료들 세 명이 함께였다. 지속적으로 유적지를 답사하고 코스를 개발하는 한내 제주위원회 분들도, 또한 유적지에 대한 기본 설명은 물론 어떠한 질문에도 풍성한 답변을 해 주셨던 한태호송시우 안내자들도 다시 만났다. 2016년 기행 때 함께였던 분들도 몇몇 있었다. 역시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는 한내 기행이었다.

 


비문 속에 숨은 역사적 관점과 의도를 읽으며 '기록'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코스의 순서는 조금 바뀌었다. 지난 해 갔던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렇지만 기록이라는 올해의 화두를 들고 사흘 동안 기행을 하면서 이미 가 봤던 곳도 처음 찾은 것 같은 새로움을 느꼈다. 4.3은 흔히 사건으로 불린다. 항쟁인가, 폭동인가. 아니면, 그저 평화공원이라 이름 지으며 희생자들을 추모하면 되는 역사의 한 자락인가. 4.3을 어떻게 역사적으로 명명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유적지 곳곳에서 그 시간들이 누구에 의해, 언제, 어떤 방식으로 기록(혹은 기록조차 안)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4.3 평화공원에서 만난 백비는 역사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닌, 누군가가 기록하기 달린 것이라 일러준다.

한내의 4.3 역사기행을 기록하는 이 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첫째는 먹거리요, 둘째는 역사와 함께 하는 제주의 자연이다. 제주토박이들만이 아는 식당에서 각재기국, 회국수, 고기국수, 흑돼지삼겹살 등 제주 토속음식들을 맛보는 건 정말 감동이었다. 유적지 곳곳을 다니면서 만난 유채꽃과 청보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자태도 일품이었고, 1954년 유격대가 토벌대와 벌인 최후의 전투의 기억을 담고 있는 비자림의 나무들과 그 곳에서 만난 숨골은 역사가 현재와 만나는 통로 같은 느낌도 주었다.

함께 간 동료가 말했다. “앞으로 제주를 그저 힐링하는 곳으로만 여기고 찾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조선 후기 문장가였던 유한준의 글을 현대적으로 옮긴 유홍준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그렇게 나에게 매년 제주는 전과 같지 않게기록된다. 내년에도 아마 나는 역사기행에 함께 할 것 같다. 한 명, 세 명, 그리고 내년엔 몇 명과 함께 갈 수 있을까. 참가자가 10명 이상이면 하나의 팀을 꾸려 기행을 조직해 준다고 하는데 이 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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