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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세의 해고노동자를 찾아서_장남수 (49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3-01-14 조회 931
 

67세의 해고노동자를 찾아서

  장남수 (19865월 민주노동)

67세의 노인의 해고의 부당함과 퇴직금의 정당한 지불을 요구하며 2년 동안 홀로 싸우고 있다.
지난 8433만원 미만의 경미한 사고를 구실로 해고되신 홍인보(67) 할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기업주의 부당한 처사에 응징을 가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노동법이나 행정절차를 아는 바도 들은 바도 없어 고심하다 오직 한군데 들은 곳이 노동부라 찾아갔다. 그러나 할아버지 뭘 그러십니까. 연세도 그만하시면 그냥 쉬시죠.”라는 직원의 말에 내가 왜 쉬어라고 호통만 치신 채 되돌아 나왔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억울하고 한탄스럽기만 하다. 생각다 못한 할아버지는 이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요”, “ 생산직과 비생산직의 비유”, “나는 직장을 이렇게 사랑해왔다등의 글을 편지지에 줄줄이 써서 백여장 씩 복사하여 사람들에게 호소하겠다며 사방 여섯자 정도 됨직한 철거예정의 인완산 기슭 전세방에서 한을 삭이는 것이다.

시내버스 기사 생활 19, 65세의 연세로 삼화교통() (161번 시내버스)에서 해고를 당하신 할아버지는 당신이 수십 년간을 근무하신 그 버스의 종점인 문화촌 언덕배기에 살고 계셨다.
평안도가 고향인 홍인보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당시 32) 내려오셨다 한다. 그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시다가 운전을 시작, 삼화교통에 취업하셨다. 당시 삼화교통의 현장상태를 할아버지는 나는 직장을 이렇게 사랑해왔다에 적어놓으셨다.

회사가 처음으로 문화촌에 왔을 때, 아스팔트가 안 되어서 차만 지나갔다 하면 왼통 먼지 투성이었지요. 고생이 많았었지요. 그래서 본인의 처는 간식 막걸리를 가져다가 수고를 조금이나마 위로라도 해 드렸지요. 그러는 중 회사측의 간부직원이 나타나서 특별히 시장에 가서 싱싱한 조기생선을 사다가 술안주삼아 자그마한 성의를 표시한 바도 있었지요.
또 그뿐인가요. 본인이 천주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북어와 막걸리를 가져다가 공장 내에서 고사를 지내면서 차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매사가 다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답니다. 본인은 추우나 더우나 일이라면 시키는 대로 힘들다 피곤하다 말한마디 없이 우마처럼 일만 해왔지요. 이렇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역사를 이룩함인지... 월남전쟁의 발발로 인하여 시내기사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월남으로 월남으로 쏠리기 시작하였지요. 그 반면에 시내 운수 사업계에서는 큰 타격을 받아 기사 부족으로 큰 곤란을 당하였을 적에 어떠했던가요?

이렇게 써내려간 글의 내용인 즉 이때 기사들은 기회를 포착하여 대우개선을 위한 방책으로 태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홍인보 할아버지는 묵묵히 일만 하여 동료들로부터 욕을 벅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윽고 전쟁이 끝나고 기사들은 죄다 조국으로 되돌아왔으며 기사 홍수사태가 빚어졌다. 그러자 총신은 난세에라를 속담, 격언도 아랑곳없이 “1984.3.8. 3만원 상당의 사고 백밀러 유리 하나 깨진 사고로 해고라니 웬말이냐, 너무도 억울해서 사회에 호소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홍인보라고 적고 있다. 그때를 지긋이 회상하시며 할아버지의 표정엔 늦가을 저녁나절 같은 쓸쓸한 그늘이 스친다.

우마처럼 60평생 죽도록 일만해도 노동자 할아버지... 그러나 삼화교통은 노동자들의 피땀의 댓가를 교묘히 착취했으니 퇴직금 누진을 줄이기 위해 적당한 시기(?)에 퇴직금을 지불하고 재입사의 형태를 취해왔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도 운전기사의 숙명같은 사고로 인한 징역(구류 15)을 겪으셨다, 그러나 그 사고도 사실은 우직한 할아버지에게 덮어씌워진 것이었다고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요를 보자.

현장 검사를 해보면 삼척동자도 다 능히 알 수 있는 사실을 본인이 형사의 취조에 그저 예예 하지 않고 부정한다고 해서 직권을 남용하여 기기묘묘한 수작과 방법을 이용해가지고 특가법으로 똘똘 묶어가지고 유치장에 처박아두고...... 도적이 제발 저리다는 식으로....“ -믿거나 말거나- 홍인보

그때의 담당형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이젠 꼭 한번 찾아가 보아야겠다고 하시는 걸 보면 담당형사의 몰지각하고 오만함이 눈에 선연히 보이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글의 끝에는 한결같이 믿거나 말거나를 적어놓으셨다. 밑든 말든 그것은 사실이고 나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기에 썼다는 것.

오후 5시경 할머니가 보자기로 덮어두었던 밥상을 들고 막내아들의 방으로 들어가셨고 이어 식사를 끝낸 듯 아들이 방에서 나오더니 다녀오겠습니다고 할아버지께 인사를 한다. 25~26세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야근출근을 하는 거라고 했다. 이 부지런하고 성실한 가족들, 60평생 노동을 했어도 오막살이 집 한칸도 마련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삶을 과연 어느 누가 무능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집이 누추하다대접할 것이 없어서라는 노인들 앞에서 필자는 정녕 송구스럽기만 했다. 할아버지의 억울한 삶은 이 나라 노동자들의 뼈아픈 현실을 여실히 반영하는 산증거가 아니겠는가. 약삭빠르게 기회포착해가며 남을 속이고 등쳐먹지 않는 한 어떻게 이 나라 현실 속의 노동하는 사람들이 잘 살 수가 있겠는가. 곧이곧대로 정직하게 심지어 동료들에게 핀잔까지 받아가며 일한 댓가가 65세에 비인간적인 기업주에 의해 해고당하는 것이 현실일진대.

오후를 내내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보낸 후 손을 잡으며 놀러 오라고 하시는 할머니와 언덕을 내려와 한길까지 전송해주시는 홍인보 할아버지께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드린 후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허여멀겋게 벗겨진 인왕산 기슭으로 으스름 저녁이 덮어오고 있었다. 언제 철거반원의 해머가 들이닥칠지 걱정이지만 그래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신념으로 살아가신다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며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뭔가 분하고 슬퍼져 소리라도 지르고픈 가슴을 짓누르며 할아버지를 해고시킨 161번 종점에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새파란 우리 젊은이들도 대충대충 쉽게 포기하고 좌절해버리는 세태에서 끝내 싸워가시는 할아버지가 꼭 한번은 승리의 기쁨을 가질 수 있으시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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