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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기전노동조합 파업과 지역연대투쟁(1994년 6월)
임단협에 공권력 침탈
대우기전은 1994년 4월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회사쪽에 임금교섭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해고자 복직’과 ‘퇴직금누진제’는 교섭대상이 아니라며 단 한 차례도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회사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자 노동조합은 6월 2일 쟁의발생을 결의하고 14일 82.57%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결의했다. 이에 따라 15~18일 부분파업, 20~21일 전면파업, 22~23일 태업, 24~25일 시간별 부분파업 등 많은 조합원의 참여 속에 투쟁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노조 전 운영위원인 홍주표 등 해고자와 집행 간부 11명을 업무방해와 파업 선동혐의로 고소·고발했다. 파업에 들어가기 전 회사측은 임금인상 투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홍주표 전 운영위원을 상습도박혐의로 구속되도록 했으나 6월 8일 석방된 뒤 이후 홍 씨가 대의원 활동을 계속하자 6월 24일 또다시 그를 해고했다. 그러다가 6월 25일 오후 10시 30분경 철야농성을 전개하던 홍주표 전 운영위원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잠시 나간 사이 경찰이 영장도 없이 수갑을 채워 연행하려 했다. 이에 10여 명의 조합원이 그를 구출해 노조사무실로 데려가 쇠톱으로 수갑을 끊었다. 그러자 경찰이 증원돼 공포탄을 쏘며 조합원들을 연행했다.
노동조합은 비상연락망을 통해 조합원들을 조직하고 대우기전 상황을 전국에 알렸다. 6월 27일에는 조합원 6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불법 연행 규탄 및 교섭 촉구대회’를 열고 도경찰국을 항의 방문했다. 대우기전노조는 대시민 선전작업을 계속하고 6월 28일 오후 3시 무기한 전면파업에 돌입했으며 공권력이 투입될 때를 대비해 굴뚝 점거농성을 준비했다.
6월 29일 새벽 5시 40분 600여 명의 조합원이 농성하던 중 정문 기숙사에 최루탄을 발사하며 공권력이 진입했다. 2~3백여 명의 조합원이 건물 옥상과 굴뚝으로 올라가 저항했으나, 오후 1시 30분 경찰이 옥상 문을 부수고 진입해 지도부와 조합원 100여 명을 연행했다. 한편 굴뚝으로 올라간 부위원장, 문화체육부장, 홍주표, 윤종상 운영위원 등 4명은 농성을 계속했고 조합원들은 집회와 선전전을 전개하면서 공권력 투입과 불법 연행에 항의했다.
대구지역 연대투쟁으로 확산
앞서 대동공업, 대한중석 등 4개 노조는 29일 자정에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대우기전에 공권력을 투입할 경우 파업에 돌입할 것을 밝혔다. 그리고 대우기전에 공권력이 투입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대구노련은 7월 2일 공권력 투입 규탄집회를 열어 지역 연대투쟁을 결의하는 등 활발한 지원활동을 펼쳤다.
대우기전 조합원 300여 명은 7월 3일 경북대학교로 집결해 비상체계를 정비하고 파업투쟁을 더욱 가열차게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회사측의 ‘7월 4일 정상조업’ 방침에 흔들리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7월 4일 조합원들은 지도부가 농성 중인 굴뚝 아래에서 농성투쟁을 전개했다. 5일에는 조합원 600여 명이 출근해 집회를 하고 현장을 순회하며 전 조합원을 결합시키기 위해 선전전을 전개했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투쟁에 밀려 회사측은 사장이 직접 노조사무실을 방문해 교섭을 요청했고, 7월 6일 1차 교섭이 진행됐다. 노동조합은 고소·고발 취하, 부당징계 완전철회, 구속자 석방 및 원상회복, 조합비 가압류 완전철회, 임금인상,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의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교섭이 결렬된 뒤 노동조합은 투쟁 강도를 더욱 높이고 다시 현장을 장악, 전면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하고 협상을 계속했다.
이날 대동공업노조 조합원들은 대우기전 공권력 침탈에 대한 규탄 집회를 하고 4시간 파업을 단행해 연대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7월 5일 대구노련 사무처장이 구속되고 정우달 의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등 탄압이 거세지자 대구노련은 7월 13일 8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노동청 항의방문을 했다. 대우기전의 투쟁으로 시작된 대구지역의 투쟁은 더욱 확산했다. 대동공업노조가 교섭 결렬과 대우기전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집회와 부분파업을 진행했고, 상신브레이크노조는 7월 9일부터 파업투쟁을 시작했으며, 대한중석노조가 교섭이 결렬됨에 따라 7월 13일 부분파업에 들어가면서 지역 4사 공동투쟁으로 발전했다.
7월 19일 조합원 찬반투표 가결로 합의
7월 17일 상임집행위 회의를 마치고 식사하던 지도부 9명을 사복경찰 50여 명이 덮쳐 전원 연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소식을 듣고 달려와 항의하던 대의원과 조합원 10여 명도 연행했다. 18일 달서경찰서 앞에서 대우기전 조합원 150여 명과 상신브레이크 조합원 등 200여 명이 모여 연행과 구속에 대한 항의투쟁을 전개했다. 이날 사복체포조 30여 명이 노동조합 사무실로 들이닥쳐, 굴뚝에서 단식농성을 전개하다가 지도부의 현장 지도력 강화방침에 따라 내려온 지도부 3명마저 연행했다.
대우기전노동조합은 15일 회사측과 협상에서 잠정 합의했으나 조합원들의 반대로 찬반투표에 부치지 못했다. 노조는 합의안을 19일 다시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쳐 조합원 1,163명 중 935명(80.4%)이 투표에 참가, 찬성 499명(53.4%), 반대 403명, 무효 31명으로 가결됐다. 대우기전투쟁 주요 합의 내용은 △임금 기본급 45,000원 인상 △생산격려금 400,000원 △생산성과금 목표 미달 시 130% 지급, 목표 달성 시 150% 지급 △구속·수배자는 벌금형 이하일 경우 원직복직, 집행유예일 경우 개전의 정이 있으면 계열사 2년 근무 후 근무태도 봐서 원직 복직 △해고자 우형하는 소송 포기하면 계열사 취업 알선, 홍주표·이홍희는 해외 취업을 알선하되 본인이 거부하면 이후 협의사항으로 남기며, 윤종상·김희열은 임금타결 시 재심하고 해고하 않음 △징계자는 경징계로 처리 △ 조합비 가압류는 타결 후 빠른 시일 내에 푼다 △고소고발 취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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