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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온 길
..... 수원구치소와 메이데이 _양규헌
첨부파일 -- 작성일 2021-12-17 조회 325
 

양규헌의 내가 살아온 길

 

수원구치소와 메이데이

 

저녁 8시경 배방(방 배치)을 기다리고 있는데 각 사동에서 메이데이 행사를 하고 있었다. 구치소는 왁자지껄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들려왔다. 노동절의 유래도 들려오고 반노동자적인 노태우정권 타도하자는 울림이 구치소를 흔들었다.

취침시간(구치소 취침시간은 9시경)이 되어 배방(방배치)이 되었다. 나는 혼거 방’(여럿이 있는)으로 안내되었다. 철문을 열자마자 똥 냄새가 진동했고 6명이 생활할 방에 9명을 집어넣었으니 삐지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들어가다가 한 사람 다리를 조금 밟았다. 그런데 밟힌 놈이 벌떡 일어나며 내 뺨을 후려갈긴다. 반사 신경으로 나는 그놈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방 안에 있던 재소자들이 전부 다 일어나 나를 집단으로 구타한다. 소리소리 지르며 아수라장이 되고 교도관들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떼거리로 몰려오고 다른 방에서는 신이 났는지 철문을 쾅쾅 차기도 하고 난리가 났다.

 

요란한 신고식으로 방 깨지고 하루만에 고참

교도관들의 협박으로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홉 명이 자려면 반대로 껴서 옆으로 자야 하니까 머리와 발을 서로 반대로 해서 머리 양쪽엔 두 사람의 발이 늘 와 있다.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각 사동에서 “00 형님 평안히 주무셨습니까?”라는 익숙지 않은 인사가 줄을 잇는다. ‘제 아버지한테도 저렇게 인사하나?’ 혼자 중얼거렸다. 일어나서 보니 내가 갈긴 녀석이 방장이었다.

이 방에서 감히 내 얼굴을 갈겼으니 아침 먹고 나서 죽여 버리겠다라고 한다. 나는 어떤 놈이 뒤지는지 해보자.”라고 했는데, 아침 식사 끝나고 설거지도 하기 전에 교도관들이 몰려와서 방을 깬단다. 방을 깬다는 건 그 방 재소자들을 모두 다른 방으로 보내는 것을 뜻한다. 번호가 호명될 때마다 몇 명씩 관물을 싸서 나가고 나 혼자 남았다.

쌓인 매트리스에 누워서 이게 뭐지? 나는 왜 남겨둘까?’ 생각하는 중에 철문이 열리고, 어디서 오는지 2명의 재소자가 관물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넙죽 절을 한다. 황당해서 벌떡 일어나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신고식이란다. 이 방에선 그런 거 하지 말고 잘 지내자고 했는데 잠시 후에 철문이 열리고 또 두 명이 들어오자마자 큰절을 했고, 그렇게 들어온 재소자가 8(나 포함 9)이었다. 전방(방 옮김) 온 사람들은 대부분 구치소 들어온 지 오래됐지만, 이 방에서는 고작 하루 먼저 들어온 내가 제일 오래된 고참이 되었다. 8명의 범죄혐의는 폭력, 교통사고, 간통, 사기 등 다양했다.

 

박창수 열사 투쟁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동지들

다른 방에서 넘어온 재소자들은 방 서열을 정하자며 나에게는 당연직 방장이라고 한다. 내가 방장을 거부하고 이 방에서는 방장 없이 지내자라고 하면서 나는 마치 고문 같은 지위가 되었다. 그리고 방에 처음 들어온 두 명 중에 앞에 들어온 재소자가 배식반장이 되었다. 감방에서는 문지방을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무조건 앞 서열이 된다.

배식반장은 할 일이 많다. 접견에서 들어온 영치품을 관리하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야 하며 구치소에서 나오지 않는 몇 가지(고추장, 김치, 칫솔, 퐁퐁 등)를 구매해야 한다. 구매한 물품은 3일 뒤에나 들어오기 때문에 미리미리 앞당겨 계산하고 구매하지 않으면 무능한 배식반장이 된다. 그래서 배식반장은 영치카드(개별이 소유하고 있는 구치소 돈)를 관리하고 밥을 푸는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방 안에서는 어느 정도 권위가 있다.

수원구치소에서 보름쯤 지났을 때, 동지들이 굴비 엮이듯 끌려 왔다. 박창수 열사 투쟁으로 연행된 동지들과 경수노련 조직사건으로 들어온 동지들도 있었다. 평택의 동영알미늄에서, 기아자동차에서, 안산의 삼양금속에서 단지 생존권과 기본권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동지들이 어물시장 생선 엮이듯 줄줄이 묶여오는 분노의 여름이었다. 김종배 동지와 나의 인연은 수원구치소에서 시작된 셈이다.

수원구치소는 일본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어서 물은 바깥 수도꼭지에서 받아 사용해야 하고 빨래는 세탁장에서 잠깐하고 와야 한다. 편지나 항소이유서 등을 쓰려면 볼펜심 하나만 지급받아 필경실을 이용하고 나올 때는 볼펜심을 반납해야 한다. 방 한쪽에 화장실이 있는데 재래식이며 냄새도 심하고 구더기가 기어 나왔다. 이른바 대포알’(빵 봉지 등을 모아서 변기통을 틀어막는 뭉치)을 덮어 놓지만, 그 틈새로 늘 구더기는 기어 나온다. 장마철은 똥통에 물이 넘쳐 방으로 똥 덩어리가 스멀스멀 밀려온다. 그럴 때는 똥물 넘친다고 소리치고 난리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방에 빨래를 널어야 하는데 끈이 없으니 빵 봉지를 갈라서 이어붙이고 새끼로 꼬아서 빨랫줄을 만드는데 검방(방 검사)만 나오면 다 걷어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손재주도 탁월하다. 그래서 교도소에 3개월만 검방이 없으면 헬리콥터 만들어서 탈출한다는 말이 나온다.

 

옥중투쟁위 만들어 민주방송 진행

구치소에는 옥중투쟁위원회(옥투위)가 꾸려졌고, 사동마다 책임자가 정해져서 책임자는 그 사동에 민주방송을 진행한다. 1주일에 세 번씩 민주방송을 시작하는데, 민주방송은 집회하는 방식이고 사동 책임자가 시국 연설 같은 걸 하지만 때로는 돌아가며 하기도 한다. 갇힌 공간에서 민주방송을 시작할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시작하는데, 틈나는 대로 통방으로 다른 방 재소자들에게 노래도 알려줘야 한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재소자들에게는 민주방송이 기다려진다는 얘기도 들렸다. 투쟁 전술은 다양한데 국그릇으로 창틀 긁기, 바닥에 바로 누워서 철문차기(소음투쟁이라고도 하며, 방 몇 군데에서 철문을 두 발로 차대면 사동 전체가 떠나갈 듯 쿵쾅거린다) 등이다.

민주방송은 시국에 대한 문제만을 중심에 놓지 않고 재소자 모두에게 관련된 사안도 연설 주제로 정해서 일반 재소자들의 참여와 관심을 독려한다. 때로는 면회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운동시간이나 목욕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심지어 1주일에 두 번 주는 고깃국(한번은 돼지, 한번은 소)이 고기 함량 미달이라며 구치소를 성토하기도 한다. 함량이 미달인지 아닌지는 사실 우리도 모른다. 그렇지만 방송을 외칠 때는 그램 수까지 아는 척을 하면서 구치소를 규탄한다. 구치소 측에서는 이런 이슈를 노태우 타도나 정치적 투쟁보다 더 민감하게 바라보고 대응한다.

일반 재소자들이 민주방송에 참여해 함께 노래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더욱 적극적으로 소내 투쟁에 결합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활과 직접 연관됐기 때문이다. 민주방송이 거듭되면서 어떤 재소자들은 여기서 나가면 저도 선생님처럼 운동권 하고 싶어요. 받아주실 거죠?”라며 진지하게 상담을 해 오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옥투위 평가에서 법정투쟁이 점차 약화돼 간다는 평가가 있었다. 법정투쟁을 꺼리는 것은 학생 동지들을 면회 온 가족의 영향이 컸다. 학생 부모님들이 너 재판받으면 나올 테니까 변호사님 말처럼 절대로 재판장에서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이다. 대학교 다니며 운동하다가 징역 온 것도 미안한데 부모님의 이런 충고가 그들에게 짐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 1991년 수원구치소에서 양규헌이 지은

 

폭우

 

삭막한 감방의 철창 사이로

비가 내린다

빗줄기 속에 온갖 회한을 담아

세상을 삼켜 버릴 듯 비가 내린다

신체를 저당 잡힌 노동자는

자유와 민주의 의미를 생각하며

한줄기 빗방울 되어

자본이 장악한 얼룩을 씻기 위해

거세게 몰아쳐도

빌어먹을

폭우를 감지한 강고한 방어벽은

퍼붓는 공안 통치의 위력에

흐느적거리는 노동자, 민중, 그리고 우리의 투쟁 대오!

노동자는 굳은 마음 아무리 고쳐먹어도

세상을 향해 주먹질해야 할 수밖에 없는 오늘

누적된 모순을 씻으려는 듯 비가 내린다

폭우가 퍼붓는다

노동대중과 격리된 엄연한 이곳에서 현실에서

자유란 취할 수 없고 해방이란 개처럼 짖어댈 뿐

분노가 있으면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투쟁이 있다는데

한정된 공간에서 정세 반전의 몸부림이 계속되고 있으나

투쟁의 깃발 위로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

멈추지 않는 빗줄기에

구치소는 똥물이 넘쳐 사동 감방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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