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신실업 구사대 침탈과 마창노련 정당방위대(정방대) 이영기(노동자역사 한내 자료국장)  <세신실업노조 속보. 1989년 4월 10일> 1989년 2월 2일 ‘마산창원지역 노동법개정 및 임금인상투쟁본부(마창공투본) 발대식’(1만 2천여 명 참가)과 3월 24일 임투전진대회(2만 2천여 명 참가)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마창지역의 1989년 공동임투의 기운은 높아져 갔다. 마창공투본에 참여한 노조 중 38개 노조(69%)가 3월 말~4월 초 사이에 집중적으로 교섭을 시작할 정도로 공동연대투쟁의 열기가 뜨거웠다. 마창노련 소속 사업장인 세신실업은 1989년 2월부터 파업농성 중이었다. 최저생계비와 동종업계 임금수준에 기준한 노조의 임금인상안과 교섭 요구에 대해, 사측은 무시와 김빼기로 일관했다. 1월 쟁의발생신고 후 2월 15일부터 돌입한 노조의 부분파업은 사측이 3일만에 직장폐쇄로 맞서는 바람에 자연스레 전면파업, 농성투쟁으로 바뀌었다. 한 달 이상 파업농성 중이던 1989년 4월 10일 새벽 4시 30분, 300여 명의 구사대가 농성장을 침탈했다. 세신실업 노조의 당일 속보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모두들 고요히 잠들었던 그 시각에 정밀과 양산본사의 관리사원들을 구사대로 조직하여 300여 명이 헬멧을 착용하고 쇠파이프와 괭이 등 갖가지 악랄한 무기를 들고 쳐들어 왔습니다. .....중략......조합원들은 너무나 많은 폭행을 당해 걷지도 못할 정도인데도 집에도 보내주지 않고 30여 명의 부상자들과 함께 감금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에 뒤질세라 똥개 경찰들은 구사대가 폭행하여 끌고 간 노조간부 10여 명을 강제 연행 구속하였던 것입니다.” ...................................................................1989년 4월 10일 세신실업노조 속보 중 세신실업노조 속보는 이후 상황에 대해 “오전 9시 30분 경 마창 노동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어려운 싸움을 하여 구사대를 박살내고” 투쟁 현장을 되찾았다고 했다. 힘이 되어 준 마창 노동형제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절대로 질 수 없다는 각오로 결사 투쟁의 결의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속보나 노조의 다른 기록에서는 조금 더 자세한 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다 마창노련 정당방위대(정방대)의 1989년 임투시기 활동 및 평가 기록(1989년 6월 작성된 것으로 추정)에서 조금 더 생생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마창노련 정방대 활동기록, 1989년 6월 추정> 이 기록에 의하면 그날 오전 8시 마창공투본과 마창노련 정방대에 비상이 걸렸다. 09시에 삼미, 대원, 금성사노조 조합원 500여 명이 출근길에 바로 집결했고, 09시 30분 타코마, 통일, 대림노조 정방대 200여 명이 세신실업에 도착했다. 작전수립 후 10시에 작전이 개시되어 5분만에 정문을 돌파하고 구사대 30명을 “체포”하고 30분만에 상황을 종료시켰다. 이후 전경들이 출동한 상황에서 정방대원들을 제외한 일반 조합원들은 퇴각 조치하고 정방대원들은 전경들과 대치했다. 저녁 7시 30분 포로로 잡고 있던 구사대원들과의 교환조건으로 강제연행 되었던 노조간부들이 모두 석방되었다. 이 기록에는 마창노련 정방대의 결성 취지와 조직구성, 1989년 임투시기의 활동과 평가도 담겨 있다. 1988년 임투를 거치며 각 노조별로 노조 및 투쟁 사수를 위한 정방대가 결성되었다. 1988년 7월 마창노련 의장 및 구속동지 석방투쟁에 타코마노조의 정방대가 선도적 역할을 하면서 노조별 정방대 사이의 연대의 필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1988년 말, 1989년 임투 준비를 시작하면서 마창노련 정방대의 조직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고 3월 24일 임투전진대회에서 선봉대 발대식을 가졌다. 임투전진대회 사수투쟁, 3월 30일, 4월 7일 현대중공업 공권력 개입 항의 투쟁, 4월 9일 창원대 연합 집회 사수투쟁, 부산산기노조 지원 투쟁, 4월 10일 세신실업노조 구사대 격퇴, 4월 말~5월 통일중공업노조, 금성사노조 지원 투쟁, 4월 26일 마창노련 이흥석 의장 석방투쟁, 5월 전국노동자대회(노동절) 투쟁 등 마창노련 정방대는 1989년 공동임투 시기 연대투쟁의 제일 앞선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세신실업 구사대 격퇴 투쟁은 마창지역을 ‘전국 노동운동의 성지’, 마창 노동자들을 ‘불패의 노동자 군단’으로 불리게 한 투쟁으로, 지역연대투쟁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승리한 상징적인 투쟁이다. 참고자료 - 김하경, 『내사랑 마창노련』상, 갈무리, 1999 - 전노협백서 발간위원회, 노동운동역사자료실, 『이제는 하나다! 전노협』 전노협백서2권, 논장, 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