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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룡 동지를 만나러 가는 길 _김미화
첨부파일 -- 작성일 2021-10-14 조회 312
 

김삼룡동지를 만나러 가는 길

 

김미화 (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193212월 이재유가 경성형무소에서 만기 출소하자 이듬해 2월 김삼룡은 그를 만나러 서울로 향했다. 이재유는 김삼룡에게 이제는 막연한 가두운동은 그만두고 공장에 직접 들어가 노동자를 획득하고 공장 노동자층에 견고하게 기반을 만들어 파업 등의 투쟁을 통해 이를 혁명적 노동조합으로 전환해야 하는당 재건 방식을 제시하였다. 1930년대 당시는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던 시기였다.

이에 김삼룡은 인천으로 가서 인천항 하역노동자로 취직해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29년 원산총파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체포를 피해 인천항 하역노동자가 된 이백만과 인천 토박이 이석면을 포섭해 이들과 함께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먼저 인천항 하역노동자의 생활을 기본조사하고 이를 통해 조직사업 방향을 설정했다. 김삼룡은 인천 거주지에서 동거인 이상철을 비롯해 이백만, 이석면 등과 함께 회의를 열고 각자 노동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자를 포섭하고 기관지를 발행하여 이를 노동자에게 배포하기로 결의했다. 한편 공산주의 ABC등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회 활동도 하기로 했다.

 

 

<동아일보> 195041. 김삼룡(), 이주하(아래)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341월 인천 적색노동조합 조직에 관한 정보가 인천경찰서에 접수되자 경찰은 이백만 집을 수색하게 되고 숨겨놓은 공산주의 ABC등 사회주의 서적 5~6권도 발각됐다. 이백만은 즉각 체포되었고 조사 과정에서 김삼룡의 존재가 드러났다. 김삼룡은 그해 1월 이재유가 다시 검거되기 직전까지 이재유와 동거하고 있던 안병춘과의 연락장소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로써 이들의 인천지역 활동도 중단되고 말았다.

몇 년의 감옥생활을 보내고 나온 김삼룡은 19361225일 신출귀몰했던 이재유가 결국 다시 구속되자 충주 엄정 고향마을로 내려왔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점점 엄혹해지고 활동하기는 점점 힘들어졌다. 김삼룡은 농민들을 조직하고 그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19391월 한겨울 체포를 피한 이관술과 그의 누이동생 이순금이 동지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 원주역에서 내려 8시간을 걸어갔다고도 하고 수원에서 출발 장호원을 지나 배를 타고 남한강을 건너 김삼룡 고향마을을 찾았다고도 전해지나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그 겨울 아무리 추워도 조직 재건을 꿈꾸는 동지들이라면 춥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김삼룡은 이관술, 이순금 등과 경성콤그룹을 결성하여 다시 조직적 활동을 전개하고 그해 9월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한 박헌영을 경성콤그룹 지도자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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