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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으로 가보는 내나라 : 사라져가는 전호리와 갈라선 사람들_서동석 (34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1-10-17 조회 1011
 
가슴으로 가보는 내 나라

사라져가는 전호리와 갈라서는 사람들
 

서동석 (통일문제연구소 회원)

눈을 감고 이렇게 마음으로 그려 봅시다. 마치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보듯이 대기권에서 조금씩 한반도 상공으로 시야를 좁혀 들어갑니다. 푸른 바다 넘실대는 한반도 상공의 구름을 걷어내며 시야를 더 내려와 서울의 시가지를 봅니다. 꼭 손목시계의 속처럼 부품이 가득 차 있는 것 마냥 빼꼭하게 보이는 서울입니다. 그 숨 막히는 도시의 가운데를 가르는 한강이 보입니까? 그럼 이제 한강을 따라 양쪽의 제방에 쭈욱 뻗은 자동차전용도로로 초점을 맞춰 봅니다. 강의 양쪽으로 뻗은 도로의 한편은 올림픽대로라고 합니다. 그 도로에 꼬리를 물고 오고 가는 차량이 가득합니다. 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차량의 흐름을 따라 김포 쪽으로 가다보니 성산대교를 거쳐 방화대교 그리고 행주대교에 이릅니다. 거기서 강가로 내려옵니다.
강변도로를 차로 오고가는 사람들은 그 도로만 보게 됩니다. 한눈을 팔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도로 너머에 무슨 마을이 있는지, 그 마을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누가 살고 있는지 신경을 쓰기가 어렵습니다. 자동차를 만들고 그 자동차를 위한 포장길을 만들다보니 정작 그걸 쓰는 사람은 그 물건에 넋이 홀립니다. 길 위에서 죽어가는 목숨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전호리의 가을 _ 사진가 김병길>

행주대교 바로 아래에서 한강이 내려가는 쪽으로 바라보면 너른 들판이 있습니다. 싱싱한 대파밭입니다. 생산량이 엄청 납니다. 큰물이 나면 이곳의 땅은 넘실대는 흙탕물에 잠기지만 곧 물이 빠지고 나면 강의 위쪽에서 쓸려 온 뻘과 온갖 미생물로 땅은 더욱 기름져집니다. 땅이 기름지니 막 파종을 하고 나서 두어 달 지나면 벌써 파는 쑤욱 자라 출하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생산된 대파는 도시사람의 입맛을 돋우는데 일등공신이 됩니다.
여의도의 반쯤 되는 넓이의 대파밭을 지나면 더러 호박밭도 만납니다. 밭과 밭 사이의 농로를 지나 좁은 수로 위에 놓인 녹슨 철제다리를 지나 고개를 넘으면 거기 1970년대 한창 박정희가 새마을운동을 벌이던 무렵의 집들이 올망졸망 자리 잡은 마을이 나타납니다. 경기도 김포군 고촌면 전호리 입니다. 마을 전체가 예순 가구쯤이나 될까 싶은 마을입니다. 이 마을 언덕에 서면 여기에 이런 마을이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마흔해 전에 시간이 멈춘, 아니 꼭 무슨 영화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곳 같습니다. 낮은 구릉이 왕릉처럼 이어진 그 골마다 여남은 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늘어 선 구릉이 다섯이라 그런지 오룡곡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답니다. , 또 다른 이름으로 옥녀봉이 있는데 마을 산이 옥녀 같아 그런다지요. 글쎄요, 산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고 봉이라 하기에도 손등같이 낮은데 게다가 옥녀라니... 어쨌든 마을은 참 예쁜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서 해지는 쪽을 보면 멀리 들판에 삐죽 솟아오른 산 하나가 보입니다. 인천 부평의 계양산 입니다. 그 산 꼭대기의 높다란 철탑이 붉은 노을에 물드는 모습을 시간이 멈춘 이 마을에서 보노라면 괜스레 낭만적이 됩니다. 전호리에서 계양산까지는 아무것도 걸릴게 없이 펼쳐진 들판입니다. 예전에는 여기서 김포 끝, 강화도로 가기 전까지 이르는 들판을 김포평야라 했지요. 경기도 이천과 더불어 김포쌀이라 하여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답니다. 그 평야의 들머리입니다. 들판엔 마땅히 개천이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굴포천이 들판을 지나와 이 전호리에서 한강으로 흘러듭니다. 그곳에 연고가 있는 내 후배 말에 따르면 그 개천엔 가물치가 흔했답니다. 개구리나 삼겹살을 꿴 낚시줄을 그놈이 있음직한 수초 속에 빠트리고는 살살 약 올리면 이놈이 알을 훔치러 온 적인 줄 알고는 덥석 문답니다. 곡괭이자루만한 가물치를 그렇게 함지 가득 잡아서 집안사람들에게 인심을 베풀었다니 믿거나 말거나.
박정희는 근면’ ‘자조’ ‘협동을 내걸고 새마을운동을 벌였습니다. 마을을 개조하기 위해 정부가 양회(시멘트)를 대주고 농한기에 농민은 노동력을 대어 볏짚을 걷어내고 스레이트지붕으로 바꿨습니다. 싸리울타리는 양회조립식담이 되고 집과 집 사이를 흐르던 고랑은 관을 묻어 하수도가 되었습니다. 동네 서낭당도 미신이라고 헐었습니다. 전국이 난리북새통을 부려 스레이트가 부족하자 양철지붕도 등장했습니다. 좌우지간 정부가 호되게 몰아쳐 겉으로는 생활환경이 나아졌습니다. 전호리는 그때 거기서 그대로 지금까지 그 모습으로 남았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마을, 전호리. 그래서 화가나 사진가 또는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맞춤이라고 입소문난 마을입니다. , 장어낚시하는 이들에게도 잘 알려진 마을이지요.
그런데 이 마을이 새마을운동 때보다 더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두어 해전부터 외지사람들이 밀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마을의 강변은 민간인출입통제지역으로 철책선이 쳐져 있고 재두루미서식지이기도 하여 엄격하게 개발이 제한되어 있는 곳입니다. 최근에 제한이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1종전용주거지역이라 집을 지어도 바닥면적에 비해 반도 안 되는 땅에만 지어야 하며 높이도 3층 이하만 가능합니다. 또한 단독주택이나 구멍가게, 일용품점 따위의 생활시설만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고 공장과 창고가 즐비하게 들어섰습니다. 외지로 나가는 교통수단으로는 오로지 하나뿐인 마을버스 종점엔 생계보장하라는 붉은 펼친막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교통이 불편하기 그지없는 이곳에 왠 물류창고에다 뭐다 뭐다하는 회사가 들어오는 걸까요. 다 보상을 노린 수작이 아닐까요.


<주민 생계대책없는 경인운하 반대!_ 사진: 오마이뉴스>
 
들판을 가로질러 오던 굴포천이 이 전호리를 무너지게 만든 주범입니다. 마른들에 물을 대주어 온갖 목숨을 기르던 개천이 외려 숱한 목숨을 위협하는 괴물이 되고 있습니다. 전호리 마을사람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개천을 운하로 만들고자 어마어마한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마을도, 마을사람도 모두 무너지고 있습니다. 황해바다의 아름다운 섬 영종도에 들어선 인천국제공항에서 바라다 보이는 인천 서구쪽에서 전호리까지 이어지는 경인운하는 진즉 있던 굴포천을 몇 배 넓혀 거대한 물길을 내고는 뭔 화물선이 다니게 한다는 공사입니다.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바로 옆에서 거의 평행선으로 경인운하, 그 사람들은 아라뱃길이라던데, 그 공사가 한창입니다. 공사현장은 참으로 사람의 사고가 얼마나 교만하고 탐욕스러운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자연이니 뭐니 하는 건 이 사람들 사고엔 아예 없는 듯 합니다. 까뭉개고 허물고 파헤치는 공사만 하면 됩니다. 먼 뒷날 문제가 심각해지면 또 되메우고 다듬는 공사를 하면 그만이라 이거지요.
생명의 빛깔, 파란 줄기로 그득했던 대파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항구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경인운하의 한쪽은 인천터미날이고 전호리쪽은 김포터미날입니다. 그 가까운 곳엔 869천 평방미터 규모의 물류단지 부지를 조성하는 공사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내 눈이 의심스럽습니다. 저기 저곳에 정말 그 푸르던 들판이 있었단 말인가. 백 마디 말로 어찌 그 현장을 설명하겠습니까. 예전 그곳을 알던 이들은 꼭 다시 거길 가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르는 이들에게 지금 이 나라를 잘살게 한다는 자들이 하는 짓을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물로 장난치는 자들 때문에 마을도 무너지고 사람도 갈라서니 지금이라도 이 삽질을 멈추게 해야 하겠습니다.
잠깐, 이번 선거에서 다시 서울시장이 된 이도 이 운하를 이용하려고 하는지 멀쩡한 양화대교를 헐고 여객선이 다닐 수 있는 다리를 새로 짓는다고 합니다. 정말 미치겠습니다. 괴물은 우리 곁에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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