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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에 25살이 되는 조나>
첨부파일 -- 작성일 2009-11-03 조회 988
 
<2000년에 25살이 되는 조나>
 
이성철(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백색 도시>, <노 맨스 랜드> 등으로 잘 알려진 알랭 타네 감독의 1996년 작품입니다. 그와 공동으로 각본 작업에 참여한 존 버거(John Berger)는 영국의 소설가이기도 합니다(국내에도 그의 책들이 다수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으로 이들은 1997년 전미비평가협회의 각본상을 타게 됩니다. 개인적으론 이들이 상을 타도 될 만큼 뛰어난 각본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유럽의 68혁명 세대들의 현재적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김응수 감독의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와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 있겠네요).

영화 제목의 조나(Jonas)는 유기농 농장주인인 마르셀과 세투의 어린 자녀들 중 한명으로 짐작됩니다. 아니면 68 이후 세대들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네요. 예컨대 우리가 386 이후의 새로운 세대를 언급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조나는 운동의 재생산 기반쯤이 되지 않을까요? 이들이 자라서 25살이 되는 해(2000년)는 어떤 해가 되어야 할까를 기원하는 소위 ‘운동권’들의 고민과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성경의 조나(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배를 타고 도망가다가, 큰 풍랑이 일자, 배에 불경한 자가 탔다고 생각한 선원들이 제비뽑기를 하여 요나를 물에 빠뜨리게 됩니다. 그러나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사흘밤낮 갇혀 있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나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이야기에 빗대어 보아도 이 영화는 유럽의 68혁명 세대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암담함과 이를 끝내 이겨내려는 희망이 공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시대적 배경은(2000년에 어린 조나가 25살이 되려면) 1970년대 초중반쯤이 되겠네요. 스위스의 제네바에 아무런 관계없이 흩어져 살던 이들에게 관계의 끈들이 생기면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모두가 중요한 인물들이므로 간단히 소개합니다. 먼저 매튜와 마틸드 부부입니다. 이들에겐 모두 3명의 자녀가 있는데 이 중 한 명은 입양아입니다. 그럼에도 마틸드는 더 많은 아이를 갖고 싶어합니다. 곧 농장으로 이사가게 될 집이 허름하지만 방이 많다는 매튜의 이야기를 듣고, “빈 방과 빈 자궁은 비워두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남편인 매튜는 식자공이었으나 인쇄업의 불황으로 해고된 지 석달이나 되는 노동자입니다. 그러나 곧 마르셀의 농장 일꾼으로 취직하게 됩니다.
 
농장주인인 마르셀과 세투는 인근 마을에 유기농 제품들을 내다파는 농업인들입니다. 남편인 마르셀의 ‘진드기’론이 압권입니다. 진드기란 놈은 나무위로 올라가 18년동안이나 기다리다가 온혈동물에 떨어져 붙어 피를 다 빤 다음, 땅 속에 떨어져 알을 부화하고 다시 이 알은 나무로 올라가 이를 반복한다는 이야기를, 자신의 소신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반복합니다. 많은 뉘앙스와 풍부한 메타포를 지니고 있는 대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의 진드기가 진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편 마르코는 독특한 강의 스타일을 지닌 역사 교사입니다. 새로운 학교의 첫수업에서 그는 돼지 순대 등을 가방에서 꺼냅니다. 의아함과 호기심으로 가득찬 학생들에게 마르코는 순대를 잘라내 보이면서 역사의 조각과 시간에 대해 토론하게 됩니다. 예컨대 “시간의 주름이 어떻게 생겨났느냐. 농경사회에서는 시간을 순환으로 여겼지.....자본주의가 대세로 삼은 개념은...역사의 대세는 진보다. 진보의 의미는 투쟁의 승자가 되는 것 뿐아니라 타고난 상위자로 선택되는 과정이었어. 그 우월성으로 계절의 순환을 바꿔났지...” 참교육 선생님 같습니다. 동네 슈퍼에 들른 마르코는 계산원인 마리의 이상한 셈법에 호감을 느껴 애인 사이로 발전합니다. 마리는 프랑스에 살면서 스위스로 건너와 일을 하는 서비스 노동자입니다. 마리의 이상한 셈법은 특히 노인들이 계산대에 와서 상품값을 치르려할 때 원가격보다 싸게 계산해주는 것입니다(주인 몰래). 연금을 받는 고령자를 위한 자기 나름의 68정신이지요. 마리가 이렇게 도움을 주고 있는 노인 중에 샤를이라는 철도 기관사 출신 노동자가 있습니다.
 
어느 날 샤를은 자신의 집에 찾아온 마르코와 마리에게 기차여행과 기차운전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기차여행과 기차운전은 전혀 딴판이야. 철로 때문이지. 기차를 타보면 풍경이 스쳐지나가지. 영화처럼....그런데 기관석에서는 풍경이 지나가는 게 아냐. 들어가지. 풍경 속으로. 음악처럼... 곧장 앞만 보고 가지. 철도가 합쳐지는 곳으로”.... 그러나 이 말이 끝난 후 한참 있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합쳐지지가 않아....”라는 긴 여운의 말을 덧붙입니다. 이해하시겠죠?
 
이제 사티니와 마들렌을 소개합니다. 사티니는 기자였으나 지금은 신문사 인쇄실에서 교정 일을 보고 있습니다. 68 혁명 당시에는 뛰어난 활동가였고 맑시스트였습니다. 어느 날 한 술집에서 당시 친구(방데뵈르)를 만나게 됩니다. 은행투자담당관인 그는 사티니앞에서 자신의 성공을 거들먹거립니다. 근데 방데뵈르와 함께 온 여비서(마들렌)가 사티니에게 호감을 느껴 방데뵈르가 추진하고 있는 이 지역 부동산 투기 정보를 알려주게 되고, 사티니는 이 정보를 들고 인근 농장들을 찾아가 투기에 응하지 말것을 독려하게 됩니다. 땅을 팔게되면 결국 그 땅으로부터 쫓겨나게 될 것이라 말하면서... 마들렌 역시 68세대입니다만 그녀는 지금 탄트라(인도밀교)에 빠져 있습니다. 운동권의 한 갈래를 보는 듯 합니다.







이제 이런 저런 사연으로 이들이 모두 농장에 모이게 되었네요. 여기서 역사 선생인 마르코가 매튜에게 언제 학교에 들러 학생들에게 불황과 실업에 대해 특강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에 매튜는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가겠다’고 말합니다. 교실에 선 매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윤이란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에서 나오는데 인간 노동으로 산출되죠. (그러나 자본가는 여기서: 필자 주) 균형을 유지해야 해요. (왜냐하면: 필자 주) 위기를 조절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실업율. 그래야 독점이윤이 생기고...그러나 위기는 6천만이 죽는 막바지 상태로 끝날지도 몰라요(* 주: 여기서 6천만명은 일부 기득권층을 제외한 스위스 총인구를 말함). 여러분이 2000년에는 다 하나로 뭉치기를 바랍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삶에 지쳐 있으나 희망의 끈들은 놓치지 않고 있네요.
 
참고로 68혁명의 내용과 그 특성들을 살펴보려면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신좌파의 상상력'(이후)을 권합니다. 1987년에 출간(국내 번역 1999년)된 것이지만, 최근 우리사회의 촛불집회 성격의 한 면모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를 영어로 옮기면, Nowhere 쯤이 됩니다. 이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No where)일 수도 있고, ‘지금 여기에 있다’(Now here)가 되기도 합니다. 알랭 타네는 후자를 택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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