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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으로 가는 내나라 : 역사를 잃어버린 곳에서 하제를 그린다 (퇴촌 천진암터에서)_서동석 (36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1-12-09 조회 969
 
가슴으로 가보는 내 나라
 
역사를 잃어버린 곳에서 하제를 그린다 (퇴촌 천진암터에서)
 
서동석(통일문제연구소 회원)
 
도대체 날씨가 왜 이럴까요. 집을 나서려는데 날씨 탓인지 몸이 영 매시근하여 한참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고르지 않은 날 가운데 오늘이 그 중 괜찮은 날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집을 나섰습니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묵지근하여 꼭 심한 몸살을 앓는듯합니다. 따로 마음이 개운치 않은 까닭은 내가 찾아가려는 곳이 바로 천진암이기 때문입니다. 1993년 말쯤 천진암에 가봤으니 얼추 스무해가 되어 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에 대한 기억은 썩 좋지 않습니다. 이곳을 둘러싸고 역사를 잃은 집단의 서글픔과 역사를 꾸미려는 집단의 엄청난 횡포가 체증처럼 걸려서 그렇습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대표 유홍준/전 문화재청장)가 엮고 도서출판 돌베개가 1996년 펴낸 답사여행의 길잡이7?경기남부와 남한강편의 천진암 관련 부분을 보면, 이 절은 한때 300여 명의 스님이 수행하던 거찰이라고 합니다. 언제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큰 절이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는 유생들의 은거 도피처로 내주고 10여 명의 스님이 지키고 있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이곳에서 천주학을 공부했던 최창현 정약종 이승훈 등이 모두 참수 되는데 이때 그 10여 명의 스님도 참수되고 이곳은 폐사가 된듯하다고 적었습니다. 글쎄 어디서 이런 기록을 찾았는지 모르지만 무려 3백여 명의 스님이 있었다니... 그러면 경기도 북쪽의 양주 땅 회암사에 버금가는 큰 도량이 이곳, 앵자봉으로 막혀 길도 끊어진 경기도 남쪽 광주 땅에 있었단 말이 되네요. 아쉽게도 이 책에는 그 역사의 근거를 밝히지 않고 있어 더 찾아 볼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그렇다고 믿고, 그리 큰 도량이 절터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고 그 사라진 도량의 대웅전쯤 되는 자리에 한국천주교 창립선조로 추앙받는 다섯 성인의 묘를 썼습니다. 묘를 바라보며 왼쪽부터 정약종, 이승훈, 이벽, 권일신, 권철신을 모셨습니다.
한국천주교는 선교사의 인도 없이 순전히 자발적으로 경전 공부하고 스스로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세계 기독교사에서 유례가 없는 교단입니다. 이 교단의 발상지가 천진암이라고 주장한 이는 천주교 수원교구의 변기영신부입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집요하게 역사를 추적한 변신부의 공로로 이곳이 발상지로 확정되었고 마침내 교황청에서도 이를 인정하여 전 세계 천주교 신자의 성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천진암성당건립100년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1979년부터 이 일대의 산을 사들이기 시작하여 현재 30여만 평의 임야를 확보하였습니다. 2079년에 한국천주교창립 300주년 되는 해에 완공한다고 합니다. 그 성당의 규모는 월드컵축구장과 맞먹습니다. 좌우지간 이 성당건립 계획만 보아도 입이 쩍 벌어집니다.
이 성당건립을 추진하는 건립위원회에서 발간한 안내책자에는 천진암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천진암 법당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모셔진 다섯성인의 묘 _ 사진 서동석>

천진암은 본래 단군영정 천진을 모시고 산제사 당산제 산신제 등을 올리던 천진각 혹은 천진당이라는 작은 초가 당집이 오랜 세월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며 훗날 천진암이 되어 1779년을 전후하여 폐찰이 되었으니, 정약용선생의 글에 천진암은 다 허물어져 옛 모습이 하나도 없다하였고, 1797년 정사년 당시 홍영모의 남한지에서는, ‘천진암은 오래된 헌 절인데, 종이를 만드는 곳으로 쓰이다가 이제는 사옹원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사찰로서의 기능을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성 다블뤼 주교는 1850년 경, 젊은 선비들과 함께 이벽선조께서 강학을 하던 곳은, 쓰지 않는 폐찰이었다고 하였다.’
앞서 답사여행 책에 소개된 글과는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앞서 글대로라면 한국천주교는 태생부터 한국불교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건립위원회가 주장하는 글대로라면 폐찰에 모여 천주학을 공부하였으니 불교계에는 전혀 부담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법당 자리에 다섯 성인의 묘를 써도 어떠한 가책이 있을 리 없지요.
어디를 보아도 천진암에 대한 한국불교의 기록은 없습니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소문이 그렇다는 겁니다. 조선조말 천인으로 구박받던 승려이니 천주학쟁이를 도와주었다가 참수형을 당했다 하여도 기록은 없을 겁니다. 대신 그때 그곳에 모여 공부하던 이들은 양반의 자식들이니 뭐 뒤져보면 그럴 듯한 기록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지금도 우리 역사에 가장 존경받는 목민관 다산 정약용의 기록까지 있다니 이곳이 한국천주교 발상지라 하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요. 역사를 남기지 못한 그 과보가 어떠한지는 천진암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가 막힌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다산의 사상과 가르침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보급하는데 가장 권위 있는 다산연구소의 이사장 박석무씨는 1984정약용, 그의 시대와 사상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이어 1988년 봄 다산기행(한길사 간행)에 이 논문을 실어 거듭 한국천주교의 역사꾸미기를 나무란 적이 있습니다. 박 이사장의 글에 대해 한국천주교는 20년이 넘도록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꼭 거짓말이 들통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그저 나 모르쇠로 입 다물고 있는 형국이 연상됩니다.
박 이사장은 더욱 호되게 몰아칩니다. ‘억울하게 18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다산이 4년 뒤에 저술한 자신의 일대기인 자찬묘지명이나, 권철신묘지명, 정약전묘지명은 그 저술 목적이 그들의 일생의 업적을 밝히려는 뜻도 있지만,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이나 권철신 및 정약전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고, 정치적 당파싸움에 몰려 억울하게 탄압받고 죽음을 당했다는 내용을 밝히려는 글이라고 똑부러지게 말합니다. 그때 이들이 공부한 경학은 사서오경이지 성경이 아닌데도 천주교가 억지춘향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합니다. 다산은 권철신이 주도한 경학공부모임이 을사년(1785)의 천주교 사건 때문에 다시는 가질 수 없어 애석해 하였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덧붙입니다.
다시 분명히 말합니다. 다른 기록을 인용하거나, 새로 찾아낸 내용을 근거로 한다면 모르지만 다산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그곳이 천주교 발상지라고 한다면, 다산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 둡니다.’


 
<앵자봉이 보이는 산 중턱을 뭉텅 잘라내어 성당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부지.
성인묘는 철골로 세운 홍살문 오른쪽 뒤편 산너머에 있다. 사진_ 서동석>

나는 천진암에 앉아 우리 속에 파고드는 파시즘의 악령을 느낍니다
.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역사 꾸미기도 집단의 이름으로 덮어버립니다. 그리하여 시비곡절을 따지는 짓은 집단의 이름으로 규탄합니다. 집단의 강고한 결집을 위해 사실도 뒤집어 버립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국가, 민족, 안보, 애국의 광풍이 모든 가치를 덮어 버리고 있습니다. 불교 권익을 내세워 교단의 민주화, 자주화 요구는 분열로 몰아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나는 천진암을 성역화하는 데 헤살을 부리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성역화에 밀려 역사를 적당히 각색하고 조선시대 사옹원의 분원이던 관요지가 성당건립부지 토목사업으로 그냥 묻혔고 부지 사들인다고 1990년대 들어 쫓아내다시피 그곳을 떠나게 한 비구니스님 등의 문제를 천주교 신자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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