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노동>
몽땅 벗어버린 노동자, <풀 몬티>
이성철(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풀 몬티>는 영국의 피터 카타네오(Peter Cattaneo) 감독의 데뷔작품입니다.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Opal Dream>(2005년), <Lucky Break>(2001년) 등의 감독이기도 합니다(아참! <오펄 드림>은 2009년 뒤늦게 개봉되었습니다). <풀 몬티>는 여러 해에 걸쳐 수많은 상을 탄 작품이네요. 영화는 1997년에 만들어졌으나, 우리나라에는 1998년 4월에 개봉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997년 11월의 외환위기가 서민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기 시작한 때에 개봉한 영화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각별한 기억들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풀 몬티’(full monty)는 일종의 은어(slang)로 ‘몽땅 벗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영국 북부의 공업도시 세필드입니다. 인구는 약 30만 명이며, 이 중 9만 명은 철강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에 재개발의 열풍이 불면서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소위 ‘대처리즘’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차가운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시기인 셈이지요(참고로 켄 로치 감독의 <네비게이터> 역시 같은 배경의 철도노동자 영화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비롯한 친구들도 대부분 실직자이거나 임시직 등의 일에 내몰려 있습니다. 이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가즈(로버트 칼라일)는 실직과 이혼, 그리고 아들의 양육권 문제 등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개의 일과는 Job Center(한국의 고용정보센터 쯤에 해당합니다)를 방문하여 노닥거리기, 친구 및 아들과 함께 고철 훔치기 등입니다. 한편 곰 같은 몸집을 가진 데이브 역시 실직자인데, 자신의 무능으로 인한 자격지심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의심하기도 하고 가끔의 임시노동으로 불황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적한 길가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배관을 틀어막고 차 안에서 자살하려는 롬퍼를 구해낸 뒤 그와 친구가 됩니다. 롬퍼는 병든 노모를 모시면서 철강공장의 경비로 근무하는 여성스런(?) 노동자입니다. 나중 동성애자로 밝게(?) 드러납니다.
한편 제랄드는 철강공장의 반장이었으나, 그 역시 6개월 전부터 실직상태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제랄드가 실직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침마다 제랄드는 옷을 단정하게 입고 출근하는 양 집을 나섰기 때문입니다. 가즈는 이런 제랄드를 두고 “돈도 없으면서 무슨 체면이냐”면서 면박을 주기도 하고, 마침 근사한 직업이 생길 것 같아 면접에 나선 제랄드를 곤궁에 빠트려 취업기회를 놓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한편 유일한 흑인인 호스는 여러 가지 춤에 능통합니다. 끝으로 가이는 ‘거시기’(?)가 정말 거시기하게 큰 친구입니다. 나중 롬퍼와 애정(?)을 나누게 됩니다.


이쯤 되면 이들의 후줄근한 모습들이 충분히 짐작되시죠? 이들은 자신들의 궁핍한 생활을 타개하기 위해 이미 마을에서 여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남성 스트리퍼에 도전해보려고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직업적인 스트리퍼가 아닌 이들이 댄스 팀을 꾸린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겹기만 합니다. 우여와 곡절 끝에 이들은 제랄드를 춤 선생으로 모시고 2주간의 맹훈에 돌입합니다. 춤 연구를 위해 비디오 가게에서 <플래시 댄스>를 훔쳐오기도 하고(이 영화의 여주인공 역시 철강공장의 용접공이죠?), 롬퍼의 경비실 공터에서 ‘섹시한 당신’이라는 곡으로 어설픈 춤도 춰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공연 장소도 계약하게 됩니다. 팀의 이름은 'Hot Metal'로, 포스트의 광고 카피는 “We dare to bare"(감히 몽땅 벗겠습니다)로 잡고, 본격적인 홍보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과다노출로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합니다. 이 일은 오히려 온 동네방네에 큰 소문이 돌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이 공연에 큰 기대를 갖게 만들어 버립니다. 여하튼 이들은 도나 섬머의 ‘Hot Stuff'을 비롯해 다수의 공연곡을 섭렵한 후, 공연 당일을 맞게 됩니다. 이 날이 오기까지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공연을 하지 않으려는 팀원도 생기는 등 자칫 준비한 모든 일이 허사에 그칠 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일의 입장권은 초과 판매가 되어버리고(200장 판매=2,000파운드)…
이제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 공연은 단 한번만이야…” 마지막 옷을 벗어던져 버리는(풀 몬티) 장면으로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지만, 이들에게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내도 좋을 새로운 내일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보다 전문적인 'Hot Metal'로 나섰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실직과 잠깐 동안의 취업을 반복하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여러 가지를 생각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Roger Bromley(2000: 63)는 영화에서 나타나는 노동자들의 이러한 문제 해법을 두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네요. 이 평가는 마크 허먼 감독의 <브래스트 오프>에도 공히 적용됩니다. 즉 “…sentimental magical resolution in fantacy…defeated workforce, victorious band…the workers, defeated, will never be united; only in a brass band!"가 그것입니다. 현실의 어려운 문제를 지나치게 마술적으로 풀어버린다거나, 노동자들의 단결이 고작 브라스 밴드를 통해서 뿐이라니! 등의 혹평이 그것이지요.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현실에는 일리(一理)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구리(九理)도 어딘가에 있지 않겠습니까? 원칙은 말하기 쉽지만 구리를 곁들이면서 도모해야 할 일도 많지 않을까요? 건강한 노동자문화의 형성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고문헌:
Bromley, Roger(2000), "The Theme that dare not speak it's Name: Class and Recent British Film", in Sally Munt(ed.), 「Cultural Studies and the Working Class: Subject to Change」, London: Cassell, pp. 51-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