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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내를 기록하다
..... 김종배추모사업회와 노동자역사 한내_정경원
첨부파일 -- 작성일 2021-07-14 조회 419
 

김종배 추모사업회와 노동자역사 한내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사무처장)

 

2007413일 김종배 추모사업회는 계룡산 인근에서 집행위원, 운영위원 합동수련회를 열어 노동운동역사자료실 복원을 결정했다. 비가 제법 내리는 날이었다. 가벼운 산행 후 막걸리 한 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김종배 동지의 뜻을 이어가고 노동운동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역사자료실 복원이 쉬운 일은 아닌데 할 수 있을지 진지한 논의가 이어졌다. 사업회 최종진 회장은 하지 뭐! 합시다!’라며 간결하게 결의를 밝혔고 모두 흔쾌히 동의했다.

 

김종배 사업회에 열사정신 계승 사업을 공동으로 하자고 제안한 것은 이용석사업회였다. 200610월 이용석열사의 3주기를 맞은 이용석노동열사정신계승사업회는 추모사업을 넘어 정신계승사업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으며 중장기적인 고유사업을 기획했다고 한다. 해를 넘겨 316일 이용석사업회 운영위는 열사정신 계승, 미래 노동운동의 주체 형성, 노동 역사 관련 사업을 고유사업으로 고민하면서 노동운동역사자료실 운영 경험이 있고 그 복원을 고민하고 있는 김종배사업회와 그 외 추모사업회에 제안하여 공동 사업을 진행하자고 하였다. 413일에는 김종배사업회 수련회, 14일에는 이용석사업회 집행위 수련회가 열렸고 57일 양 사업회 주체로 사업추진단을 구성했다. 신길수추모사업회에도 제안했고 6월에는 대전에서 세 조직의 관련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기도 했다. 이상훈, 이승원의 의지와 추진력이 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대전 모임에서 원칙으로 합의한 것은 추진단위를 개인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생겼다. 6월말 이용석사업회는 사업 주체를 개인이 아닌 사업회로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88일 김종배사업회 집행위는 공동사업이 불가능하다 판단하고 애초 3대 목적 사업을 포함하되, 노동운동역사자료실을 중심으로 사업안을 조정하여 본격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그리고 김종배사업회 회원이 주축이 되지만, 사업회 중심이 아닌 개인 추진 주체 중심으로 책임감 있게 추진하기로 하였다.

 

사업회는 박재범, 이승원, 이황미, 정경원, 정용재를 기획단으로 꾸렸다. 이후 이상훈, 최윤정 등이 합류했다. 825일 김종배사업회 회원의 밤 행사를 열어 노동운동역사자료실 복원 결의를 모았다. 초기 준비를 위해 사업회 재정 1천만 원을 쓰기로 했다. 사업회는 10주기 추모식을 마지막으로 공식 해산하고 추모 모임으로 유지하며 회원은 의견을 물어 새로운 조직의 회원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김종배 동지를 기리는 길은 이제 노동자역사 주체 형성 사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노동자역사 한내는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를 역사의 주체로 하여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역사 속에서 박제로 변해가는 열사정신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과 어떻게 제대로 된 역사를 공유할 것인가라는 목표와 고민으로시작된 것이다.

 

 

 한내 임시 사무실

 

기획단은 준비 사업을 위한 임시공간을 마련했다. 영등포 민주노총 옆 건물 전해투 사무실 옆이었다. 금속연맹에 상근하는 동지들의 도움으로 앵글 선반을 짜 넣고 문서 자료를 옮겨 왔다. 재정 문제로 노동운동역사자료실 공간을 폐쇄할 때 보관하고 있던 문서 자료를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으로 옮겨놓았다. 노동운동역사자료실과 민주자료관은 위탁 문서를 정리된 상태 그대로 보관하며 목록, 스캔하고 위탁자가 요청할 시 기록물 원본과 전산 파일을 반환하기로 협약했었다. 임시 사무실은 이 자료들로 꽉 찼다.

사업계획과 모금 계획을 꼼꼼히 짰다. 자료를 보관하기 위해서는 일정 평수의 사무실이 필요했고 자료 보관용 모빌랙과 서가, 사업을 위한 장비들도 필요했다. 월 운영비와 인건비 마련 계획도 세웠다. 발기인 규모는 100명 정도, 목표금액은 15천만 원으로 잡았다.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가능할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 우리가 하고자 하는 사업을 설명하면서부터 그 걱정이 사라졌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30여 명 모였고 이들이 또 두세 명씩을 발기인으로 조직했다.

노동자, 해고자, 농민, 연구자, 활동가, 교수, 문화활동가, 노동조합 간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150여 명 모여 준비자금을 인당 100만 원씩 만들어 내고, 12219시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발기인대회를 열어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격려 보다는 우려가 더 많았다. 자료를 챙긴다는 것, 그것들을 가공하고 역사적 가치를 불어 넣는 것이 시간과 공은 많이 들어가지만 성과가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한내는 무모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을 위해 첫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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