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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우리들의 배로_송시우 (59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3-11-14 조회 1733
 
우리들은 우리들의 배로’(판제항로(阪濟航路)의 자주화(自主化) 운동(運動))
 
노동자역사한내제주위원회 부위원장 송 시 우
 
일제 통치하에 제주도의 자급자족적인 자연경제가 붕괴되자 생계유지를 위한 현금수입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제주도 연안(沿岸)에서 나잠(裸潛)어업에 종사하던 해녀들이 한국본토 및 해외에까지 출가(出稼)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제1위의 공업지대인 대판(大阪)이 제주도민의 가장 중요한 노동시장으로 등장하였다. 대판이 제주도민의 중요한 노동시장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23년에 니기기선부(尼崎汽船部)가 제주도와 대판을 직결하는 정기항로에 군대환(君代丸)’을 취항시킨 때부터라 하겠다(阪濟航路).
물론 한국인이 일본의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건너오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1914~18) 시기였으나 판제 정기항로가 개설될 때까지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집중된 지역은 한국과 가깝고 탄광이 집중되어 있는 복강현(福岡縣)이었으며 이주민의 대다수가 경상도 출신이었다. 그러나 판제항로(阪濟航路)가 개설된 후에 재일 한국인의 지역적 분포에서 대판(大阪)이 제1위를 차지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동이 없다. 10239, 재판(在阪) 한국인 총수 21,984명 중 전라남도 출신자가 51.5%11,352명인데, 그 중에 7,500명쯤이 제주도 출신이라 한다. 오늘 현재도 대판부(大阪府)내의 한국인 19만 명 중에 생야구(生野區)(이꾸노구)를 중심으로 6만 명 쯤이 제주도민이다. 1934년에 제주도 출신자의 직업조사에 의하면 남자 29,362, 여자 20,688, 50,050명 중에서 66% 이상이 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 되어 있다. 이처럼 재일한국인의 지역별 분포에서 대판(大阪)이 제1위를 차지하게 된 이유가 판제항로(阪濟航路)이다. 따라서 제주도는 대판(大阪)공업지대의 하청적(下請的)인 영세(零細)공업에 대한 중요한 노동력 공급원천이 되었다.
이와 같은 노동력의 공급루트로서 니기기선부(尼岐汽船部)가 등장했는데 여기에 조선우선(朝鮮郵船)(경성환(京城丸)), 녹아도우선(鹿兒島郵船)(순길환(順吉丸)) 등이 등장하여 치열한 화객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래도 1250전이란 비싼 선임(船賃)은 제주도민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19284월에 조선우선(朝鮮郵船)과 니기기선(尼岐汽船)에 선임인하를 요구하자 거절당했다. 재판(在阪)제주도민들은 대회를 열고 일본자본에 대항하여 부르주아의 배를 타지 말자’, ‘우리는 우리배로의 슬로건을 내걸어 자주운항운동(自主運航運動)을 시작했다. 19304월에 재판제주인과 제주도의 4,500명의 조합원으로 결성된 것이 동아통항조합(東亞通航組合)이다.
동아통항조합은 단순한 운수업의 경영단체가 아니라 일본자본에 대한 반독점 운동체라 할 수 있으며, 문창래(文昌來), 김달준(金達俊) 등이 중심이 되어 1931111일에 교룡환(蛟龍丸)을 취항시켰으며, 이듬해 121일부터 복목환(伏木丸)으로 바꾸었다.
당시 일본기선회사의 운임 1250전에 대하여 동아통항조합은 650전으로 대항했는데 일본선박회사는 선임을 3원으로 절하하여 압력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경찰은 대판과 제주도에서 음과 영으로 조합활동에 대하여 크게 탄압했다.
당시 동아일보도 <재판동포(在阪同胞)의 장도(壯圖)>(1930114일자)라 크게 보도했고, 대판과 제주도에서의 광범한 지원운동도 전개되었다. 그러나 경찰과 일본선박회사에 의한 압력 외에도 좌초에 의한 수리비 등으로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다.
1933년에 접어들면서 조합간부 현길홍(玄吉弘), 강호경(康鎬京), 김달준(金達俊) 등은 통합조합을 운동단체로부터 경영단체로 전환시켜 부채정리와 운항의 계속을 도모했으나, 반제동맹대판지방위원회에 소속된 조합원들이 이를 반대하여 19341월에 조합을 해산했다. 이들은 복목환(伏木丸)무산계급의 배라 했으며, 통항조합을 사회주의 운동의 경로로 여겼던 것이다.


 
왼쪽=<중앙일보 > 1931128일 대판으로 가던 복목환이 좌초, 승객 승조원은 무사 상륙, 7일 제주도 부근에서...(국사편찬위 한국근현대신문자료)
오른쪽=제주인들의 동아통합조합 설립을 1면 톱기사인 사설로 다룬 동아일보 1930114일자(제민일보 2006. 8. 3.)
 
다음은 1931113일 동아통합조합이 1,300톤급의 영국제 강철선이며 정원이 800명인 복목환(伏木丸)을 구입하고, 첫 항해를 준비하면서 산포(散布)한 유인물인데 주목할 만한 대목이 많다.
 
전도항노동자 제군에게 알림
친애하는 도항노동자 형제 제군! 우리들은 그리운 부모형제, 친우와 이별하고, 고향에서 생활의 근거를 잃어 일본 노동자 시장에 노동하러 오게 되었다. 이를 좋은 기회로 삼아 일본 선박업 자본재벌 등은 새로운 착취의 대상이 나타났다고 좋아하며, 제주도를 중심으로 부산, 목포, 완도까지 착취의 그물을 펼치고 있다.
보라! 놈들은 과거에 우리들을 얼마나 착취하고 또한 얼마나 학대하였는가. 터무니없이 비싼 배삯과 수하물 운임, 인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인격 무시와 야수적 대우에 대하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직접 체험한 바요, 전 제주도민이 모두 공분하는 바다.
이에 제주도민은 궐기하여 무자비한 착취와 야수적 대우를 없애기 위해 우리들은 우리들의 배로라는 슬로간을 걸고 탄생시킨 것이 바로 동아통항조합이다. 이 조합은 1년 전인 작년 4월에 창립하고 오늘까지 피어린 투쟁을 계속해 왔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놀랍게도 동아통항조합이 출현할 때까지는 제주 대판간의 배삯이 125십전이었던 것을 단 3원으로 내려서 동아통항조합을 쓰러뜨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실비운임 65십전으로 전 도항노동자들의 지지하에 교룡환 용선기간의 1기 사업을 마무리하고, 금년 4월의 제2회 대회에서는 제2기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를 위하여 배를 사들여야만 한다. 조직은 더욱 강화되고 전선(戰線)도 광범하게 확대되었다. 동아통합조합은 전 동아(東亞)를 망라한 전도항노동자, 농민의 조합이며, 복목환은 전무산계급의 배가 아닐 수 없다. 1931. 11. 5.
 
그리고 다음은 동아통항조합이 1932527,8일 이틀간 대판의 천왕사 공회당에서 제3회 정기대회에 제출된 동아통합조합의 지위와 임무인데 참고 하길 바란다.
 
지위
우리는 현재의 도항 사업만을 보고 동아통항조합을 이용조합, 협동조합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 동아통항조합은 총체적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적으로 노동자의 경제적 이익을 옹호하고, 이를 통하여 도항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하나의 독립된 대중적 투쟁 조직이어야 한다.
 
임무
1. 선박업자들의 독점적 배삯을 타파하고 부당한 대우에서 도항자를 옹호할 것.
2. 완전한 도항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 어떠한 투쟁이라도 벌일 것.
3. 이러한 투쟁을 위해 일본과 조선의 노동자, 농민의 제휴를 촉진시킬 것.
4. 반제국주의 투쟁은 물론 계급투쟁을 강화할 것.
 
그리고 동아통항조합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첫째, 항운 사업의 경영 강화, 둘째, 선전, 조직의 확대와 강화에 노력할 것 등을 당면 활동 방침으로 내걸었었다.
 
<참고한 책> 제주항일독립운동사. 제주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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