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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달의 역사
..... 1980년 5월 계엄과 롯데제과노동자 투쟁_정경원(100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7-05-16 조회 1733
 

"롯데제과 종업원 2천여 명은 16일 하오 5시께부터 공장식당에 모여 봉급20% 인상과 보너스 연4%지급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러였다. 종업원들은 14일 노사협의회를 통해 20%의 임금인상을 요구했으나 회사측이 이날 일방적으로 10%로 결정, 통고해왔다고 말하고 봉급20%이상과 보너스 4% 지급이 관철될 때까지 농성을 벌이겠다고 밝혔다."(경향신문80.5.17) 19805월의 봄.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투쟁이 정리되어갔지만 계엄령이 확대된 17일에도 롯데제과 노동자들은 투쟁을 전개하였다.

 

 

1980년 5월 계엄과 롯데제과노동자 투쟁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광고의 첫 모델은 18세 여성이었다. 롯데그룹이 미스 롯데 선발대회를 열어 모델을 선발했는데 1977년의 제1회 미스 롯데는 아역 연예인 출신인 만 18세의 서미경이었다.

그 시기 롯데제과에서 껌을 만드는 여성 노동자들도 그 나이 또래였다. 1980년 당시 롯데, 해태제과 등 식품업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12시간 맞교대의 장시간 노동이었다.

 

“12시간 과자를 싸고 나면 손가락에 피가 맺힙니다. 12시간 의자에 앉아 일하는 노동자는 거의 모두 변비, 신경통으로 고생들을 합니다. 저울질, 인두질을 하고 나면 어깨를 들 수 없습니다. 12시간 내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부서에서는 동상은 물론 처녀인 조합원들이 냉병까지 앓게 됩니다. 30도 이상의 더운 여름에 150도의 사탕을 80도까지 손으로 식히는 일을 12시간씩 하고서도 살아있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빨래하고 밥해 먹고 남은 시간은 잠자기가 바쁩니다. 듣고 보는 것이 없어지니 저희들은 바보스러워지고 회사로부터의 구박은 더욱 심해집니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을 뚫고 1979년 해태제과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인 이후 서울시 직권조정으로 하루 12시간 노동이 8시간으로 줄어들었다. 1980년 롯데제과 일급제 사원의 월평균 임금은 108,969원이었다.

계장 출신 지부장이 노동조합을 이끈 지 14년 동안 롯데제과 노동자들 중에는 노동조합이 있는 줄도 모르는 이가 많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잔인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에 서서히 싹튼 저항의식에 영등포산업선교회 활동을 하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해태제과 노동자 투쟁 영향 등으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대의원들의 성향이 바뀌기 시작했고 마침내 1980510, 민주적 집행부가 탄생되었다.

512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자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의 불만이 집단화되기 시작해 200여 명이 임금 30% 재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봄 임금인상에서 직권조정에 따라 하후상박 원칙이 적용되어 남성노동자의 경우 5~6%, 여성노동자의 경우 8~9% 임금이 올라 평균임금이 높았던 남성노동자들의 인상폭이 적었던 게 불만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새 집행부는 대의원대회를 개최해 임금 재인상 20%, 상여금400%지급을 요구하며 14일까지 관철되지 않으면 전면파업에 돌입할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경향신문 1980.5.17자

 

14일 오후2, 정한 시한을 넘기자 즉각 27백여 명의 조합원들이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이 파업농성은 516일까지 계속되어 정문 점거로 발전했고, 영등포공장은 물론이고 시흥공장 노동자들까지 참여했다. 작업은 중단되었고, 회사는 침묵했다.

롯데의 노동자들은 17일 일요일은 쉬고 18일 다시 모일 것을 결의하였다. 누구도 51724시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예상하지 못했다. 회사 입장은 더욱 강경해졌다.

518, 비상계엄과 생존권 요구 사이의 갈등에 집행부는 태업 투쟁을 선택했으나 사실상 작업은 전면 중단 효과를 냈다. 그렇게 1주일 이상 투쟁이 지속되자 회사는 입장을 바꿔 재협상에 응했다. 노조는 상여금 400%, 임금12~15%의 재인상을 쟁취했다. 이를 8시간 노동제로 환산하면 대략 78%의 대폭적인 임금인상이었다.

투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5.17이라는 국가 비상사태 하에서 농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계엄당국에 의해 롯데제과노조 집행부는 정화대상으로 취급되었다. 62, 부지부장과 부녀부장이 영등포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지부장도 20일간의 구류처분 후 집요한 정화조치에 의해 회사를 강제 사직해야 했다. 삼청교육대를 끌려간 조합원도 있었고 여성조합원들은 순화교육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모두가 숨죽이고 있던 5.17계엄 확대 후까지 이어진 노동자들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절실한 투쟁은 역사적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참고: 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2003), [전노협백서 1], 책동무; 이영재(2016), [공장과 신화], 학민사

 
 
롯데_800517경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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