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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뉴스레터 창간호] 법정에서 만난 노동자
내가 만난 노동자 -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 이랜드그룹 노동자
글 : 민주노총 법률원 여연심 변호사 / 삽화 : 안태윤 회원
며칠전 구속된 뉴코아노동조합 조합원 공판이 있었습니다. 재판장이 최후진술 기회를 주자 그는 일어나서 다소 긴장한 듯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우리는 비정규직 아주머니들에게 여러분이 우리 손을 놓지 않는 한 노동조합이 여러분의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저는 그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부끄럽게도 그순간 눈시울이 붉어져 버렸습니다만 다행히 재판을 보러 와 있던 다른 조합원들도 눈물을 흘렸기에 부끄러움이 덜했습니다.
제가 병아리 변호사로 조심스럽게 일하기 시작하자마자 언론은 이랜드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도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상 초유의 할인마트 점거농성 사태와 관련자 전원 연행, 2차 점거농성 진행, 구속자 다량 발생, 100억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수십 명에 대한 해고와 징계 등 그 과정을 말하려면 3박 4일로도 부족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화려하게(?) 신문지상을 달구었던 이들의 투쟁 뒤에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이에게 뽀뽀를 하고, 정신없이 매장에서 일한 후 퇴근하면서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들은 투사로 돌변하여 비정규직 철폐의 선봉에 서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1차 매장 점거농성 중에 핵심 간부들에 대한 영장이 줄줄이 발부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조합원들을 놔두고 구속될 수 없다는 한 조합원의 수배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민주노총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시작한 조합원은 운동을 하지 못해 얼굴빛은 점점 나빠져 갔고 임신중이었던 부인은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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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수배생활은 1년 넘게 계속되었습니다. 예쁜 딸아이가 태어나던 날 참지 못하고 몰래 빠져나간 그는 아내의 손을 잡아주고 작은 아이를 품에 안아 본 뒤 다시 들어왔습니다. 매일매일 좁은 사무실에서 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는 그를 보면서 저는 여러번 자진출석을 권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리에서 싸우고 있던 조합원들이 들으면 화 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사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변호사님에게는 죄송한데요...제가 맡고 있는 역할이라는 게 있는데...우리 조합원들은 길거리만 헤매고 다니는데 저혼자 편하게 건물안에 있는 것만 해도 미안해요. 구치소 있으면 몸은 편하겠지만 차마 들어갈 수가 없어요” 라고만 말했습니다. 한번은 분신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된다는 말까지 하여 저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그는 과장급 정규직으로 지난달에 구속되어 재판과정에서 “우리는 비정규직 아주머니들에게 여러분이 우리손을 놓지 않는 한 노동조합이 여러분의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저는 그 손을 놓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작년 말에 해고된 상태입니다.
비정규직법 시행과 맞물려 월급 7~80만원을 받고 일하던 이랜드 그룹 계산원 아주머니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활고에 못 이긴 조합원들이 현업에 복귀하거나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나기도 하였고 엄청난 벌금액수에 놀란 노동조합은 더 이상 소위 불법적 방식의 파업을 진행하기 힘겨워하고 있지만 그들의 투쟁은 아직도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수천 명이 ‘이랜드 불매’를 외치며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던 작년과 달리 지금 그들의 행렬은 초라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초라한 모습을 한 그들의 가슴에는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겠다는 단단하게 빛나는 의지가 보이기에 그들은 결코 초라해 보이지 않습니다. 설령 그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에 못이겨 투쟁을 포기하더라도 함께 사는 우리들이 그들의 꼭 잡은 손을 기억하는 한 비정규직 투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