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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 자기역사 쓰기 : 사회보험노조 이충배 동지
첨부파일 -- 작성일 2008-08-05 조회 1070
 

[창간준비 제5호] 노동자 자기역사 쓰기
패배의 기억 속에서 승리의 요소를 ...

글 : 이충배 (한내 회원, 사회보험노조 조합원) / 사진 출처 : 민중소리, 당당뉴스 

원고 청탁을 받고 기한을 몇 번이나 넘기도록 글을 쓰지 못했다. 도저히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두어 쪽 분량의 글조차 쓸 여유가 없는 바쁜 생활이었으면 오히려 좋겠으나, 실은 생활이 바쁜 것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글을 쓸 자신이 없다.
세일즈맨이 많은 판매실적을 올렸다면, 그것은 그가 그 방면으로 대단히 적극적이고 유능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자신이 팔고 있는 상품에 자신감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나의 실천에 자신감을 갖고 있을 때에 나는 비로소 다른 동지들에게 나의 실천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완곡한 거절을 했음에도 계속된 원고 요구에 마지못해 응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열의가 많이 떨어진 나의 실천에 대한 반성과 아직 열의를 가지고 실천하는 동지들에 대한 부담감이 원고 청탁을 끝내 거절할 용기마저 뺏어간듯 하다.
나는 건강보험공단(의료보험) 해고자이다. 직장생활 20년에 2번, 도합 15년 가까운 해고기간. 푸르른 20대를 채 벗어나지 못했던 입사 직후 노조가 설립되어 곧바로 파업에 들어갔고, 노조는 이후 10여 년 이상을 해마다 파업투쟁을 벌였다. 나는 그 와중에 입사 2년만에 타사업장 쟁의, 정치적 목적의 파업 선동 등의 이유로 해고되었다.
89년, 70일 파업 이후 두 달 임금을 받지 못한 다수의 조합원들이 카드 빚쟁이로 전락했다. 91년, 한꺼번에 많은 동지들이 해고되면서, 노조는 해고자 생계를 보전해주지 못했다. 가정이 있던 많은 해고 동지들이 투쟁현장에서 생계현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나마 버틸 수 있는 동지들은 동지들과 맞보증선 빚을 갚지 못해 동지들에게 연대책임의 피해가 돌아갈까봐 공사판 막노동과 해고자 복직투쟁을 번갈아가며 투쟁현장을 지키고자 했다. 그 와중에서도 노조는 지독하게도 파업투쟁을 10여 년 동안 해마다 빠지지 않고 이어갔다.
89년초 8천 6백여 명이던 조합원 수는 적지 않은 조합비 부담으로 92년까지 2천명 아래로 줄어 들었고, 70명의 해고와 1천여 명의 부당징계, 수천 건의 민형사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93년부터 노조는 변두리 지하실로 사무실을 옮기고 그나마 남아있던 조합원들의 조합비와 후원금, 명절 수익사업 등으로 간신히 사업비를 마련하는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되었다.
단위 사업장별 파업은 그 당시로보면 철저히 깨지는 투쟁일 뿐이었다. 한번 파업이 마무리되면 노조는 공권력과 사측의 보복조처인 형사처벌, 무노동무임금, 부당징계 그리고 노조 내부의 평가와 책임소재 논란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다. 그 상황을 수습하여 다음해 파업을 다시 한번 빚어내려면, 그만큼 노조 활동가들의 동분서주하는 조직활동이 요구된다. 승용차도 거의 없던 시절, 투쟁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 대중교통을 수시로 타고 다니느라 지도책을 암기할 만큼 전국의 지부 현장을 뛰어다니고, 동지들을 만나며 투쟁을 선동하던 그 젊은 열정들, 그 와중에서도 동지들과 학습서클을 조직하여 부족한 이론들을 배우려고 했던 그 정열들이 지금 돌아보면 노조의 싱싱한 동력이었다.

사회보험노조는 해마다 벌어졌던 이러한 전국적인 공동투쟁 경험들을 모아 지난 94년, 전국 200여 의료보험법인 사업장, 15개의 시도 지역별 노조를 하나로 묶어 단일노조를 설립했으며, 단일노조의 완강한 투쟁과 96년 공노대 공동투쟁, 공공 6사 공동파업투쟁을 통해 해고자 17명의 원직복직을 쟁취한 이후, 97년, 98년 파업투쟁을 통해 해고자 전원을 원직에 복직시키는 개가를 이루어냈고, 모범 단협안에 필적할 만큼의 강력한 단체협약을 쟁취하며 조합원의 숫자도 한해에 1천명 이상씩 늘어나며 노조의 사기는 하늘까지 치닫기도 했다.
노조는 지역별로는 전노협 소속이었으며, 업종별로는 업종회의에 참여했다. 때문에 서노협이나 전노협 회의에도, 업종회의에도 참여하기도 했고, 공노대 공동투쟁 집행위원과 민주노총 설립을 전후하여 중앙위원회와 산별대표자회의(당시 노조가 연맹없이 민주노총 직가입)에 참여하기도 했다. 중앙위원회와 산별대표자회의를 앞두고 나름으론 민주노총의 힘있는 투쟁결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뜻이 맞는 대표 동지들과 사전에 토론을 열기도 했다.
민주노총 설립 이후에는 해마다 춘투 때면 정국을 온통 뒤흔들었던 대사업장 노조들의 위력적인 투쟁들이 점차 잦아들면서 노조의 공식기구만이 아닌, 현장 차원의 자체적 조직화와 실천들이 필요하다는 인식들이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널리 공감되면서부터, 각 사업장 현장조직들이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조직화되면서 노조의 공식 집행부 활동만이 아닌 현장조직운동이 또하나의 실천의 갈래로 형성되었다. 사회보험노조 역시 1년여 간의 현장조직 준비위 활동을 거쳐 지난 99년부터 현장조직들이 정식 출범하여 활동하고 있다.
현장조직운동 역시 많은 공과를 평가할 수 있겠으나, 노조 규모가 차츰 커지고 정치조직화되면서 소홀해지기 쉬운 현장 현안에 맞서, 집행부에 소속되지 않은 현장 동지들의 뜻과 실천을 모아서 사측에 당당하게 대응하고 투쟁하는 현장 활동가로 조직하는 활동은, 대단위 단결과 연대의 당위를 내세우며 점차 거대노조로 통합되어가는 산별노조운동의 단점을 보강할 아직도 가장 유력한 활동의 갈래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란 대체로 자신이 기대한 만큼 현실이 풀려나가지 못할 때 발생하며, 기대와 현실의 차이가 스트레스의 크기로 나타난다. 마음 속으론 노동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이명박이나 제 입지와 이윤만을 챙기며 노동자를 기계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사장을 때려잡고 싶은데 현실에선 그게 어려운 것도 스트레스일 것이며, 적어도 지금 이런 상태라면 이런 투쟁은 벌이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만 현실에선 전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닐 때에도 스트레스는 발생할 것이다.
최근 상황은 노동운동의 침체기 또는 정체기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비정규직 동지들,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의 고통과 장기투쟁의 절규와 비명이 바로 곁에서 들려온다. 정규직 동지들 역시 마음 편히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노사협조의 환각에 빠져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노조에 대한 기대마저 포기할 상황에서, 정규직을 때려치우면 곧바로 생계파탄을 오가는 비정규직 신분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불안한 생활, 끝없이 강요되는 실적과 경쟁과 장시간 잔업, 노동강도 완화와 노동시간 단축, 고용보장과 생활임금 투쟁마저 그저 ‘배부른 투정’ 정도로 치부되는 열악한 현실들이 위력적이었던 그들의 투쟁을 묶어놓고 있는 탓일 것이다.

노동자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장기화는 그대로 무기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대와 현실의 격차가 스트레스라면, 현실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워 보인다면, 그나마 스트레스로 죽는 일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기대를 낮춰야 할 것이다. 해봐야 안되니 기대도 하지 말자는 그러한 포기와 체념이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란 과거의 추억이나 학창시절 앨범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투쟁 속에서 패배의 요소들을 찾아내고, 패배의 기억 속에서 승리의 요소를 발견하여 오늘의 길을 찾아내고 더 희망찬 내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가 지난 87년 대투쟁을 통해 역사의 당당하고 위력적인 주체세력으로 등장한 이후, 오늘의 침체상황을 가져오게한 요소들은 무엇이었는지, 또 처절하게 깨지고 구속되고 해고로 이어졌던 패배한 파업투쟁들 속에서 우리가 지키려고 했던 가치는 무엇이며, 무엇이 아직까지 우리를 투쟁하게 하는 근간이 되고 있는지 다시한번 돌아보고, 그때 그 정열을 다시 찾아내 젊은 후배들에게 오롯이 그 맥을 잇게 할 역사, 그 역사를 자신감있게 이야기하기 위하여 오늘의 무기력을 떨칠 충실한 실천을 다시 다짐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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