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결성 20주년과 교육노동자의 삶
원영만(전교조강원지부 교육·조직국장)
초심을 논하지 마라
개혁언론이라고 하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물론, 심지어 수구보수언론들까지 20주년을 맞이한 전교조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전교조가 걸어온 20년 세월을 자신들의 임의적인 잣대로 재단하여 전교조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충고(?)하고 있다. 저들의 논조는 ‘초심으로 돌아가라’ ‘정치투쟁을 하지마라’ ‘교원평가를 받아들여라’ ‘국민들과 함께하는 교육, 수요자를 중심에 둔 교육’이 주된 내용이었다. 한 때 전교조에 몸담았던 사람들이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정치를 했던 소위 민주화 세력들도 언론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현(現) 전교조 위원장도 초심으로 돌아가 제 2의 참교육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저들의 말대로 초심으로 돌아가서 소위 국민들의 다수가 원하는 교원평가를 받아들이고 정치투쟁을 하지 않고 수요자 중심 교육을 열심히 추진한다면 우리교육이 나아지겠는가.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을 짓누르는 고통, 학교서열화에 따른 무한 입시경쟁에서 해방될 수 있겠는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며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행복한 교육이 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는 답이 아니다. 20년 전 전교조를 결성했을 때 가졌던 그 마음은 그 당시 시대상황이 만들어 준 의식, 즉 반독재 민주화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의식은 현실에 머물지 않고 변화되기 마련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하물며 20년 세월이 흘렀다. 당시 만들어진 전교조의 참교육 이념인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은 부분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는 있겠으나 오늘날의 시대상황에 적용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참교육 이념은 야만의 세상,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여 억압과 착취 없는 자유로운 인간 세상에 대한 전망을 담아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초심으로 돌아가라니! 전교조의 의식을 20년 전의 반독재 민주화의 틀에 묶어놓겠다는 발상 아닌가.
교육노동자의 길을 가다

사립학교법개정투쟁(전교조10대위원장때 왼쪽 첫째)
전교조결성 20주년을 맞으며 내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았다. 1954년 놋그릇과 금속관련 물품을 만드는 노동자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쳤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가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긴급조치를 통해 독재정치를 하는 시기에 대학에 들어갔으며. 야학을 하고 학내시위를 주도하면서, 그리고 판매금지된 책(읽을 만한 책은 대부분 판매금지)을 보면서 세계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80년에 교사가 되었고, 광주민중항쟁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분출하고 이런 과정에서 교육운동을 고민하였다. 85년 강원도에 처음 춘천YMCA교사협의회(YMCA라는 공개단체의 우산을 쓰고)를 결성하면서 교육운동을 시작하여 86년 교육민주화선언, 87년 강원교사협의회, 그리고 89년 5월 28일 전교조 결성을 하면서 마침내 교육노동자로 태어났다.
교사가 노동자임을 선포한 전교조 결성은 교사들이 더 이상 독재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선포이며 정권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1500여 교사들이 해고되고 수백 명의 교사들이 구속되었던 것이다. 나도 전교조결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생전 처음 구속되어 감옥생활을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있었으나 5년 가까운 해고생활은 새로운 삶의 장(場이)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혀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직접 체험하는 소중한 공부도 했다. 거리에서의 투쟁은 세상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혀주었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세상살이를 알게 해주는 소중한 학습의 장이었다.
94년 복직하고, 98년 김대중 정권시기 노사정합의에 의해 전교조가 99년 7월 1일 법제화되었다. 10년만이다. 정권은 노사정합의로 정리해고 법제화와 변형근로제, 근로자 파견제도 도입과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관철하는 대신 전교조 법제화를 약속하였다. 민주노총지도부는 수백만 노동자의 피눈물과 전교조법제화를 거래하여 노동운동의 대의를 저버리고 자본의 품에 안겼던 것이다.
통과된 교원노조법은 단결권과 형식적인 단체교섭권만 보장하고 단체행동권을 금지하여 사실상 교사들의 손발을 묶었고, 노동자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정치활동을 금지하여 교육노동자들의 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족쇄의 법’이었다.

단체협약불이행 교육청농성투쟁(2001년 강원지부장 때)
‘악법은 어겨서 깨트리겠다’는 의지는 사라지고 점점 합법주의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전교조의 행동이 합법이냐 아니냐를 스스로 의식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교육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부정하는 교원노조법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전교조 스스로 행동의 반경을 제한하였다. 또한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개혁에 대한 기대심리도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건 교육정책의 기조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소위 반독재 민주화 세력이 국가경쟁력 강화를 들먹이며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으로 교육개방, 교원성과금제 도입, 교원정년단축, 교원평가제도입. 평준화 해제 등 교육시장화 정책을 내세우는데 이는 모두 지배세력과 자본의 입장이었다.
나에게 전교조위원장(03~04)으로 2년은 너무 바쁜 시기였다. 교육개방 반대와 정보인권 사수(네이스 폐기)농성으로 시작해 사립학교법 개정 농성으로 임기를 마쳤다. 국가인권위가 네이스 3개 영역을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교육부도 전교조와의 합의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으나 잉크도 마르기전에 합의를 어겼기 때문에 연가투쟁이 강행되었고 이로 인해 나는 두 번째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단식, 농성, 연행, 구속과 같은 일이 일어났지만 결코 힘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민중진영의 공교육 개편안으로 입시제도 개혁과 대학평준화를 마련했지만 전교조의 사업으로 지속되지 못해 안타까웠다.
인간해방 세상 그날까지 힘차게 걸어가자
80년 교사생활을 시작해 89년 해고, 94년 복직, 그리고 2006년 다시 해고되었다. 지금은 전교조강원지부에 상근하며 조직국장, 교육국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주말은 집에 있지 못하고 회의참여나 집회에 나가는 일은 변함이 없다. 해고되고 2년간 틈틈이 준비하여 20년에 걸친 강원교육노동운동을 정리하였다. 굴종의 삶을 떨치고 교육노동자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분노하고, 절망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동지들의 숨결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교조가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연대와 실천에 소홀하고 전교조 문제에 만 치우쳐 조합주의나 실리주의로 흘러간 점도 있었다. 나와 너 우리 모두의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은 멀다. 야만의 자본주의 세상을 넘어 억압과 착취없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평등세상을 꿈꾸며 지배권력과 자본의 폭압에 맞서 앞서 투쟁해왔던 노동자민중의 소중한 역사를 이정표 삼아 앞으로 나가자.
전교조의 앞으로의 방향은 초심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함께 인간의 행복을 파탄내는 자본주의 세상에 당당히 맞서고. 가진 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교육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교육권력을 마련하는 일에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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