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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목재(우아미가구) 노동자들의 투쟁(1987년 7월)
첨부파일 -- 작성일 1987-07-11 조회 233

신흥목재(우아미가구) 노동자들의 투쟁

 

시기 : 1987711~ 724

 

 

신흥목재 노동자들은 회사측의 무자비한 폭력과 구사대의 난동 속에서도 꿋꿋하게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냈다. 신흥목재는 19624월에 설립되어 우아미가구라는 중고가 브랜드의 가구를 생산하고 있었으며, 당시 850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다. 남성 초임 4,200, 여성 4,000, 보너스 연 160200%, 휴가 모두 무급처리 등 전형적인 노동착취 기업이었던 신흥목재에서 바로 휴가 무급처리가 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711, 어용노조 지부장 명의로 “8월 여름휴가가 무급으로 처리되고 휴가비도 50%(3개월 미만자 1만 원)로 결정되었다는 공고가 나붙었다. 이에 분노한 남성노동자 35명이 노조사무실로 찾아가 항의하고 하기휴가비를 100%로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항의에 어용노조는 물론이고 회사측도 눈도 깜짝 않자, 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721, 이들 항의대를 중심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식당에서 회사의 부당성과 노조의 어용성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회사 관리자 30여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해 이영규(당시 20)가 머리를 9바늘이나 꿰매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2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식당을 계속 점거하고 평조합원 대표를 선출해 회사측과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이러한 교섭 제의에 응하지 않고 722일 휴업을 결정했다.

 

722, 일단 집으로 돌아갔던 200여 명의 노동자들이 휴업조치로 봉쇄된 정문을 열고 회사 안으로 진입해 회사에 협상을 요구하며 농성을 계속했다. 마지못해 교섭에는 응했지만 회사측은 “1일 유급휴가와 휴가비는 50%”라는 제안만 되풀이했다. 분노한 농성노동자들이 사무실을 점거했지만, 회사측은 즉각 관리자를 총동원하여 여성을 포함한 농성 노동자들을 구타하여 내몰았다. 이러한 폭력상황에도 농성을 이어가던 노동자들 중 60여 명은 끝까지 끌려나가지 않고 사무실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점거한 채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724일 새벽, 술에 취한 관리자 50여 명이 각목을 들고 몰려와 농성장에 돌과 벽돌을 집어던지고, 유리창을 부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심지어는 지게차, 포클레인, 소방차를 몰고 다니며 농성자들을 해산시키려고 덤벼들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농성자들의 투쟁 의지는 드높았지만 현장 전체를 장악하지 못하고 고립됐기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이러한 형편이 조금씩 개선된 것은 회사 밖의 농성지원자들과 시민들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 9시경 농성자들이 다시 150명으로 불어났고, 회사측에서도 더 이상 버틸수록 문제만 확산될 것 같자 서둘러 노동자들의 조건을 받아들여 보너스 300% 지급 하기휴가 4일 중 2일 유급휴가 호봉승급 상향조정 등에 합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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