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순, 송악산, 그리고 강정
송시우 (노동자역사 한내 제주위원회 부위원장)
본토 위정자들은 제주도(島)를 변방(便房)으로 생각하는가 보다. 힘의 논리에 의한 인간질서가 근대적 유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존공영과 평화를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권력의 이름으로 혹은 통치의 수단으로 합리화 시켜버리는 이 야만의 시대를 누가 21세기의 장밋빛 희망으로 분탕질을 쳐대는지 가증스러울 뿐이다. ‘제주4?3사건’으로 시작된 제주의 현대사는 ‘1%’의 존재감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다. 1970년대에 근대화의 탈을 쓰고 등장한 정치토건족의 앞잡이들이 서울 강남땅이 모자라 바다 건너 생채기를 보듬고 망각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제주도에 ‘복부인’들이 ‘땅 투기’의 무기를 장착한 대형 군단들이 식민지 먹잇감 물듯이 상륙한다. 그 덕분에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馬)은 제주도로 보낸다’는 말과 근대화 과정에서 도시 공장의 노동력을 농촌에서 충당하는 것을 증명시켰으며, 재외도민(在外島民) 100만의 시대를 열어 제친 그 공덕을 누가 잊으리오. 척박한 돌빌레왓을 갈아 봐도 시세보다 서너 갑절 더 주는 땅값으로 학비로 송금하고, 도시에 번듯한 집 한 채 사고, 자동차사고 하다 보니 조상님 전(田) 온데 간데 없고, 이젠 임대(賃貸)해 농사짓고 발 닿는 곳 모두 남의 나라 땅이니 풍광좋은 곳 건물 지어도 배 아파할 이유없다. 그렇게 ‘중문관광단지’는 개발되었고, 성천포 베릿내에 살던 사람들은 돈 몇 푼에 정든 고향땅을 빼앗겼다. 그게 70년대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이었고 그 종이 나부랭이는 푸른집 사람들의 일방적인 제주도를 대상화시킨 그냥 그들의 입맛에 맞는 식사 차림표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1983년 가을에 5공 정권은 미국 ‘벡텔’의 자본을 끌어들여 화순에 ‘자유무역항’을 만든다고 발표한다. 그렇잖아도 외지 자본에 의한 박탈감이 팽배하던 시기에 신군부 독재정권의 폭압에 반독재투쟁을 기류와 맞물려 대학생들이 대중투쟁을 전개해 나간다. 1987년 이후 정부가 송악산 알뜨르 지역에 일본군이 사용했던 터에 군 비행장을 만든다고 하자 제주도는 또 한 번의 몸살을 앓는다. 읍면지역대책위까지 조직하면서 군사기지 백지화 투쟁을 전개한다. 국방부 소유의 땅이지만 무상양여까지 요구한다. 한 동안 잠잠 하는가 싶더니만, 화순항에 다시 해군기지 건설을 한다고 발표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이간질시키지만, 끝끝내 화순항군사기지 건설 계획을 2002년에 무력화시킨다. 그러던 것이 2007년에 다시 군사기지를 건설한다고 바람잡고, 처음엔 위미항을 지정하는가 싶더니만 끝내 강정포구를 낙점하게 된다. 그후 5년이 흘렀고 군항 건설을 위한 정지 작업은 진행되고 있지만, 반대투쟁 또한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군항의 입지와 성격, 필요성 등은 국방부가 자충수를 두는 것이 너무나 많다. 똑같다.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밀어부치는 모습이 조선시대 귀양지로 만든 것이나, 가솔린을 통째로 부어서라도 불살라 쓸어버리겠다던 조병옥이나 똑같다. 동양의 하와이로 만들어 제주도민들에게 훌라춤이나 추면서 살라던 그 놈들이나, 국가 안보상 필요하니 군사기지 만들겠다고 덤벼드는 놈들이나 똑같다. 그래서 ‘육지껏덜’이라는 욕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수탈의 역사에서, 무자년 ‘서북청년단’의 횡포에서, 그리고 80년대 본격적으로 자행되는 안 되면 말고 식의 각종 정책 실험의 대상에서, 지정학적 위치 존재감에서 비롯된 전초기지의 전장에서, 결국 민의를 저버리고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변방을 들쳐먹고자 덤벼드는 ‘정치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되어 버린 박탈감에서 비롯되어 제주 근현대의 ‘난’들은 그렇게 형성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반역의 세월, 통곡의 세월’이라 노래했는가 모르겠다. 그러나 어려울 때마다 ‘장두’는 나타나고 ‘반역’은 진행되어 왔지 않은가. 지금 강정 평화를 외치며 불볕 아스팔트 위를 묵묵히 걷는 자들이 바로 장두의 후손들이 아니던가. 져도 아름답게 이기는 싸움, 바로 그게 민중들의 생존권적 싸움이요, 권력 투쟁인 것이다. 정치 혁명은 권력을 바꾼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민중들의 마음을 올곧게 추켜세웠을 때 가능한 것이다.
 
제주에 해군 및 공군 기지 건설 문제는 항시 내재해 왔다. 일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여 송악산을 비롯한 제주 전역에 ‘결7호 작전’을 수행할 군 기지를 건설했었다. 미국은 한미동맹체제 하에서 ‘전략적 유연성’의 중심지를 어디로 보고 있는 것일까? 평택인가? 오키나와에서 반기지 운동으로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에는 그 기반시설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대북 억지력 확보라 한다면 육지 본토에 건설해야 할 것임에 타당할 것이고, 남중국해의 해상 안전로 확보라는 명분은 가당치 않으며, 중국 견제용임에 누구나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해양굴기(海洋屈起)를 내세우며, 주변 국가와 쉼 없이 영토 및 해역 분쟁을 끊이지 않는 중국이 최근에 이어도 관할권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무력 사용을 불사하는 상황을 보면 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으며, 제주도가 그 사정권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놈들은 역으로 강력한 군사기지를 만들어야할 것이 아니냐고 우기지만 그럴 경우 ‘쇠퇴하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 사이의 힘의 대결이 만드는 블랙홀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래서 2005년에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였지 않은가. 자유롭지 못한 동아시아의 군사기지들은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제주도가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전략이 부재한 상황이다. ‘평화포럼’이라는 것도 해마다 석학이라는 자나 전직 대통령 혹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을 비싸게 불러 모아 몇 마디하고 난 후 ‘선언서’ 낭독하는 것으로 행사를 끝낸다. 군사적 충돌을 피하거나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하며, 책임있는 자들이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한 것임에도 말이다.
‘구럼비’로 상징되는 강정은 오늘도 자본의 이득을 위해 건설 중장비와 레미콘 차량이 수없이 들락거리고 있고, 정문 앞에서는 매일 개발용역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해가 머리위에 서고, 피켓팅 및 미사가 이루어진다. 강정은 강정의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문제이기에 전국을 자전거로 내달려 봤고, 불볕더위 아랑곳 하지 않고 물집 부르튼 발바닥 부여잡고 아스팔트 위를 걸어 봤으며, 태풍이 몰아쳐도 묵묵하게 걸을 뿐이다. 5년이 넘었다. 강정 싸움이. 1901년 신축항쟁처럼, 1918년 무오항일투쟁처럼, 1932년 ?녀투쟁처럼, 1948년 무자항쟁처럼 장두(狀頭)들이여, 화순자유무역항 반대투쟁, 송악산군사기지 철폐투쟁 승리의 기운을 업고 동학년(東學年)의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왜양창의(斥倭洋倡儀)의 깃발을 높이 들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