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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협 해산 대의원대회(1995년 12월)
[전노협 5기 임시(해산)대의원대회]
대의원대회의 목표와 상
1995년 12월 3일, 민주노총 건설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다하고 마침내 해산하게 된 전노협은 대의원대회의 목표를 첫째, 민주노조 운동의 발전에 헌신적으로 복무해 온 전노협 6년 역사를 정리하고 민주노총 건설에 맞추어 전노협 해산을 힘있게 결의, 둘째, 전노협의 성과를 계승하여 산업별노조 건설과 평등사회를 앞당기기 위하여 앞으로도 힘차게 투쟁해 나갈 것을 결의하는 것으로 잡았다.
이러한 목표에 맞춰 대회를 전노협과 함께해 온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대중적인 행사로 치르되 전노협의 역사와 성과를 다지며 민주노조 운동의 과제를 결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치, 전노협의 해산이 조직의 해체가 아니라 민주노총과 산업별노조 건설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대의원대회 조직화와 행사 준비
전노협 5기 9차 중앙위원회 회의(9월 21일)에서 대의원대회 일정을 확정하고 준비팀을 구성, 6년 활동 평가를 시작했다.
전노협 1995년 임시대의원대회 파견대의원 수는 총 356명(서울 111명, 인천 13명, 부천 11명, 경기남부 27명, 성남 13명, 전북 13명, 광주 7명, 대구 20명, 부산·양산 37명, 마산·창원 98명, 진주 3명, 민출 3명)이었다.
전노협 해산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중앙에서는 11월 중순에 수도권, 중부호남권, 영남권으로 나누어 순회간담회를 실시했다. 순회간담회는 민주노총 건설과 조직적 안정, 전노협의 역사적 임무를 되새기는 것과 함께 전노협 해산에 대해 대의원과 조합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됐다. 그러나 양규헌 위원장이 수배 중인 데다 지도부 대부분이 민주노총 건설의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간담회는 제대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전노협 5기 임시대의원대회 행사 준비는 11월 13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지역과 업종협을 중심으로 문화팀을 구성해 전야제 문화행사를 준비했다. 11월 23일 대의원대회 포스터 제작 등을 거쳐 전야제에 앞서 열리는 전노협 후원회 주최 ‘전노협 평가 토론회 준비와 함께 전노협 해산결의문, 청산위원회 구성, 전노협 6년 평가 등도 병행했다.
11월 26일에 1995년 전노협 활동 평가를 마무리해 ‘사업보고’와 ‘자료모음’을 제작했다. 12월 2일에는 문화행사 전체 연습을 진행했고, 사무총국 상근자들을 중심으로 접수팀, 설치·철수팀, 진행팀으로 나누어 행사를 준비했다.
‘전노협 운동 6년 평가와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과제’ 토론회
12월 2일 진행된 토론회에는 400여 명의 노동자·시민·학생들이 연세대학교 상경대 강당을 가득 메웠으며, 토론회 직후 연세대 식당 2층에 마련된 ‘다함께 차와 음식을’ 행사에 참여했다. 토론회 재정은 주최 단체들과 후원 단체가 각각 10만 원, 5만 원씩 부담했으며 ‘다함께 차와 음식을’ 행사 비용은 전노협 후원회에서 부담했다.
△ 제목 : 전노협 운동 6년 평가와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과제
△ 사회 : 김금수(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 공동발제 : 김진균(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전노협 고문, 전노협 후원회 공동의장), 임영일(경상대 사회학과 교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 토론 : 양규헌(전노협 위원장), 윤재건(현대중공업노조 위원장), 남구현(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윤진호(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김동춘(산업사회연구소), 양길승(산업보건센터 설립추진위원회), 신인령(이화여대 법대 교수, 전노협 후원회 공동의장), 김성희(고려대 경제학과 박사과정,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 주최 : 전노협 후원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 후원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산업사회연구소, 민주와 진보를 위한 지식인연대, 노동조합기업경영분석연구소,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산업노동학회,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산업보건종합센터 설립추진위원회
전야제
전노협 5기 임시대의원대회 전야제는 12월 2일 저녁 8시부터 최윤정 부노협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했다. 양규헌 전노협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전노협 6년 운동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며 “그러나 힘 있는 해산으로 이후 노동운동 발전 과정에서 전노협 정신을 살려내자”고 당부했다. 이어 ‘이야기 마당’에서는 대우정밀 해고자 황용범이 전노협 사수투쟁의 경험과 1990년 전노협 창립대회 당시 조합원들의 열망, 이후 투쟁 과정에 대해 발표했다. ‘이야기 마당’ 중간에는 전노협의 크고 작은 행사에 함께 해온 ‘노래선언’의 최도은이 노래공연을 펼쳤다. 이야기 마당에 이어 문화패와 문화단체가 함께 꾸미는 문화공연이 진행되었는데 풍물패와 풍물판굿은 전노협 투쟁 과정을 다음과 같이 형상화했다.
△ 1부 건설! 전노협 : 1987년~1989년 말까지의 전노협 건설기
△ 2부 진군! 전노협 : 1990년 창립~1991년 5월
△ 3부 투쟁! 전노협 : 1991년~1993년 6월, 박창수 열사 공작 살인 규탄 투쟁, 노동운동 탄압 분쇄 투쟁
△ 4부 해방! 전노협 : 1993년 6월~1995년 11월 전노협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노총 건설로!
△ 5부 진군! 전노협 : 전노협의 성과를 이어 민주노총 건설과 산별노조 건설로의 진군
풍물판굿을 끝으로 전야제를 마쳤다. 참여했던 사람들은 전노협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며 밤늦도록 전노협 해산문제를 놓고 토론을 나누었고, 곳곳에서 과거 투쟁을 회상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때 연세대에는 수배 중인 전노협 지도부를 검거하려는 사복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사수대들이 이에 맞서 밤새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연세대 총학생회에서는 그간 전노협의 역사적 성과에 보답하겠다며 이틀 동안 자원봉사에서부터 난방에 이르기까지 대의원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했다.
해산대의원대회
1995년 12월 3일, 마침내 전노협 해산을 결의는 5기 임시대의원대회가 연세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5기 임시대의원대회는 양규헌 전노협 위원장의 개회선언과 김영대 수석부위원장의 사회로 시작해 개회선언, 민중의례, 지역 및 업종 대오 소개, 성원 보고(대의원 총 356명 중 296명 참석), 회순통과, 1995년 사업보고(최동식 인노협 의장), 1995년 결산 보고(조영초 회계감사), 전노협 6년 평가(문영만 부양노련 의장), 전노협 해산안 심의, 기타 안건 토의, 폐회선언 순으로 진행됐다.
‘전노협 6년 평가’를 발제한 문영만 전노협 부위원장(부양노련 의장)은 “전노협은 산별노조 건설에 앞장서왔고 자주·민주·투쟁·연대·변혁 지향성을 실천적으로 발전시켜 왔다”고 평가하면서 “악법철폐, 산별노조 건설 과제 등 전노협의 성과와 한계는 민주노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경기노련 대의원은 “민주노총 강령에 전노협의 투쟁·변혁 지향적 내용이 포함되어야 투쟁 과정에서 조직이 와해되고 구속된 수많은 전노협 동지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구노련 이정림 대의원은 “전노협의 주요 지도부와 집행역량이 민주노총을 구성하고 있는데도, 단적인 예로 민주노총 교육 선전 자료집에 전노협에 대해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지도부들이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지적하고 “이후 전노협 정신을 내용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노협 6년 평가에 이어 ‘전노협 해산 안’이 중앙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대의원대회에 상정됐다. 해산안은 마창노련 이승필 의장이 낭독했다.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가운데 해산안을 읽는 사람도 참여한 대의원들도, 그리고 참관하던 사람들도 조용히 숨죽인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로 해산안은 몇 차례 낭독이 중단되다가 마침내 정식 심의 안건으로 제출됐다.
안건이 상정되자 대구, 경기, 서울, 인천, 마창 등 대의원들로부터 격렬한 제기가 터져 나왔다. 한 대의원은 “언제부턴가 전노협 해소가 당연시되었다. 전노협은 조합원들의 결의를 모아 창립했고 조합원들은 수많은 투쟁과 각종 사업에 동참했다. 그러나 전체 조합원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 없이 중앙에서 해소결의를 진행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중앙에서 민주노총을 건설하자고 하면 조합원은 따라가는 식의 악순환이 되풀이된 것에 대해 지도부의 해명을 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또 다른 대의원은 “전노협 해산은 유보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투쟁성을 확인한 뒤에 깃발을 내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러한 대의원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대의원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전노협 지도부의 입장을 경청했다. 양규헌 대회 의장은 “전노협 창립 정신을 이어 노동해방으로 나가기 위해 산업별노조로 하루빨리 전환·집중해야 하며 전노협 해산은 이러한 과정”이라며 “대의를 위해 슬픔을 넘어서자”고 호소했다. 전노협 규약 제10조 2항에 의거, 중앙위원회에서 제출한 해산 건을 투표에 부친 결과 참석자 242명 중 202명 찬성, 29명 반대, 무효 1명, 기권 10명으로 가결됐다.
기타 심의로는 양규헌 대회 의장이 ‘전노협 청산위원회 구성안’과 ‘전노협 기념사업안’을 제출하고 대의원들의 의견을 물어 박수로 통과시켰다.
○ 전국노동조합협의회 해산(안)
대의원 동지들!
저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중앙위원회를 대표하여, 참석하신 대의원 동지들께 규약 제10조 2항에 의거,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해산에 동의해 주실 것을 제안합니다.
1990년 1월 22일, 우리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깃발을 높이 들고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선언한 지 어느덧 6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분쇄하고, 노동자의 경제, 사회,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키며, 민주노조 운동의 조직역량을 확대, 강화하여 기업별 체제를 넘어 산별노조의 전국 중앙조직을 건설할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6년! 자본과 정권의 전노협을 향한 무수한 공격에 맞서 우리는 천만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켜냈습니다. 구속과 수배, 해고에 맞서, 회유와 협박에 맞서, 전노협은 노동자의 양심으로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6년간 우리는 우리의 선언에 충실했다고 자부합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역사의 한 주체로 당당히 일어섰고, 민주노조 운동의 역량은 강화되어 마침내, 1995년 11월에 민주노총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대의원 동지들! 이제 가슴 아프고, 아쉽지만 발전된 미래를 위하여, 노동운동의 더 큰 발전을 위하여 우리의 깃발을 내릴 것을 대의원 동지들께 제안하는 바입니다.
1995년 12월 3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일동
○ 전노협 청산위원회 구성(안)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대의원 동지들!
우리는 바로 조금 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규약 제10조 2항에 의거 대의원 2/3의 동의로 전노협 해산을 결의하였습니다. 오늘 회계감사가 제출한 참고자료에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자산 및 부채, 비품 현황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대의원 동지들께서는 위 자산, 부채, 비품 등에 대한 일체의 처리 권한을 전노협 청산위원회를 구성, 이 기구에 위임해 주실 것을 제안하며 아울러 다음의 사항을 결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전노협 청산위원회 청산위원은 양규헌 위원장, 문성현 사무총장, 단병호 중앙위원 및 각 지노협 대표자로 구성한다.
2. 각 지노협은 미납된 의무금 등 일체의 부채를 청산위원회에 조속히 납부한다.
3. 청산위원회는 ‘전노협백서운동사발간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체의 자산을 ‘발간위원회’로 이관함으로써 역할을 완수한다.
1995년 12월 3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일동
○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기념사업(백서 및 운동사 발간사업)(안)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대의원 동지들!
1987년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이 투쟁을 기점으로 시작된 이 땅 노동자들의 자주적 투쟁은 마침내 1990년 1월 22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결성을 통해 분명한 역사 흐름으로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6년간 우리는 수많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를 사수하며, 발전시켜왔습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거대한 물줄기는 전노협의 강이 되어 흘렀고, 그 강은 이 땅 노동자들의 젖줄이 되어 흘렀습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전노협 결성으로, 그리고 전노협 사수 투쟁에서 1995년 민주노총 건설에 이르는 그 길은 노동자들의 소중한 역사이고, 노동자들의 살아 있는 기록들입니다.
이에 전노협 중앙위원회에서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해산을 맞이하여 뜻 있는 기념사업으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백서 및 운동사’를 발간키로 결의하였는바, 첨부된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백서 및 운동사 기획(안)’ 전체에 대한 동의를 제청하며, 특히 다음의 사항을 힘있게 결의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청산위원회에 의해 구성된 ‘발간위원회’는 이후 전노협 자산 일체를 ‘전노협 백서 및 운동사’ 발간을 위해 집행한다.
2. ‘전노협 백서 및 운동사’ 발간을 위한 재정의 확보를 위해 각 지노협은 밀린 의무금과 <전국노동자신문> 구독료 미납금 전액을 청산위원회에 납부한다.
1995년 12월 3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일동
전노협 해산대회
대의원대회를 마친 뒤 2부 순서로 전노협 해산대회가 진행됐다. 해산대회 사회는 박양희 부노협 의장이 맡았다.
개회선언, 민중의례, 내빈 소개에 이어 양규헌 전노협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전노협은 창립 이후 총파업투쟁과 민주노조 사수 투쟁을 끊임없이 진행하면서 일체의 타협 없이 투쟁으로 일관해 왔다. 이러한 전노협의 투쟁성과 노동해방 이념은 천만 노동자의 가슴에 남을 것”이라며 “전노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눈앞에 펄럭이던 전노협 깃발이 천만 노동자의 가슴 속에 펄럭이게 되는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인사말로 김진균 전노협 후원회 공동의장은 “전노협이 지금까지 천만 노동자의 지도 조직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헌신성과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창복 전국연합 의장은 “전노협은 6년 동안 민주노조 운동을 힘차게 이끌어왔으며 이후에도 노동자 투쟁의 모범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처홍 전노협 고문은 “전노협 창립을 위해 관악산을 넘고, 온갖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원으로 모였던 조합원들과 대의원들의 의지”를 되새기며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 전노협이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남상헌 전노협 지도의원은 “건설 전노협은 곧 사수 전노협으로 이어 계속되는 투쟁의 역사를 가졌다. 이러한 투쟁 정신을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간직하자”고 당부했다. 배석범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여러분이 투쟁한 결과로 민주노총이 건설되어 있다. 전노협의 업적과 과제는 민주노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오늘 여러분들의 질책과 충고는 이후 민주노총 활동에서 책임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날 해산대회에서는 서울지하철공사노동조합, 대흥기계노동조합, 동양에레베이터노동조합, 삼양금속노동조합, 란토르코리아노동조합, 석화운수노동조합, 한국벨트노동조합, 대한광학주안노동조합, 대우캐리어노동조합, 대우정밀노동조합, 한독병원노동조합, 통일중공업노동조합, 남선물산노동조합, 우성노동조합, 한진중공업노동조합, 대우기전노동조합 등에 공로패를 수여했다.
전노협 1~4기 단병호 전 위원장에게도 공로패를 수여했으며 전노협 후원회, 천영세 상임지도위원, 남상헌 지도위원에게는 감사패를 수여했다. 박창수열사에게는 노동해방패를 수여해 박 열사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받았다.
노 동 해 방 패 고 박창수 열사 고인은 전노협의 강화와 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일천만 노동자의 가슴에 노동해방 정신의 지표로서 귀감이 되었기에 전노협 대의원대회를 맞이하여 천만 노동자의 이름으로 이 패를 드립니다. 1995년 12월 3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 양 규 헌 |
해산에 즈음한 결의 발언에 나선 마창노련의 한 조합원은 “전노협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며, 천만 노동자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우리 모두 전노협 정신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이어 양규헌 전노협 위원장이 해산결의문을 낭독한 뒤 전노협 깃발을 접고 폐회를 선언했다.
[지노협 해산결의 대의원대회]
전노협 중앙이 해산한 이후 서노협을 시작으로 각 지노협과 업종협의 해산대회가 이어졌다. 일부 지노협의 경우 민주노총 지역추진위로 이관되거나 지역본부로 자연스럽게 전환됐다.
△서노협(1995년 12월 3일) 전노협 해산대의원대회 직후 해산 △마창노련(1995년 12월 16일) 8차 대의원대회와 문화한마당 및 해산대회 △부노협(1995년 12월 20일) 임시대의원대회 및 조합원 송년회 △인노협(1995년 12월 29일) 해산대회 △대구노련(1996년 1월 24일) 해산대회 △부양노련(1996년 1월 27일) 해산결의 대의원대회 및 해산대회 △민출노련(1996년 1월 17일) 전국출판노조협의회 출범 △전북노련(1996년 2월 2일) 정기대의원대회 및 해산대회 △경기노련(1997년) 전노협 해산 후 2년간 활동
○ 마창노련 해산결의문
마창노련 조합원 동지 여러분, 그리고 마창지역 노동자 여러분!
우리는 오늘 제8년차 정기대의원대회를 마치면서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의 해산을 엄숙히 결의한다. 지난 1987년 12월 14일 전국 최초의 지노협 조직으로서 깃발을 우뚝 세운 지 8년, 마창노련은 그동안 지역 민주노조 운동의 단결구심체로서, 나아가 전체 민주노조 운동의 선봉대로서 노동자계급의 이름 앞에 결코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전태일 열사를 비롯한 선배노동자들의 고난에 찬 투쟁역사를 계승하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를 모아 건설된 마창노련의 8년 역사는 피와 땀과 눈물로 점철된 투쟁의 역사였다. 마창노련은 자본과 정권의 가혹한 탄압에 맞서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고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해 줄기차게 단결하고 투쟁해왔다. 1988년 삼미금속 동지들의 임금인상 투쟁, 1989년의 세신실업 구사대 퇴치 투쟁, 그리고 1992년 통일 노동자들의 총액임금제 분쇄투쟁은 전국 노동 형제들의 찬탄을 받은 단결과 연대투쟁의 모범이었음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자본과 정권은 우리의 조직을 깨기 위해 경찰력 난입, 마창노련 탈퇴 공작, 무노동 무임금, 고소·고발, 구속․해고, 심지어 마창노련 사무실 침탈과 테러 만행까지 서슴지 않았지만, 우리는 저들의 군홧발과 몽둥이에 결코 굴하지 않았다. 총파업 투쟁으로, 창원대로를 뒤덮는 가두 투쟁으로, 그리고 목숨까지 내던지며 민주노조와 마창노련의 깃발을 지켜왔다. 뿐만 아니라 마창노련은 전체 민주노조 운동의 발전과 전체 민중의 권익실현을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다. 전노협을 건설하고 사수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최근 들어서는 민주노총 창립과 산별노조 건설 투쟁에 매진해왔다.
우리는 오늘 마창노련의 해산을 맞아 지난 8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마창노련이 이 땅에 자주적 민주노조 운동의 시대를 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그리고 마창노련의 역사에 담긴 소중한 정신들 - 전투적 대중투쟁의 기풍과 굳건한 연대투쟁의 전통, 노동해방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가슴 깊이 되새기고자 한다. 나아가 온몸을 불살라 민주노조와 마창노련을 지켰던 이영일, 임종호 열사의 숭고한 자기희생 정신을 노동해방의 그 날까지 길이 계승시킬 것을 다짐한다. 이제 우리의 민주노조 운동은 지난 8년간의 투쟁 성과를 총결산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내닫고 있다. 천만 노동자의 단결구심체인 민주노총의 깃발 아래 하나 되어 기업별 노조의 벽을 깨부수고 산업별 단결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나아가 사회변혁의 중심주체로서 우뚝 서고 있다
자, 동지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마창노련의 창립이 자주적 민주노조 운동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면, 마창노련의 ‘발전적 해산’은 민주노조 운동의 새로운 전진을 위한 출발이다. 마창노련의 성과를 계승하고, 마창노련이 못다 했던 일을 새로운 과제로 부여안으면서 금속연맹과 산별노조 건설, 민주노총 강화를 위해 힘차게 나아가자. 결코 내릴 수 없는 노동해방의 깃발을 들고 전진 또 전진하자!
1995년 12월 16일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대의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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