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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항쟁을 찾아가는 길(3) _ 정민주 (44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2-08-15 조회 954
 
4.3 항쟁을 찾아 가는 길-3

정민주 (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답사의 마지막 날이다. 답사 시작부터 가졌던 죽은 자산 자들이 가졌을 트라우마와 그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정리가 잘 되지 않아 마음이 묵직한 채 하루를 시작했다. 1시까지 일정이 마무리되어야 하기에 조금 일찍 서둘렀다. 일행들은 답사 일정이 끝나고 제각기 제주에서 더 머무를 것이지만 답사팀 일정은 오늘까지라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짐을 꾸려 버스에 올랐다.
 
처음 찾은 곳은 의귀국민학교다. 의귀국민학교는 19481226일부터 1949년까지 제2연대 1대대 2중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토벌대들은 의귀국민학교 옥상에 기관포까지 설치하고 모래가마니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고 기록된다. 토벌대들은 마을 주변이나 숲에 숨어 있는 주민들을 붙들어 와 학교건물에 수용했다 한다. 1949112일 무장대들이 습격하여 토벌대 4명이 죽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토벌대들은 학교에 수용되어 있던 주민 수십 명을 집단 총살했다. 학교 운동장은 증축되어 예쁘게 단장되어 있었다. 피의 흔적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동백나무가 그 피들을 기억하는지 붉게 피어 뚝뚝 떨어져 있었다.
 
바쁜 발걸음을 옮겨 의귀 송령이골로 갔다. 송령이골은 당시 버려지다시피 매장된 상태 그대로 최근까지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고 있는 희생자 집단묘지이다.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이곳을 벌초하고 천도재를 치른 이후 표지판과 자그마한 방사탑을 세웠다 한다. 이곳은 의귀국민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이 집단 매장된 곳이다. 토벌대는 4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한 반면 무장대들의 희생은 컸다. 순례단이 세운 표지판에 적의 무덤 앞을 지나더라도 먼저 큰절부터 올리고 가라 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죽어서도 제대로 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답사팀은 간소하게 준비한 음식으로 제사상을 올렸다. 미친 세상을 바로잡고자 목숨을 내놓은 그들에게 너무 부족하지만 작은 위안이라도 되셨길 바란다.
 

 
의귀초등학교 동녘밭에서 총살당한 희생자들의 시신을 집단 매장한 현의합장묘 옛터는 도로확장 공사로 신묘역이 조성되어 있었다. 1950년에 마을 재건 명령으로 흙만 덮어져 있던 매장지를 옮기게 되었다. 이때 유족들은 경찰들의 눈치를 보며 시신을 수습했지만 신원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시신들이 엉켜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 훼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 연좌제가 살아 있는 그 시기에 그들의 시신을 수습한다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집단 매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가족이 매장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유족들을 중심으로 봉분을 쌓고 성묘를 하며 삼묘동친회를 결성했다. 이후 현의합장묘 비석을 세웠다. 세 무덤에 묻힌 사람의 후손들은 같은 친척이란 뜻이라는데 죽음으로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같은 아픔을 나누는 것은 서로의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의 탄생은 비극이다.
 
전체 답사의 마무리는 이덕구 산전을 찾는 것이다. 이덕구는 4.3 당시 초대 무장대 사령관이었던 김달삼의 후임자로 활동하다 최후를 맞은 4.3 무장대의 사령관이다. 194810월 이후 전개된 초토화 작전으로 무장대가 거의 궤멸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다 죽음을 맞았다. 이덕구 사령관의 시신은 4.3 답사를 시작했던 관덕정 광장에 전시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4.3 항쟁으로 이덕구 일가족은 대부분 희생되었다 한다.
 
이덕구 산전은 사려니숲길을 들어가서 찾아갈 수 있다. ‘사려니신성한 곳이란 뜻이라 한다. 이덕구 산전이 사려니숲에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느낌이 들었다, ‘사려 깊은 사람들, 신성한 사람들이 머문 곳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려니숲길을 따라가다 제주조릿대 구간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제주위원회에서 나무에 표식을 하고 재능OUT' 리본을 따라가면 되지만 초행에 찾기에는 힘이 들 것 같다. 전날 온 비로 질척한 산길을 올라 계곡을 건너 한참을 올라간 후에 비트(비밀 아지트)를 만났다. 초소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비트들은 주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비트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무장대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청동 밥상이 있었다. 주변에는 무쇠솥을 비롯한 사기그릇들이 깨진 채로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추모 청동 밥상에는 숟가락과 젓가락 모양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답사팀에서 준비한 음식들을 올리고 제를 지냈다. 이곳은 뜻있는 사람들이 찾긴 하지만 제대로 보존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았다. 4.3 항쟁을 제대로 평가하고 계승하기 위한 일들이 현재진행형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또한 이덕구산전이란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긴 하지만 이덕구 사령관과 함께한 이름 없는 무장대들을 기억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덕구산전을 마지막으로 4.3항쟁 답사는 마무리 되었다. 이번 답사는 개인적으로 4.3이란 주제로 제주를 방문한 첫 번째 경험이다. 제주에 대한 새로운 기억들과 당시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현재의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나에겐 죽은 자산 자들이 어떻게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트라우마가 진행형이며 진행 중인 아픔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 지 답을 찾지 못했다. 4.3 항쟁과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이후 죽은 자산 자가 겹쳐진다. 그래서 나의 4.3 항쟁 답사도 역시 진행형이다.
 
개인적으론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온 점도 그렇고 일정이 짧은 아쉬움이 있다. 다음 4.3항쟁 답사는 사전에 참가자들이 공부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4.3 항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현재와 연결해야 하는지도 토론하고 답사에 나선다면 더 많은 것들이 내 삶의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년에도 4.3 항쟁 답사가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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