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스레터
..... 이 달의 역사
..... 서울지역 노동자 연대의 상징 맥스테크노조 투쟁_정경원 (50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3-02-13 조회 2046
 
지난 4일 신정연휴를 마치고 출근해보니 회사가 문을 닫았어요. 사장님이 노조가 불쾌해서 일을 못 시키겠다나 봐요.”
전기나 수도가 끊긴 회사에서 농성 21일째입니다.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도 싶지만 또 다른 맥스테크사가 있어선 안 될 것 같아서...”
 
 
서울지역 노동자 연대의 상징 맥스테크노조 투쟁
 

정경원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988“3.8 세계여성의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인물로 맥스테크노동조합을 선정했다. “250여 명의 여성노동자들로 구성된 맥스테크사 노조는 회사측의 위장폐업에 맞서 23일 현재 51일째의 장기 농성을 벌이며 여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지키고 있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동아일보 1988.2.24.)
 
맥스테크노동조합은 19877,8월 노동자대투쟁이 한창인 829일에 결성되었다. 805월 투쟁을 통해 서통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앞장 선 배병옥씨가 상담하러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직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겨레신문 2003.6.3. 하종강의 글) 노조 가입률은 100%였다. 이러한 가입률은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19871221차 위장폐업 철회투쟁을 전개할 때 노동조합에서 나온 홍보물을 보면;
 
저희가 주로 하고 있는 작업은 인쇄된 작은 글씨와 컴퓨터 화면에서 나오는 광선 때문에 장시간 일할 경우 시력에 장애를 가져오는 유해작업으로 미국에서는 이 작업을 하루 4시간 이상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놓은 실정이지만 우리 회사는 하루 10시간 이상씩 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입사 시에는 근시나 난시가 거의 없었지만 6개월 이후면 금방 시력이 떨어져 노동자들의 90%가 안경, 렌즈를 사용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시키면서도 회사는 기본급 97,000원이라는 기막힌 저임금을 주었고 또한 저임금을 보충하는 수단으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도 분명치 않은 생산수당과 품질수당을 주면서 도급제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하여 우리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수단 또 회사에 복종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해 왔습니다. 지난 달 25만 원의 월급이 이달 17만 원으로 변경되고 아무도 모르는 월급지급 방법으로 회사는 무수한 이득을 취하고 있습니다. (맥스테크사 노동조합원 일동,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단결권을 소중히 여기고 격려해주시는 여러분들께 호소합니다!!!, 1987.12.2.)
 
노동자들은 미국에서 의학서적, 재판기록 등의 책자를 가져다가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을 하였다. 처음에는 신촌의 단칸방 사무실로 시작해 당시 ()한양, ()한국상역, 깊스, 하니 구미지사 등 대규모 회사로 성장했으니 그 바탕에 노동자의 땀과 피가 젖어있었을 것이다. 일 년만 일해도 시력이 나빠지고 팔이 바들바들 떨리는 직업병, 지금으로 말하면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저희는 600여 명으로 구성된 ()한양의 소속이였으나 차츰 100, 200, 270명 등의 규모로 나뉘어 제일전산, 광주대승시스템, 맥스텍크사, ()한양 등 4개의 소규모 회사로 갈라놓고 우리의 의견은 아랑곳없이 상호변경에 따라, 회사의 의도에 따라(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일이라 말함) 수시로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저희 맥스테크사의 사장은 ()한양의 상무인 김상철 사장입니다. 진짜 사장인 홍국태, 홍진태등 가족들이 회사를 실제 운영하고 사장의 작은 부인까지도 제일 전산을 운영하는 가족체제입니다. (위 유인물)
 
맥스테크사는 마포구 도화동 정우빌딩에 있는 회사로 한양전자계산()에서 부서이동이란 명목으로 맥스테크로 분리되어 서류상 하청업체로 되어있다. 노동자들의 증언에서처럼 당시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하여 폐업과 상호변경 재신고를 하는 자본가가 많았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업을 승계하여 승계 전의 사업과 동종의 사업을 하는 경우, 하던 공장을 폐업하고 예전과 동종의 사업을 재개하는 경우 등에 대해 세제해택을 주지 않는 조치를 취했을까.
그런데 자본가들이 늘 내던 세금을 줄여보자고 폐업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자본가들은 노동조합을 용납할 수 없었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을 두고볼 수 없었기에 이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위장폐업을 선택하였다. 노동자들이 가장 폭발적인 투쟁을 전개했을 때인 1988년과 1989년 위장폐업이 최고조에 달했음이 이를 보여준다. 특히 다국적기업의 위장폐업에 대한 공동투쟁, 미국 일본 등 원정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멕스테크 노동자들이 세무서와 노동부에 찾아가 부당한 위장폐업을 알리자 노동부에서는 그건 분명한 위장폐업이기 때문에 여러분 끝까지 싸우라.”고 하였을 정도였다.
 
멕스테크노조의 위장폐업 분쇄 투쟁은 87년과 88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위장폐업은 사장의 노동조합 위원장 회유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었다. 1127일 오후, 사장 김상철은 노조 위원장을 불러 최근 마련한 회사 사장을 시켜주겠다고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였다. 위원장이 이를 한마디로 거절하자 이번에는 여러 계열회사가 함께 사용하고 있는 식당을 맥스테크는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유는 바이어들 접대할 방이 없어서 식당을 줄여야겠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식당에 가보니 식당에는 맥스텍크 노동자들의 식사는 아예 준비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사무실에는 형사가 와서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1130일 회사측의 부당한 처사를 알리는 글을 식사하러 온 계열회사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랬더니 사장은 도저히 불쾌해서 회사운영 못 하겠다. 폐업이다!라고 협박하였고 121일 회사문 앞에 폐업공고를 붙인 것이다.
 
맥스테크노조는 노조 결성 이후 단체협약을 통해 초임을 97,000원에서 117,000원으로 인상시켰고 월차 및 생리수당 지급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을 시정해 나가고 있었다. 때문에 계열사들도 그들의 투쟁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대확산의 가능성을 가진 공간인 식당은 자본가에게는 위험한 곳이었다. 회사는 노조가 있는 맥스테크노동자들과 계열회사 노동자들이 어울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바이어를 핑계로 식당 사용을 못하도록 도발하고 나선 것이다.
 
1. 우리에게 일을 달라            1. 위장폐업 철폐하라
1. 노동삼권 보장하라            1. 생존권 보장하라
1. 추워 못살겠다. 스팀달라    1. 단전이 웬말이냐 전기불을 달라
1. 배고파 못살겠다 밥을 달라   1. 기계를 내몸과 같이 지키겠다
1. 노조탄압 즉각 중지하라
 
회사의 위장폐업에 맞서 노동자들은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돌리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호소하였다. 한편으로는 협박과 탄압을 이기며 전 조합원이 철야농성을 하였다. 요구의 핵심은 위에서 보듯이 위장폐업 철회, 노동자 권리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철야농성 시작하자 전기를 끊어버리고 기계를 빼돌리려는 데 항의한 내용도 들어있다. 조합원들의 흔들림 없는 투쟁은 결국 6일 만에 회사의 손을 들게 하였고 폐업철회와 재가동을 약속받았다.

 
 
맥스테크 여성동자들의 투쟁은 80년대 노동운동사에서 대표적인 투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림패 둥지의 공동창작 걸개그림 <맥스테크 민주노조>로도 유명하다. 밑그림을 여성주의 화가인 김인순 님이 그렸는데 당시 노동문화예술의 대표적 작품이다. (1998/180*125/천에 아크릴_진보넷 블러그에서 가져옴)

 
하지만 회사는 신정연휴 기간 동안 인부를 동원, 기계를 은밀하게 빼돌리고 폐업신고서를 관할 세무서에 제출한 것이다. 공장입구는 쇠창살로 용접밀봉해 버렸다. 연휴를 마치고 출근하던 노동자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폐업통고서와 취업안내를 위한 노동부 서부지방사무소 직업안내창구, 사설직업안내소 전화번호였다. 폐업통보서를 본 노동자들은 장사가 안 돼서라는 회사의 폐업사유에 대해 더욱 분노하였다. 회사는 기계를 빼돌려 다른 하청계열사에 분산배치, 재가동하려했기 때문이다. (1988.1월호)
 
노동자들은 14일부터 공장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추운 겨울 시멘트 바닥에서 농성을 벌이는 여성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 찬 모습이 <금속노보> 1988315일자에 실렸다. 이들은 촛불의식 등 프로그램을 통해 결의를 새롭게 하곤 하였다.
 
지난 4일 신정연휴를 마치고 출근해보니 회사가 문을 닫았어요. 사장님이 노조가 불쾌해서 일을 못 시키겠다나 봐요.”
전기나 수도가 끊긴 회사에서 농성 21일째입니다.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도 싶지만 또 다른 맥스테크사가 있어선 안 될 것 같아서...”
 
그들의 다짐대로 55일간 투쟁에서 승리하였다. 투쟁을 통해 쟁취한 주요 내용을 보면, 원청회사의 임원이 회사를 인수 운영하고, 37일부터 부분가동에 들어가되 320일까지 160대를 확보하여 전면 가동키로 한다, 한양전산의 총수주량의 2/5를 타 하청회사 생산능력과 관계없이 새로운 창업회사에 우선 할당하고 어떠한 이유로도 위법 부당한 폐업이 발생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 등이다.
 
맥스테크노동조합의 투쟁은 회사의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조직력을 바탕으로 굳건히 싸운 여성노동자운동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더불어 맥스테크 연대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지역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 건설을 결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맥스테크노동조합 투쟁승리 1차 보고대회가 열렸던 19871215, 여성백인회관에서 서울지역 15개 사업장 노조위원장들이 모여 연대의 필요성을 논의하기 시작함으로써 마침내 서노협 건설의 시작을 열 수 있었다. 맥스테크노동자 투쟁은 서노협 운동의 첫머리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기 등 수도권지역에도 연대의 필요성을 전하게 되었다. (<전노협백서 1>, 2003)
 
 
 
멕스테크 민주노조.JPG
 
 
 
목록
 
이전글 한국 민속명절에 기입된 자동질서의 일부 중 자연균형을 깨뜨리는 것들 _양규헌 (50호)
다음글 이른바 '1948년 2월 회의'에 대하여_송시우 (50호)
 
10254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공릉천로493번길 61 가동(설문동 327-4번지)TEL.031-976-9744 / FAX.031-976-9743 hannae2007@hanmail.net
63206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앙로 250 견우빌딩 6층 제주위원회TEL.064-803-0071 / FAX.064-803-0073 hannaecheju@hanmail.net
(이도2동 1187-1 견우빌딩 6층)   사업자번호 107-82-13286 대표자 양규헌 COPYRIGHT © 노동자역사 한내 2019.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