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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전국노동자대회(1993년 10월)
첨부파일 -- 작성일 1993-10-31 조회 329

1993년 전국노동자대회

 

1993년 전국노동자대회 개요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노동법개정과 근로자파견법 및 공공자금관리기금법 제정 저지를 위한 1993 전국노동자대회는 전노대 주최로 1030일 고려대학교에서 전야제, 다음날 효창운동장에서 본대회를 진행했다. 주요 요구는 노동악법 철폐, 자주적 단결권 쟁취 재벌해체, 경제개혁 촉구 해고자 복직, 수배자 해제, 구속자 석방 국민연금제도 개선 불법용역과 중간착취 반대 전노대 강화, 산별노조 건설, 민주노총 건설 등이었다.

827~28일 전국 단위노조 대표자 수련대회에서 1993년 노동법개정투쟁 계획과 방침을 결정한 이후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전노대 등 각급 단위에서 논의를 이어가며 전국노동자대회를 준비했다.

 

전국노동자대회 행사준비와 진행

문화반은 전국노동자대회 중 전야제, 거리행진, 상징의식을 포함한 본대회 문화행사를 기획·진행했으며 대회준비와 관련한 문화선동사업으로 문화패, 노조 문화국, 문화단체 간의 내용적인 발전과 상호연대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1992년에 비해 전국노동자대회가 2주 앞당겨져 준비에 차질을 빚었으나 지역·업종 가을문화제와 각 문화패 사업을 전국노동자대회와 내용적으로 연결시켜 문제를 최소화했다. 특히 노동법개정 투쟁과 노동자대회 전반에 대한 교육과 설명회, 간담회, 토론 등을 거쳐 모든 단위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였다.

질서유지대는 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대회장 질서와 행진 시 대오 배치 및 관련 전술을 짜고 행진 과정에서의 대국민 선전선동을 수행했다. 조직 인원은 300명을 목표로 했으나 실제 참여자는 195명이었다.

방송차량을 이용한 선동은 1993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에서 성과를 거둔 바 있었다. 전국노동자대회 행진 때도 대시민 방송차량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선동대를 구성했다. 대회 당일 전국노동자대회 질서유지대 산하 특별대로 배치해 4분대 18개 조로 구성했다.

1030일 전야제는 오후 830분 길놀이로 시작했다. ‘전국노동자 문화한마당’ 1부는 권영길 공동대표의 인사와 노동법개정투쟁 사진·만화 공모전 시상식과 각종 현안에 대한 투쟁연설이 이어졌다. 11시경 시작한 2부에서는 현장노동자들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고, 새벽 240분경 대동놀이로 마무리했다.

참가자들은 다음날인 31일 아침 8시에 모여 출정식을 한 뒤 낮 12시경 효창운동장에 모든 대오가 집결했다. 지역·업종·그룹별로 시간을 보낸 뒤 오후 130분에 본대회가 시작됐다. 오후 340분경 대오는 여의도광장까지 행진을 진행했다. 530분경 여의도 광장에 도착한 대오는 마무리집회를 진행하고 전국노동자대회 모든 일정을 끝냈다.

 

조직별 전국노동대회 평가

전노협은 기조상의 의견 차이, 명칭 및 장소 결정의 지연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조건이었음에도 예년 수준으로 조직된 것은 현장 노조 간부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민주노조 총단결의 대의를 지켜내려는 노력의 결과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회의 성과에도 전노협과 전노대라는 다소 중복된 조직체계는 민주노조의 조직 구심을 올바르게 구축해야 할 과제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결정의 번복과 의견의 갈등, 조직 간의 불신, 책임성 방기 등 노동자대회를 둘러싸고 나타났던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노협의 노력이 한층 더 요구된다고 평가했다.

업종회의는 전국노동자대회의 기조, 준비 및 진행과정 전체에 걸쳐서 각 조직이 자신의 역할과 계획을 분명하게 하면서 전노대로 결합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전노대의 이름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점은 우려스럽지만 전노대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사안을 떠맡으려는 것 역시 무리라는 의견이다. 따라서 전노대의 활동은 더 포괄적이고 정치적인 대응에 초점을 맞추어 자기사업을 조정하고 각 조직이 무리 없이 공통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민주노조진영은 대회 기조와 진행 과정에서 나타난 구태의연함과 경직됨, 그에 따른 상황 대처능력의 부족을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1993년 전국노동자대회는 전반적으로 기존에 축적되어 온 각 조직 대표자들과 각 조직 간의 공감대에 심한 동요를 일으키면서 조합원이 지도부에 대한 신뢰 문제까지 제기한 대회였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에 기반해 전노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의결기구를 전노대 내에 설치해야 하며 전노대 집행위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현총련은 전국적으로 중요한 행사인 만큼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칠 수 있도록 사전 준비되어야 했다고 평가하며 현총련이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데 미비했던 점은 반성하나 대회의 준비과정에서 각 조직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고 모아 나가기보다 상층부나 소수에 이끌리는 인상이 짙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기조와 장소 문제에 대한 논의가 불필요하게 반복되면서 단위 사업장의 홍보와 조직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했는 점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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