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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한반도에는 일본 식민지 체제를 거부했던 수많은 해방의 깃발이 나부꼈다. 노동자들은 식민지체제로부터 해방되는 시간과 공간을 계급해방과 노동해방의 깃발로 채웠고, 식민지 자본가들도 민족해방의 깃발이라는 우산속에서 어떻게 축적조건을 변화시킬 것인가에 집중하였다.
지배권력과 카르텔을 구축했던 대한노총
김영수(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
1945년 8월 한반도에는 일본 식민지 체제를 거부했던 수많은 해방의 깃발이 나부꼈다. 노동자들은 식민지체제로부터 해방되는 시간과 공간을 계급해방과 노동해방의 깃발로 채웠고, 식민지 자본가들도 민족해방의 깃발이라는 우산속에서 어떻게 축적조건을 변화시킬 것인가에 집중하였다. 1948년 8월부터 1948년 8월이나 1953년 7월까지 민족해방의 깃발은 가장 높게 우뚝 솟아올라 일제 식민지 체제의 통치권력과 자본이 물러나고 새로운 통치권력과 자본이 어떻게 재구성되는가를 지켜보았다. 민족해방의 깃발은 계급해방과 노동해방을 지향했던 세력들이 해방의 공간에서 미군정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통치세력 및 자본과의 투쟁에서 어떻게 패배하였는가를 잘 알고 있다.
계급해방과 노동해방의 깃발은 대중적으로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이름으로 정치적으로 조선공산당의 이름으로 해방공간을 메꾸었다. 그런데 미군정과 새로운 통치세력들은 계급해방과 노동해방의 깃발을 꺾어버렸다. 그들이 사용한 방식은 계급해방과 노동해방을 반대하는 세력과 함께 권력의 꿀맛을 나누기에 적합한 권력카르텔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대한노총 11년차 전국대의원대회_사진:한국노총, [노동사회]에서 재인용
미군정과 새로운 통치세력은 합법적 제도권력을 독과점화하고, 그 힘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노동자들의 대표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부정하면서 노동자들의 새로운 제도권력을 반공우익세력들로 채웠다. 대한노총은 1946년 3월 10일 결성하되었다. 대한노총은 노동조합 대표가 아니라 깡패들과 반공 우익 청년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회원들을 중심으로 15개 직장 45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대회를 개최하였고, 1947년에 이르러서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가 주도하는 총파업의 파괴와 이승만의 정치적 동원부대 역할을 충견처럼 수행하였고, 또한 대한노총 지도부들의 정치적 출세라는 정치권력의 대가로 이어졌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는 대한노총 위원장 전진한, 제2대 국회에서는 대한노총 전감찰위원장 조광섭, 대한노총 경북연맹위원장 조경규 등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권력카르텔의 구조에 편입하였다.
미군정과 새로운 통치세력은 제도화된 노동자들의 대중권력체인 대한노총을 자신의 권력구조에 동원하였다. 이승만 정권하에서의 대한노총의 주요 정치활동은 이승만의 정책이나 노선을 지지하기 위한 대중집회?시위활동인데, 대표적인 예로는 ‘미군철수에 따른 대한(對韓)무기 및 경제원조를 얻어내기 위한 노동자총궐기대회(46.6.27, 7.1, 50.1.27), 이승만 개인의 권력유지 및 연장을 위한 개헌반대궐기대회(1950.2.19), 이승만의 통일외교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제7차 전국대의원대회(1953.4.1), 그리고 4사5입 개헌에 따른 이승만의 대통령출마를 지지하기 위한 우마차(牛馬車)시가행진(1955.12)’등이다.
미군정과 새로운 통치세력은 자신들에게 종속적이고 협조주의적인 노동조합운동을 양성화하였다. 대한노총은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의 ‘관료성, 반자주성, 반민주성’을 실현하는 국가의 노동정책의 수혜주체로 전락하였다. 미군정과 새로운 통치세력은 대한노총의 조직확대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직접적인 지원은 재정지원 및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총파업투쟁 등을 억압하기 위해 대한노총과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고, 간접적인 지원은 대한노총의 활동을 보장하는 각종의 법적?제도적 조치를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대한노총은 노동자들 가운데서 우익성향을 가진 자, 기회주의자, 그리고 전평 지도부에 대해 개인적인 불만을 가진 자들을 포섭, 전평의 조직이 완전히 파괴되거나 사실상 활동이 봉쇄된 기업체나 공장의 경우 대한노총이 전평의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는 방법, 미군정의 유리한 법적 절차에 힘입어 합법적인 대표성을 획득한 후, 전평의 잔존세력을 폭력이나, 테러, 해고의 위협 등으로 제거해 나가는 방법 등으로 조직을 확장하였다. 그래서 대한노총은 조합원들의 제반 이해를 추구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보다는 노총의 권력을 둘러싼 헤게모니 쟁탈전 또는 국가권력과의 유착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활동만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대한노총은 미군정과 새로운 통치세력의 전략적 목표 하에서 보수우익세력을 중심으로 설립?운용되었고, 지배권력의 토대를 강화하는 활동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대한노총의 지도부들을 노동귀족화하고, 새로운 통치세력들을 권력귀족화하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카르텔은 소멸시효가 없는 듯하다. 대한노총은 역사적으로 권력카르텔의 구조 속에서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2003년 3월 10일은 대한노총이 창립 67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노총이 권력카르텔에 편입하고, 그 권력에 노예처럼 굴고자 했던 말과 행동이 지금도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이념적 좌파정당들이나 계급적 노동조합운동도 권력카르텔 체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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