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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항쟁의 길을 찾아서(2)
노상규(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기행 둘째 날이다.
한내는 기행을 신청한 참가자들에게 몇 가지 자료를 사전에 보고오라고 했다. 그 중에 하나가 현기영 선생님의 소설 <순이삼촌>이었다. 제주 4.3항쟁을 세상에 꺼내놓은 계기가 된 소설이고 그로인해 현기영 선생은 정권의 탄압을 받아야 했다. 그 배경인 북촌초등학교가 첫 행선지였다.
이 운동장에서 끔찍한 학살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담하고 예쁜 초등학교다. 이 마을은 같은 날 향냄새가 진동한단다.
북촌초등학교는 부대로 복귀하던 군인 두 명이 무장대에 의해 살해당하자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학살을 벌인 곳이다. 그 이유도 사병들이 적을 사살해 본 경험이 없으니 총살 경험을 쌓아보자는 것이었다는 증언이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군인이나 경찰 가족이 아닌 이들은 학교 주변 너븐숭이, 밭 등에서 연습용 총알받이가 됐다.
너븐숭이 애기무덤, <순이삼촌> 문학비가 있는 옴팡밭을 둘러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죽은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아기를 형상화한 조각이 그날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다음으로 찾은 다랑쉬 오름이다. 마을이 있던 흔적을 찾기 힘들지만 그곳에 다랑쉬마을이 있었다. 10여 가구의 주민들이 목축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다른 중산간 마을처럼 소개되어 마을 주민들은 해안가 곳곳을 떠돌아야 했다.

<다랑쉬오름 정상의 분화구>
다랑쉬오름에 오르니 제주 북동부, 성산일출봉까지 훤하게 다 보인다. 하지만 제주의 자연환경에 감탄을 하는 시간도 잠시였다.
1992년 시신 10여 구가 발굴되어 4.3학살을 널리 알리게 된 다랑쉬 굴 입구로 향했다. 푯말이 없다면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입구가 날씬한 사람 하나 겨우 기어들어갈 정도로 좁은지라 굴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살아보겠다고 굴을 찾아 들어간 이들이 토벌대가 피운 연기에 질식사하여 그대로 어둠속에 묻혀있었다.
구좌읍은 당근 생산으로 유명하다. 점심으로는 칼국수를 먹고 그 자리에서 갈아주는 당근주스를 마셨다. 마셔보니 제주당근을 최고로 치는 이유를 알겠다.
이동하여 성산의 서북청년단주둔소로 갔다. 성산초등학교를 접수하여 1년 정도 주둔했다고 한다. 증언에 따르면 이북말을 쓰는 50여 명의 청년들이 있었고, 이곳에서 자기들이 경찰이나 되는 듯이 사람들을 끌고와 고문을 하고 가둬두는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서북청년단은 해방 이후 평남, 함북, 함남, 황해청년회 등에서 월남한 이북출신 청년단체로 대표적인 반공우익 집단이다.

서북청년단 주둔소
오후만 되면 서북청년단에 의한 총소리가 한동안 그치질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곳을 지키던 경찰조차 그 잔혹함에 놀라 입이 돌아갔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다. 그 학살 장소가 터진목 학살터다. 도로변에 큰 돌로 4.3유적지 표지가 있는데도 성산을 지나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터진목의 풍광은 눈을 시리게 할 정도다. 성산일출봉과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이 죽음의 장소였다니. 우리는 그곳에서 묵상을 했고, 최도은 동지의 노래를 들었다.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영령들의 한을 달랬다.
 
<터진목 학살터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그리고 최도은 동지>
의귀초등학교, 의귀 송령이골. 이곳은 진압군이 주둔하며 수용소처럼 활용도 한 장소로 무장대의 실질적인 마지막 전투가 된 곳이기도 하다. 무장대는 이곳을 공격한 후 더 이상의 무장투쟁은 없었다고 한다.
의귀초 뒤편 마을 어귀에 흩어져있는 시신들을 마을사람들이 한곳에 모아 무덤을 만든 곳이 있는데 이곳에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벌초하고 천도제를 지낸 후 표지판과 방사탑을 세워두었다. 이곳에서 영령들을 위로하는 제를 지냈다.
이후 이번 기행단의 저녁 뒤풀이 장소에서 한 동지가 송령이골에 이번 기행의 성과로 비석을 세우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들 동의하여 추진위를 즉석에서 조직했고 다음날까지 약정된 기금액이 기백만 원이 넘었다.

<송령이골 유골 방치터>
의귀초등학교에 수감된 주민들과 의귀마을 주민들이 무참히 학살된 후 아무렇게나 매장된 곳을 도로확장공사로 인해 지금은 신묘역으로 새롭게 조성되었다.
곳곳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제주. 아직 구천을 떠도는 4.3항쟁의 영령들이 얼마나 많을까...
자연환경의 보고로 선정되어야 하니 전화 투표를 하자고 떠들썩하게 하면서도 한쪽에선 해군기지를 만들겠다는 곳, 중국 관광객이 넘쳐나는 섬, 올레길 개발로 사색과 힐링의 대표로 떠오르는 내나라 관광지가 제주도다. 그 뒤에는 탄압과 항쟁의 역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