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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루
권두섭(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금요일 아침 9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과 관련한 금속노조 대책회의에 참석하였다. 판결을 계기로 다시 한번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정규직화 투쟁을 모색해 보기위한 자리였다. 11시 남부지법, 언론노조 KBS본부가 제기한 대체근로금지가처분 심문기일에 대신 출석을 다녀왔다. 파업 이후 사측이 1박 2일, 승승장구 주요 예능프로그램의 피디들이 파업에 동참하자, 외주 피디를 편집과 제작에 투입하여 국민 누구도 KBS가 파업을 하는 것을 모르게 되었다. 물론 대체근로금지는 노조법에 규정되어 있다. 명확하지 않지만 불법파업이 아닌 합법파업에만 금지된다는 해석이 대세인 듯하다. 사측 논리도 불법파업이니, 대체근로가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KBS 새노조의 단체교섭도 법원에서 단체교섭에 응하라는 가처분을 받고서야 가능했다. 오후 2시 민주노총 중집이 열렸는데, 타임오프 관련 법률대응에 대하여 보고를 하였다. 매뉴얼에 대한 헌법소송을 하느냐 마느냐, 실익이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같은 시간에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반려처분에 대한 취소소송 선고가 나온다고 들었다. 결과는 기각, 곧 패소였다. 민변에서 메일로 보내온 판결문을 보니 노조설립은 노동부의 허가를 받아야 될 판국인 듯하다. 오후 4시 남해화학 불법파견 사건의 항소심 재판에 다녀왔다.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한 3명의 노동자는 노동부 진정이 실패로 돌아가고(사건 내용을 볼 때 이들은 불법에 눈감은 자들이 분명하다.) 원청을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하자마자 출입이 금지되면서 해고를 당했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은 조직화의 계기가 되어야 하고, 또 그동안 자본은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이라는 불법파견으로 이윤을 착취해왔는데 이를 끝내야 하는 투쟁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자본과 정부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까지 파견대상업무를 확대하고, 2년 주기로 해고를 반복하는 고용불안을 더 심화시키는 방법으로 이를 피해가려 할 것이다. 아니면 동희오토처럼 아예 중간회사를 하나 만들어 모든 생산라인을 비정규직 사내하청으로 채우고 또 최악의 경우에도 원청자본은 안전할 수 있는 구조를 확대하려 할지도 모른다.
판결을 한 대법관들의 생각에는 없었겠지만 자본주의 현실은 늘 그렇게 작동한다.
타임오프 제도는 분명히 위헌이지만, 그것을 헌법재판소라는 경기장에 가져가서 위헌판단을 받을 수 있다는 것까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대체근로금지가처분에서 덜커덕 불법파업이라고 사전 판단을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대체근로를 막아내지 못하면 타격이 너무 크다는 절박함이 있었지만, 법원의 판단에 그 명운을 걸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대응방법은 아니다.
공무원노조설립신고 문제는 행정법원이라는 경기장에서 결국 막무가내 정부가 승소하였다. 남해화학에서 출입정지, 정확히는 해고된 노동자 3명은 민주적인 노조가 없는 가운데 이들은 승소한다고 해도 복직이 가능할까. 결국 힘에 밀려 보상을 받고 적당히 물러서야 할지도 모른다.
법원이라는 경기장, 재판이라는 게임은 원래 노동자에게 불리한 경기장이고 게임이다. 그리고 이긴다고 해도 그 결과는 거꾸로 흘러갈 수도 있다. 심지어 굳어져 있는 게임의 법칙들, 노동자들의 파업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업무방해죄라는 것으로 형사처벌하는 법리,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 경영권 등을 목적으로 하면 목적 불법이라면 파업을 불법화하는 법리들... 이미 노동자들의 주요 활동을 옥죄는 판례법리는 많고 그들이 중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노동을 배타시하거나, 자본의 필요성과 욕구에 지나친 온정을 보이는 심판들(판사)도 많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설사 불리한 조건을 딛고 승리(승소)하더라도, 현실의 결과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수 있으며, 어렵게 얻어낸 판결의 의미를 살리는 것도 결국은 노동운동의 몫이지, 그것까지 법원이 해주지 않는다. 전교조가 여러 소송에서 이긴다고 한들 그것은 막무가내 공안탄압을 일시 멈추게 할 수는 있을 지언정, 전교조가 해야 할 운동의 과제를 달성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최근 MB정부의 표현의 자유 억압, 정치공안검찰의 칼춤에 법원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자, 우리가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번 되돌아 볼 일이다. (물론 그 판결의 의의와 재판에 참여한 판사의 고뇌와 노력을 깎아 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고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이후 받은 판사들의 고통에 대하여 안타깝고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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