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다』, 삶이 보이는 창
개발에 저항한 ‘난쟁이’들의 삶, 일상, 투쟁을 받아 적다
엄기수

지난 1월 20일, 서울의 한복판 용산에서는 믿을 수 없는 참극이 벌어졌다. 생계 대책을 요구하며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 5명과 이를 진압하려던 경찰 1명이 불에 타 죽은 사건이다. 그리고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이 훌쩍 지났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다시 강제철거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용산4구역과 같은 주거권과 생존권을 무시한 폭력적인 재개발이 이 땅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30년 전에 “벼랑 끝에 세운 주의 팻말”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썼다는 조세희 작가의 말대로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마저 무시하는 “이 선을 넘으면” 정말로 “위험”할 것이 자명하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이번 용산 참사 희생자 가족과 다른 여러 지역의 주거 세입자 및 상가 세입자 열다섯 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참여한 15명의 필자들은 재구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장소로부터 뿌리 뽑힌 하위주체들의 목소리를 직접 받아 적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 이웃인 철거민들을 한 명 한 명 만나서 그들의 살아 숨 쉬는 목소리 그대로를 책 속에 담은 구술 기록이다.
이들은 다름 아닌 우리 이웃이며, 우리의 가족,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350만 원짜리 무허가 판잣집을 ‘내 궁전’이라 여기고, 12평짜리 전셋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사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소박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또한 인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폭력적인 재개발에 대항하는 삶을 선택하고, 하다 하다 결국 망루에까지 오르게 되는 과정을 담은 투쟁의 기록이며, 고단한 저항을 하던 이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과정을 담은 증언이기도 하다. 결국 『여기 사람이 있다』는 자신의 꿈이 담긴 작은 가겟집과 가정을 지키고 싶었던 소박한 소망들에 관한 보고서이다.
2009년 1월의 용산4구역, 그리고 더 많은 용산4구역
서울의 곳곳, 아니 전국의 주요 도시들이 뉴타운과 개발 열풍에 몸살을 앓고 있다. 뉴타운개발, 경제문화도시 마케팅, 한강르네상스 등의 화려한 수식들은 소수의 개발업자와 투기꾼, 땅 부자들에게는 현실일지 몰라도, 그곳에서 수십 년간 생계를 일궈온 원주민들과 상가·주거 세입자들에게는 환상일 뿐이다. 아니, 삶터와 일터를 한순간에 빼앗기고 외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지독한 현실’이다.
실제로 서울시 길음뉴타운사업의 경우 조합원과 세입자의 정착률은 17.1%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 계획 중인 전체 뉴타운 지구의 세입자 비율은 80%에 달하지만, 도정법에 따라 전체 건설 주택 세대수의 17%만을 세입자용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미 서울의 임대아파트가 높은 임대료와 관리비로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주민의 다수인 세입자의 재정착은 요원하다.
“철거민이 되고자 해서 되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중략…) 어느 연구단체에서 원주민 재입주율이 15퍼센트라고 하던데 실제로는 그 반도 안돼요. 전에 살던 비용으로 살 수 있어야 재입주가 맞죠, 온갖 빚을 내서 다시 들어오는 걸 어떻게 재입주라고 할 수 있겠어요?”
-성낙경, 고양시 풍동 지역 철거민
2002년 풍동 지역에서 주택공사의 부당한 이주 조건에 맞서 2년간의 기나긴 싸움을 했던 성낙경 씨의 말이다. 이들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지기까지 기나긴 시간 불안과 폭력에 맞서 싸워야 했고, 급기야 철거 용역들을 피해 망루로 올라가야만 했다. 풍동 지역은 분양 원가가 공개되고 부당 이득금이 반환되는 성과를 이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주거권과 생존권을 박탈당한 채 폭력에 의해 자신의 집에서 쫓겨 나가는 현실이다.
참사가 벌어진 용산4구역은 2006년 4월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되어 작년 5월 관리처분 인가가 난 상태였다. 철거가 끝난 이후에는 최고 40층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지역의 건물에 세를 든 점포는 434개, 주택은 456세대였다. 한식집, 장어구이집, 도서대여점, 호프집 등이 이들의 직장이었거나, 작고 좁게 붙어 있는 집들이 이들의 가족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날 철거민이 되었고, 이 나라 공권력에 의해 죽음에 이르거나 강제로 쫓겨나거나 생존권·주거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한 필자의 말대로 이들이 “저지른 유일한 잘못은 가진 것도 없으면서 이 땅에서 터무니없는 꿈을 품고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구청과 재벌 건설사, 재개발조합, 폭력조직의 자본주의적 카르텔을 통해 자행되는 이러한 폭력의 피해 당사자는 힘없는 개개인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 땅 여기저기서 아직도 ‘난쟁이’들은 굴뚝에 올라 작은 공을 쏘아 올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