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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지 관계와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첨부파일 -- 작성일 2008-10-06 조회 1422
 

뉴스레터 [한내] 2008. 10월 (제2호)

한내 칼럼   동지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글 : 양규헌 (노동자역사 한내 대표) / 사진 : 노동자역사 한내

이미 30년이 훌쩍 지난 70년대 중반이다. 전태일 열사의 절규가 한국사회의 아픔으로 잔잔한 여진을 남길 때 쯤, 공장 새마을운동이 기승을 부린다. 기름밥 수가 좀되는 현장노동자들을 일주일간 연수원에 가둬놓고 술, 담배를 못하게 했다. 캄캄한 새벽, 구보로 시작하는 하루 연수일정은 자유시간 없이 교육과 토론으로 이어지다 밤 11시를 겨우 넘겨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 하지만 군대보다 더한 징역 같은 규율에 불만스러워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처음 시작할 때는 볼멘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3일이 지나자 교육생들의 눈은 빛났고, 연수원 교육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보람찬 모습으로 변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강사 자질과 능력도 돋보이지만 교육생들이 무엇보다 호감을 갖는 건 그들이 현장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억눌린 일상에서 가장 아픈 부분을 달래주고 가려운 구석을 긁어준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당시 공장 분위기는 관리사원이 모든 지배권을 갖고 있다시피 했다. 20대 대리가 과장에게 “과장님, 애들이 또 말썽을 일으켰습니다.”라고 보고한다. 여기서 나오는 애들은 누굴까? 2~30대 노동자를 부르는 게 아니다. 50대 중반 늙은 노동자를 부르는 것이다. 공돌이 공순이라 불리는 노동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그들에겐 ‘애들’로 불린다. 뿐만 아니라 관리자들기분이 나쁘면 어김없이 “개새끼”, “개년”으로 바뀌는 게 현장 모습이다. 노동조합이 있어도 그 한계를 깨기엔 문화적(?) 장벽이 너무 두껍다.

새마을연수원 강사들은 현장 노동자들의 애환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것이 그들의 장점이다. 그 만큼의 준비가 되었다는 증거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비인권적이고 폭력적인 사례들을 소리 높여 비판하면서, 스스로 흥분되어 격앙된 목소리로 회사 관리자들 품성을 뜯어고치는 게 새마을운동 핵심이라고 강변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수원 생활 3일이 지나면 공장 새마을교육 강사와 노동자들 사이엔 ‘동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는다. 강사와 교육생 사이의 감성적 일체감이 무섭게 나타난다. 그런 분위기를 놓칠 리 없는 그들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는 한, 산업평화는 없다’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교육이 끝나기 전에 회사마다 차별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시정 약속을 받겠다고 선언한다. 그 약속은 현실이 된다. 회사 임원은 ‘경영사원’으로 변하고, 중간관리자는 ‘관리사원’, 현장노동자는 ‘생산사원’으로 격상된다. 사안의 본질보다 표출되는 형태 때문에 혼란스러워진다. 동지 아닌 자가 동지로 착각되는 상황 속에서 그나마 미약했던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소수 중심의 지하활동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유신이 몰락하고 10년 후, 제2의 공장 새마을운동이 ‘다물단’이란 이름으로 부활한다. 이 교육을 이수하고 나면 ‘피보다 진하다’는 동지 관계는 하루아침에 균형이 깨져버린다. 대공장현장에 ‘다물단’이 만들어지고 심지어 구사대 역할까지 충실이 수행한다. 그리고 10여 년이 더 흐른다. 이번엔 명칭도 세련된 ‘뉴라이트’로 등장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간 노동해방 평등세상 건설을 외치며 혁명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던 동지들이 어느새 반대편에서 우리 동지들에게 총질을 해 대고 있다.

지난 여름, 시청 앞 촛불광장에서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을 만났다. 칠순이 훨씬 넘은 고령임에도 청년 못지않은 기백으로 촛불 현장에서 명료한 결론으로 인터뷰에 응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종로거리를 행진하면서 하신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

“양 위원장, 내가 말이야 평생을 운동에 몸담고 살아왔는데...... 동지 관계라는 건 남는 게 없는 거 같아. 오히려 친구가 더 인간적이고 바람직한 관계인 거 같거든. 동지 관계라는 건 생각이 조금만 다르면 가차 없이 돌아서게 되어버리더란 말이야. 진정한 동지는 한쪽 손가락을 꼽기도 어려우니......”

선생님은 말씀을 흐리셨다. 숱한 세월 속에서 하나 둘 동지들은 떠나고 변질되어버린 오늘에 대한 회고가 수많은 촛불들 사이로 쓸쓸하게 다가오는 거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한순간 공감대를 느끼며 적과 동지로 이상하게 얽혔던 70년대, 운동이 변했다며 정치적으로 변질되어간 혁명을 주창했던 동지들의 모습, 그리고 오랜 활동 속에서 존경과 애정을 담았던 ‘동지’의 진정한 의미와 생각의 차이 때문에 관계가 소원해지고 마는 ‘동지’라는 호칭까지......과연 ‘동지’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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