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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읽는 현장
..... 막걸리 예찬_박미정 (52호)
첨부파일 -- 작성일 2013-04-09 조회 869
 

막걸리 예찬

박미정

노오란 유채꽃이 시들어가는 유월의 어느 날, 엄니의 젖가슴과 같은 남도 뙤약볕의 따사로움이 미치도록 그리워 중고생이라 찍힌 승차권 두 장을 땀나는 손에 꼬옥 쥐고 무작정 시내버스에 몸을 싣고 거창한 종점여행의 발을 내딛었다. 어디쯤 가서 내렸을까? 밭이 있고, 논이 있고, 물이 있는 곳에서 내려 들판에서 일하시는 내 부모님 같은 분들을 보고서 향수에 젖을 수밖에......

비지땀 흘리며 일하시던 모습을 잠시 접어두고 새참을 먹는 가운데 빠지지 않는 우리의 술 막걸리. 어디 농민의 새참에만 약방의 감초 격이던가? 하루종일 일에 지친 내형제들의 인생이야기 속에서 빠지지 않는 우리의 술이 아니던가.

혼탁한 색깔도 맘에 들거니와 마치 우리네 풍류와 같이 얼큰한 맛. 이 술이 왜 우리와 친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돈이 없다. 이 술은 값이 싸다. 몇몇 가졌다는 놈들이 푹신한 안락의자에 앉아 양담배 꼬나물고 위스키(양주)로 위장을 소독할 때, 우리는 하루종일 지친 육신을 이끌고 썰렁한 방안에 꺼이꺼이 들어가기가 아쉬워 뜻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 허름한 선술집에서 딱딱한 의자를 놓고 사장놈 개새끼하면서 우리들의 불만을 같이 달래던 술! 돈이 없어 비싼 안주는 못 시키고 두부 한 모면 진수성찬이고 묵은 김치만 있어도 요놈의 막걸리는 술술 잘 넘어가는 서럽지 않은 술 한판의 자리가 아니던가? 그러다가 한 잔 두 잔 들어가다보면 어디부턴가 시작되는 노래 가락이 들리고 젓가락 두드리는 소리도 들린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노다가세 노다가세

노동자, 농민을 함부로 하는가. 누가 우리의 멋을 디스코 문화로 물들이려 하는가? 비지땀 흘리고나서 허리와 동등하게 돼버린 우리 배를 막걸리로 채우면서도 우리는 노래한다.
웅성거림에 고개를 돌려보니 새참들던 분들의 노래판이 벌어졌다. 엄메 존거! 저게 바로 우리의 멋이 아니던가?

막걸리 막걸리 우리나라 술술술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술.
우리 민족 어느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술.
5천년의 어엿한 역사를 같이 숨쉬며 살아온 우리들의 한맺힌 분노와 피눈물과 땀방울이 아니던가?

혼탁한 우리의 얼큰미로 양주라고 하는 것을 꼼짝 못하게 해야지 하면서 마지막 승차권을 내밀고 돌아와서는 우리들의 분노와 우리들의 피눈물과 우리들의 땀방울을 마시면서 우리들의 참(진실)을 알리기 위해, 우리들의 해방을 위해 건배! 라고 외쳐댄다. 이것이 플립없는 우리의 멋인거여.

어찌하여 막걸리는 외면당하고
어찌하여 위스키가 판을 치나요.

 * 박미정 (대우전자 노동조합 광주지부 편집부장으로 활동. 광주지부 노보 [한뜻]3(1988.7.23.) / 현장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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