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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뉴스레터 창간호] 노동자 자기역사 쓰기
노동조합, 나에겐 샘물이고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글 : 김애란 회원
85년 서울대병원 공채 1기로 입사, 어린이병원 개원을 시작으로 서울대병원이 입사방식을 공채로 한 첫해였다. 그제나 이제나 취업의 문은 좁디좁아 우르르 몰려왔던 취업희망자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나는 서울대병원과 인연의 끝자락을 잡은 듯하다. 한꺼번에 입사를 안하고 성적순으로 불러대는데 대충 마지막 선수였으리라 기억된다.
21살, 제도화된 조직에 몸을 담고 규격화된 삶을 살기엔 피는 너무 뜨겁고 어리지 않았을까? 적응기가 꽤 길었던가 ? 싫었던가? 그만둘까를 고민하면서 적응을 해가던 시절이였다.그리고 87년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내게는 샘물이고 새로운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지금도 하는 말이지만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병원을 그만 두지 않았을까? 노동조합 발기인은 아니었고 사실은 병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노동조합 가입은 집단 연서명으로 했고 가입하지 않는 직원을 이상한 눈으로 보면서,..... 그런 직원들은 나중에도 끝내 가입을 하지 않았다. 내가 노동조합을 모르고 가입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알고 가입을 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내가 다닌 학교는 학생운동이 없었기에(어쩌면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도? 학교생활도 재미 없어했으니까?)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고 왜했는지, 그 분위기가 ‘옳다‘고 느낌으로 전해졌으리라.
병원 2층 로비에서 집회를 하려면 병원은 출구를 의자로 켜켜로 쌓아 막아댔고 노동자들은 그걸 힘으로 밀어내면서 뚫고 나와 좋아라 했다. 88년 2대 대의원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에 발을 넣었다. 선진적인 노동조합이어서 초기부터 의료민주화 투쟁은 일상과제였다. 의료부 부원활동을 하면서 공해추방운동연합 활동을 잠깐하기도 한것은 김유미 위원장이 환경운동도 노동운동의 몫이라며 공부하라고 의료부 부장과 차장을 활동가 교육 프로그램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역이고 즐겁기도 해서 노동조합 활동은 등한히(?) 해서 노동조합에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활동은 환경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리해준 것으로 지금까지도 내게 좋은 자산이 되고 있다.
정부의 임금가이드 라인이 직권중재안으로 떨어지면서 임단협 파업투쟁을 유보한 것이 그때 서울대병원 노동자에게는 집행부를 불신하는 중대 사건이었다. 집행부 조기선거가 이루어지면서 전임을 시작, 보라매병원 전임자로 낙점. 아마 지금까지도 보라매에 대한 이해와 애뜻함은 초기 전임을 보라매병원에서 시작한 이유이리라. 97년 노개투 총파업때는 첫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병원 밖 소식은 기쁜 얼굴로 돌아와 무용담을 말하듯 얘기하는 조합원과 간부에게 전해 들었다.

3년 반의 전임을 마치고 현장으로 복귀 했으나 교섭때마다 교섭전임을 해서 조합원들은 계속 전임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주기도 했다. 2001년 13일 파업을 이유로 최선임 지부장이 감방살이를 하는 동안 직무대행을 하다가 2002년 지부장을 했다. 2004년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10장 2조에 대해 문제제기와 44일 파업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2년의 지부장을 마감하고 전임자를 젊은 피로 수혈하고자 현장으로 돌아갔으나 후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100일도 못 채우고 다시 전임을 하는 민망한 일도 있었다.
보건의료노조을 탈퇴하고 공공연맹에 가입하면서 산별노조의 고민속에 지역중심의 노동조합 활동이 매우 절실히 필요하다고 자각과 반성으로 지역지부를 건설하고 지부장 노릇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문화부장스러운 것을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이라고 말하면 조합원들의 여론이 매우 나빠지고 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다. 서울대병원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 최선임은 현장에서 3교대 뛰는 간호사로 근무하고 신사임당 같은 천성혜도 역시 간호사로 현장을 지켜주고 있다. 현정희는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으로 있을 때 29일 단식으로 몸을 많이 상했는데도 여전히 열혈 활동가로, 공공노조 부위원장으로 최전선에 있다. 내 부족한 활동에 언제나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어찌어찌 20여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해도 해도 능력이 나아지지 않고 축적되는 경험이라야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오래된 간부라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움으로 그늘진다. 후배들에게 적어도 도움이 되는 선배활동가로 기억되면 좋으련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