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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 노동자들의 경적 소리
첨부파일 -- 작성일 2010-05-07 조회 1394
 

택시 노동자들의 경적 소리

김영수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

 
택시 노동자들이 어디 갔을까? 정말 경적 소리가 그립다. 사회체제가 급격하게 변화되는 투쟁의 길목에서 항상 경적 소리로 응원하거나 직접 참여했던 운수 노동자들의 경적 소리가 그립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서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전진하게 했고, 급기야 계엄군들을 시 외곽으로 도망가게 했던 버스와 운전 노동자의 투쟁. 1983년 말 전두환 정권의 유화조치를 넘어서는 투쟁의 함성과 깃발을 날렸던 노동자들. 1987년 6월 항쟁에서 운전 노동자들의 경적 투쟁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거리를 누비는 시위대의 호위병 역할을 자임했던 노동자들. 이들의 경적 소리는 또 다른 삶의 고통을 날리고자 하는 투쟁의 욕망이었을 것이다.



1980년 5월 택시 노동자들이 경적 소리가 울렸다. (사진 동아닷컴)

지하의 막장에서 일하는 탄광 노동자들이 1980년 봄에 사북 지역을 중심으로 탄광 지역을 노동자들의 해방터로 만들었다면, 1984년 5월엔 지상의 막장이라고 여기면서 숨죽이고 일만해야 했던 택시 노동자들이 일어섰다. 대우자동차처럼 대기업에 속한 노동자들이 학출 출신의 활동가들과 함께 한 선도적 투쟁이 아니었을지라도, 지방과 지역에서 그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자동차의 경적 소리 대신에 노동자의 깃발과 함성으로 노동자임을 선포했던 투쟁들이 있었다.

대구와 부산의 택시 노동자들은 사납금 인사, 부제 완화, LPG자율화 등의 구호를 내걸고 투쟁을 전개하였다. 대구의 경우, 택시 노동자들은 대구 시내의 교통을 13시간 동안 마비시키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의 택시 노동자들은 높은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살인적인 과속운행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택시 노동자들은 이로 인해 높은 교통사고율을 기록하였고, LPG 유독가스로 시각장해 및 만성적 두통, 그리고 불규칙한 식사로 위장병에 시달려야만 했다. 만약 이러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라치면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폭력행위라고 이를 탄압하였고, 정부와 자본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아예 입사를 막는 방식으로 노동조합운동을 탄압하였다. 경찰은 택시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제로 해산시키면서 구속하였다.

대구에서 시작된 투쟁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경북 경산(5.26), 경북 구미(5.29), 충남 대전(5.30), 그리고 서울(6.2) 등의 택시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전개하였고, 이러한 투쟁은 택시 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태도를 변화시키는데 충분하였다. 다른 지역의 택시 사업주들은 자진하여 노사협의회를 열자고 하면서 사납금을 인하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오히려 노동조합의 결성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택시 노동자들의 불만을 완화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려 하는 투쟁을 예방하려 하였던 것이고, 정부 및 사업주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순응할 수 있는 어용 노조를 결성하려 하였던 것이다.

택시 노동자들은 자연발생적으로 투쟁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택시 노동자들은 투쟁의 과정에서 민주노조운동의 터를 닦고도 남음이 있었다. 첫째, 전두환 정권이 1983년 말에 이르러서 유화적인 정책을 추진하자, 그것을 넘어서려는 투쟁의 물꼬를 택시 노동자들이 열어 제꼈다는 점이다. 이들의 투쟁은 대학에서 시작된 학생회 부활투쟁과 더불어 유화정책을 넘어서려 했던 대표적인 것이다. 둘째, 투쟁을 집중적으로 전개했던 5월과 6월에 100여 개의 신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 노동조합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점이다. 택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1984년 4월 말 현재 330개였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2개월 만에 약 30% 정도가 증가하였고, 그 주요 수단이 자발적인 대중투쟁이었다는 점이 198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터박기’였다고 할 수 있다. 셋째, 택시 노동자들은 비록 지역의 사업장을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투쟁의 과정에서 직종별 산업별 연대의식을 강화시켰다는 점이다. 구속되거나 연행된 노동자들을 석방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연대와 단결의 성과를 축적시킬 수 있었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조직전망의 터를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전망은 운수산업이라는 측면보다는 택시업종에 머물러 있었고, 그러한 한계를 약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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