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국민운동본부 농성에 들어왔는가(1987년 10월) - 국제상사, 풍영, 삼화, 대양, 화승, 통일 부산, 창원지역 6개 공장 농성 노동자 일동 - 이영기(노동자역사 한내 자료국장) 1987년 10월 15일 부산과 창원의 노동자들이 서울 기독교회관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에서 농성투쟁에 들어갔다. 6.29선언으로 민주화를 하겠다면서 노동운동탄압을 전면화하는 정권을 폭로하고, 구속노동자 석방, 해고노동자 원직복직, 노동운동탄압 분쇄 투쟁에 전국노동자들의 결집과 연대투쟁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1987년 8월 중순 이후 정권은 노골적인 노동운동탄압에 나섰다. 7월~9월 3개월 동안 전국에서 500여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구속되었고 수천 명이 해고되었다. 창원에서는 8월 20일 2명의 해고자 구속을 시작으로 20여 명의 노동자들이 구속되었다. 통일중공업에서도 8월 투쟁을 이끌던 위원장 등 노조간부 5명이 강제연행, 구속되었다. 통일중공업 노동자들은 구속자 석방과 노조탄압 분쇄를 위한 농성과 서명, 가두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단위노조만의 투쟁은 한계가 있었고 지역 노동자, 학생 등과의 지역연대투쟁을 벌여나갔다. 구속자 석방 투쟁은 단위노조만의 고립, 분산된 투쟁으로는 버거웠고 정권을 대상으로 한 투쟁이기에 지역연대, 전국적인 연대를 모색해야 했다. 민주노조 진영이 대대적인 노동운동탄압에 직면했지만 야당 및 민주화운동세력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분열 등 분위기가 흐트러져 있었다.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꿔놓을 수 있는 강력한 투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통일중공업노조는 전국적인 폭로투쟁과 노동자들의 힘을 결집하기 위해 부산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 상경투쟁을 계획했다. 부산에서는 9월 14일 이후 국제상사, 삼화고무, 풍영, 화승 등 6개사 해고노동자들이 부산카톨릭센터에서 농성투쟁 중이었다. “ 제도적 언론의 비호 속에서 현 군부독재 정권은 7,8,9월에 일어난 노동자의 자주적인 생존권 쟁취투쟁과 민주노조건설 및 사수투쟁을 고도의 전략으로 탄압해 왔다. 이들의 이러한 만행은 12월 대통령선거를 통한 재집권음모에 그 목적이 있고 노동자들의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단결을 저지하고 특히 대기업의 민주노조를 분쇄하여 자본가들의 이익을 더욱 더 옹호하려는 것이다.” “ 이와 같은 현 군부독재정권의 반노동자적 본질을 만천하에 폭로하여 저지시키고자 나아가 기만적 6.29의 숨은 음모를 깨부수고 재집권 음모를 분쇄하여 동물적 폭압하에 구속, 해고된 우리 노동자들을 석방, 원직복직 시키고 나아가 일천만 노동자들의 정당한 생존권 쟁취투쟁을 수호하기 위하여 부산, 창원지역 6개 공장 노동자들은 대동단결을 하여 농성에 돌입하였다.” .................................우리는 왜 국민운동본부 농성에 들어왔는가!(10월 15일 발표 성명서) “ 한국중공업의 일주일간의 가두투쟁과 (주)통일 노동자들의 한달에 가까운 파업투쟁, 현대중공업의 파업농성, 부산 해고노동자들의 농성투쟁, 서울지역 해고노동자들의 민주당사 점거농성 등 우리 노동자들은 줄기차게 투쟁해 왔으나, 그러한 고립분산적인 투쟁으로는 군부독재의 탄압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고 탄압을 물리치기는 커녕 탄압의 고삐를 늦출 수도 없었습니다. 이에 우리 농성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가 대동단결하여 함께 투쟁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며, 수 마디의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공동투쟁을 촉구하기로 결의하고 서울로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 2천만 노동자, 가족 여러분! 구속노동자 석방,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현 군부독재정권의 야만적 탄압을 뚫고 투쟁을 과감히 전개하여 노동자 승리, 민주승리의 앞길을 열지 않으시렵니까?” ..............현 정권의 기만에 분노한다. 우리 투쟁에의 참여를 촉구하며(10월 16일 발표 성명서) 이 투쟁은 12월 대선 문제에 골몰하던 민주화운동 진영과 고립 분산된 투쟁 속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던 노동운동권 전반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민통련, 민청련, 민가협 등 사회단체들과 학생들의 지원 방문과 모금 운동이 이어지고 21일 이후 인천과 서울지역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에 합류했다. 농성은 노동운동단체들과 노동자들이 연대한 대규모 집회와 가두시위로 발전했다. 10월 27일 ‘노동운동탄압분쇄 결의대회’(서울 명동성당)에는 전국 4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하여 격렬한 가투를 벌였다. 결과적으로 이 투쟁은 한편으로는 선거정치에 매몰되어가는 민주화운동세력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에게 지역과 업종을 넘어 ‘노동자는 하나’ 라는 계급적 연대감을 자각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연대투쟁의 경험은 노동운동의 지역적, 전국적 연대조직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 참고자료 - 김하경, 『내사랑 마창노련』상, 갈무리, 1999 - 전노협백서 발간위원회, 노동운동역사자료실, 『1987~1988 기나긴 어둠을 찢어버리고』 전노협백서1권, 논장, 2003 - 김정호, 『끝나지 않은 저항, 1985-2015 통일-S&T중공업 노조운동 30년사』, 한내, 2015 - 양규헌, 『1987 노동자대투쟁』, 한내, 2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