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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온 길
..... 다시 돌아와 다시 교육을 돌아보다
첨부파일 -- 작성일 2008-10-31 조회 804
 

다시 돌아와 다시 교육을 돌아보다.

글 : 이치열 (한내 발기인, 대안교육연대 사무국장)
사진 : 대안교육연대 홈페이지


노동자의 자기역사 쓰기에 글을 쓰랍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전통적인 노동자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도 않은데 원고청탁을 받으니 그럴 수밖에요. 편집자 왈, 노동자들이 대안교육에 대해 궁금해 하니 그걸 얘기해 주면 된다고 합니다. 요즘 부쩍 민중이 나서서 우리의 역사를 직접 써야한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있는 터라 막무가내로 거절만 할 일은 아닌듯하여 고심 끝에 연습 겸 해서 몇 자 적어 보려고 합니다.

80년대, 세상의 근본적인 변혁을 위해 노동현장에 뼈를 묻겠노라며 현장에서 나름으로 열심히 일한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있던 현장은 국내에서 가장 큰 사업장으로 지금도 노동조합운동으로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사업장이지요. 당시 대공장이 우리 변혁운동의 중추적인 기지 역할을 할 것이라며 대공장으로 역량을 집중하자는 판단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야 맞교대로 노동하면서 짬을 내어 소모임을 꾸려 학습하고, 현장의 일상적인 활동에 개입해서 좀 더 변혁지향의 노동운동을 조직해 보려고 불철주야 열정을 쏟았던, 아마 내 평생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89년 말부터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와 함께 주변의 동지들이 동요했고 이내 하나씩 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현실 사회주의 몰락을 분석하는 근거가 스탈린주의의 폐해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나 역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저 도망치듯 현장으로부터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10년이 넘도록 자본주의의 경쟁정글 속에서 살았습니다(실물로서의 자본주의를 공부하자, 그것도 먹고 살면서...라고 위안하며). 내가 왜 청산적으로 당시 운동을 정리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몇 년 전에 불현듯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80년대 당시 우리가 맑시즘이라고 했던 이론이 스탈린주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왜곡된 것이었고, 참으로 통탄할 일은 당시 국제적인 연대가 전무했던 국내 상황에서 이미 서구에서는 60~70년대를 거치면서 거의 폐기 혹은 재정립의 과정을 밝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경직된 사고입니다. 이 전체주의적인 사고는 80년대의 변혁적 정세 속에서야 대단한 파토스를 뿜어내지만 이것이 퇴조하는 시기에는 모두에게 개인과 공동체에 관한 깊은 성찰보다는 개인에 대한 과도한 집착만 남게 되었던 것이죠. 암튼 저는 그랬습니다.
 

한동안은 자영업자로, 10년 정도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운동권출신이 그렇듯 기획력과 추진력, 그리고 논리적이고 유창한 언변은 금방 자본의 이해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고, 고속승진에 높은 연봉에 한마디로 잘나가는 샐러리맨의 전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낼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만족감보다는 뭔가 허전함이 계속되었습니다. 이건 아닌데...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피폐해지는 심성, 나 자신도 모르게 배려와 협동보다는 배제와 경쟁력, 효율성 등이 나를 지배라는 일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속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으로 전환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대안교육연대 정기포럼에 참석한 학부모들의 진지한 모습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아이 키우는 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새롭게 접하게 된 영역이 지역운동과 (대안)교육운동입니다. 지역에서 공동육아라는 것부터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아이를 경쟁 지향적이기 보다는 공동체적으로, 타율적이기보다는 자발적인 존재로 키워보기 위한 교육운동의 일환입니다. 부모들이 지역에서 공동육아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출자금을 모으고, 우리가 희망하는 교육철학에 맞는 교사들을 모셔다가 부모 참여형 교육공간을 만든 것이지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도시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과 같이 지역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지역사회를, 나아가 전체 사회가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대안학교의 설립과 운영도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대안교육에 대해 설명을 좀 하는 게 좋겠군요. 우리나라의 대안교육운동은 대개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겁 없이 인가도 받지 못하는 전일제 학교를 누구말대로 감옥 갈 각오를 하면서 만들었죠. 그리고 10여년을 지내오면서 소중한 성과 몇 가지를 만들어 냅니다. 첫째, 그동안 국가가 지배체제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독점하고 있던 교육에 반기를 들면서 민(民)이 중심이 되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공적인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교사·학부모·학생 삼주체가 참여하는 학교의 민주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는 것입니다. 셋째, 다양한 교육과정의 실험을 통해 대안적인 교육과정을 사회적으로 전파하는데 기여해 왔다는 것입니다. 또한 학교현장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대안적인 공동체운동을 진행해 왔습니다.




혹자는 이 운동을 중산층의 운동 혹은 탈주의 영역으로 폄하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현재 중산층이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점에 대해 약간의 우려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로부터 한 푼의 돈도 받지 못하면서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과도적이나마 이 운동에 헌신적인 이들이 건강하게 초심을 유지하면서 갈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갖고 격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이 운동이 중산층 주도가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며, 노동자·민중이 이 운동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탈주의 영역이 근본적인 변혁의 기획없이 무정부적이거나 혹은 폐쇄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운동을 지칭한다고 한다면, 이와는 거리가 있는 운동입니다. 오히려 변혁의 전망을 보면서 다양한 형태의 꼬뮨들을 구체적인 일상에서 만들어 가고 있는 운동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대안세상의 권력의 상이 다양한 자발적 대중들의 꼬뮨들을 전제한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매우 소중한 변혁의 기반들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운동을 통해 추상적인 수준에서 당위로 얘기했던 직접민주주의를 경험(실천)하고, 자발적 참여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의 해방의 경험을 내재화 하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일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대안사회는 자율과 협동, 자유로운 소통능력, 창의력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해야만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나에겐 더없이 중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변혁운동이 좀 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변혁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부정해서는 곤란합니다. 지배계급의 체제유지와 재생산구조를 위해 존재하는 교육이라는 지배도구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면서 변혁적인 교육의 상과 전망을 함께 상상해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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