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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동지들과 함께 맛을 느끼고 싶다.
첨부파일 -- 작성일 2008-10-28 조회 957
 

뉴스레터 [한내] 2008년 11월호 (제3호)

내단골집
소중한 동지들과 함께 맛을 느끼고 싶다.


글과 사진 : 윤정향 (한내 회원)


내가 강원도와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십년이 훌쩍 넘었다. 꽃다운 20대 청춘을 지나 이젠 40대 불혹(不惑)으로 달려가고 있다. 어찌보면 강원도에서 보낸 시절이 나에겐 가장 황금기인지도 모른다. 철부지 학생운동 시절부터 열사의 죽음 앞에 무기력했던 비정규노동자로, 이제는 어용노조 대의원으로 이어지는 내 삶의 모습들 조차도 모두 강원도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에 만난 사람들, 그 속에서 맺었던 수많은 사연들이 이순(耳順)의 나이까지 이어지리라고 믿어 본다. 특히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2003년 10월의 그날은 여전히 나를 차갑게 깨우는 각성의 기억이다. 그날들처럼 치열하고 긴장되게 살고 있는지 늘 되뇌이지만 이놈의 일상은 그 기억을 계속 뛰어 넘으려고만 한다.

아무튼 언젠가부터 내 말끝에선 강원도 냄새가 난다. 입맛도 강원도스러워졌다고 하면 조금 과장된 것일까. 한내의 전국 회원들에게 단골 맛집을 소개하려고 하니,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산골 강원도 입맛이 얼마나 맛깔스럽게 전해질까.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동네 얘기를 하려고 한다. 어차피 동네 단골집이 내 입맛엔 맛집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진 : 동네로 들어가는 퇴근길 풍경] 

나는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2리, 섬강이 굽이쳐 흐르는 작은 동네에 산다. 동네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70여 명도 되지 않는 조그만 동네다. 옛날 이름은 작두골. 벼슬‘작(爵)’자에 머리‘두(頭)’자를 써서 작두골이란다. 벼슬한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벼슬하길 바래서인지 동네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네 분위기로는 벼슬할 만한 동네는 아닌 것 같다. 그레도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은 조선후기 문신이었던 ‘조엄(趙儼, 1719-77년)’이다.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 들여온 사람이란다. 그 사람말고는 딱히 벼슬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10년전 이 동네엔 과자나 담배를 팔던 작은 구멍가게 말고는 상점이라고는 없었다. 그런 처지다보니 음식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동네였다. 그런 동네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건 이웃 동네에 ‘한솔오크밸리’라는 커다란 골프장과 콘도가 생기면서부터란다. 골프장이 생기면서 하나 둘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제는 동네에만 다섯 곳이 넘는 식당이 생겼다. 


메뉴도 한우부터 지리산 흙돼지, 종가집 된장찌개, 보신탕까지 다양하다. 제각기 폼 잡
고 서있는 입간판들이 손님들을 끌고 있고 주말이면 골프장으로 향하는 외제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동네 사람들은 쉬이 돈 버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을 것 같다. 그래서 논 팔고 밭 팔아서 앞다퉈 음식점을 차렸는 지도 모를 일이다. 


골프장이 생기면서 달라진 건 그것만이 아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아침 6시면 오크밸리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골프장 잔디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하러 오크밸리로 가는 것이다. 1년 농사 지어봐야 빚만 남고, 가을걷이가 끝나야 푼돈이라도 만져봤던 생활에서 매달 나오는 월급받는 그 일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최고 인기 직종이 되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동네는 이미 오크밸리라는 거대한 밸리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음식 얘길 해보자. 이런 음식점들은 대개 길 옆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길 옆이 아닌 산중턱에 자리잡은 음식점이 하나 있다. 바로 그곳이 내가 소개할 집이다.

차 한대 간신히 올라갈 논두렁 밭두렁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작은 연못이 하나 나오고 그 연못 끝에 통나무집 분위기가 물씬나는 집이 나온다. 조그만 절구통이 놓여 있고, 물고기가 살지 않는 인공연못과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는 장독이 있는 집이다. 아는 사람이 아니면 찾아 올 수 없는 곳에 위치한 음식점이 분명한대 ‘대중’음식점이란다. 하지만 비오는 날, 원두막에 앉아 먹는 동동주 맛은 일품이다. 아니 동동주 맛이 특이하다. 한약냄새가 약간 나면서 약간 쓰기도 하고 약간 달기도 하다. 정신없이 먹다보면 김삿갓 싯구 중 이런 싯구가 불연 떠오른다. 그래서 겁나는 맛이다.
“주량은 점점 늘어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 일 겨우 알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이 집 약닭도 맛있다. 온갖 한약재를 넣고 푹 끊여 낸 국물맛이 일품이다. 갖가지 야채에다 산야초 한송이도 살짝 곁들여 나온다. 나는 그 꽃 이름조차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이쁘다 느낄 뿐이다. 얼마 전부터는 참숯구이도 한다. 참숯도 중국산이 대세인 세상이다. 어디 참숯을 쓰는지 묻는 손님은 거의 없다. 다만 돼지고기가 어디것이냐고 물을 뿐이다. 도투리묵밥, 더덕구이도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산으로 둘러싸인 덕분에 이 집 음식 맛이 더 좋은지도 모른다. 누구와 같이 먹느냐에 따라 더 깊은 맛을 느낄 것 같기도 하다. 맛도 찾아 다니는 세상이란다. 사람들이 먹는 게 크게 다르겠냐만은 이렇게 애써 소개하는 건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 때문이다. 함께 고생하는 나의 소중한 동지들에게 글로나마 이 맛을 전할 수 있다면, 오늘 약닭 한그릇에 동동주 한사발을 나누고 싶다. 


작두골 옆 동네로 또 원주기업도시가 들어온단다. 또 어떤 밸리가 우리를 삼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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